성심병원 사태로 본 간호사 ‘태움 문화’ 실상

2017.11.20 11:25:57 호수 1141호

욕먹고 맞고 ‘활활 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림대 성심병원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재단 행사에서 간호사들에게 노출 심한 옷을 입게 하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한 사실뿐 아니라 각종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뒤늦게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관행으로 굳어진 간호사들의 ‘태움’ ‘내리 갈굼’ 악습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한림대 성심병원서 간호사 갑질 문제가 터졌다. 재단 행사 장기자랑서 간호사들에게 특정 부위가 지나치게 노출된 옷을 입게 하고 보기 민망한 춤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사건을 접한 누리꾼들은 충격과 경악의 반응을 보였지만 실제 병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강요와 갑질

재단 장기자랑 행사에 오른 간호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순식간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대중의 관심이 이어지자 추가 폭로가 쏟아졌다. ‘장기자랑을 위해 업무 외 시간에도 연습을 해야 했다’ ‘유혹하는 표정을 지어보라고 했다’ ‘너는 가슴이 작으니 패드를 넣어야겠다는 말을 들었다’ 등 성희롱 발언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처음 사태가 불거졌을 때 안일하게 대응하던 병원 측은 특정 정치인 후원금 강요 논란, 수간호사의 다단계 가입 강요 의혹 등이 연이어 터지자 뒤늦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성심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일송학원(한림대재단)은 윤대원 이사장 명의로 지난 14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윤 이사장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이어 문제가 됐던 ‘일송가족 단합대회’와 관련 재단 책임자로서 부족함과 관리감독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추가로 불거진 의혹에 대해서는 “재단 차원의 조사를 통해 신속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과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기가 늦은 것도 문제지만 뿌리부터 굳어진 간호사들의 갑질 문화를 손보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선 간호사들의 반응은 특히 차가웠다. 
 

서울 S병원서 10년 동안 근무하다 재작년 동네 병원으로 이직한 J(33)씨는 “(이번 사태는) 성심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J씨는 “이번 일은 오히려 너무 늦게 드러난 감이 없지 않다”며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J씨가 말한 태움 문화는 간호사들 사이서 오래도록 이어진 악습이다. 말 그대로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태운다는 의미’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에게 폭언·폭행 등의 갑질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일선에선 “터질 게 터졌다”
그동안 갑질악습 뿌리 깊어
신입 이직률 40% 근본 대책은?

J씨 역시 병원서 근무하던 초기 3년 동안 밤마다 냉장고 청소를 강요받았던 경험이 있다. J씨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 활활 탔던 시기”라며 “음료수 하나 흐트러짐 없이 놓여있던 냉장고를 매일 닦으면서 느낀 인간적 모멸감은 같이 활활 타본 동료들이나 알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5년과 2006년 전남대병원에선 두 명의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11월 사망한 간호사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6년 4월 자신의 팔에 약물을 주사해 목숨을 끊은 간호사의 유족들은 “(죽은 간호사가) 일상적으로 폭언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았다”며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병원서 두 사람이 연이어 자살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한 포털 사이트에는 간호사 문제를 다루는 토론방이 등장했다. 그곳에서 ‘태우다’라는 은어가 나왔다. 간호사들의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고 그 과정서 태움 문화라는 간호사 세계의 악습이 세상에 알려졌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일정 정도의 엄격함은 용인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대중들도 쏟아진 경험담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서울 K대학병원서 근무했던 Y(28)씨는 근무 과정서 선배 간호사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약품을 정리하는 도중 다짜고짜 얻어맞은 Y씨는 너무 놀라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후 긴장하라는 의미로 엄하게 대했다는 선배의 얘기가 있었지만 Y씨는 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그만뒀다.
 

일부 간호사들은 일적인 부분서 선배에게 욕설 등의 심한 말을 듣는 것도 서럽지만 개인적인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는 점에서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옷 정리, 식사 준비, 모닝콜까지 후배 간호사들의 일은 업무 외에도 넘치도록 많았다.

J씨와 Y씨는 “병원은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공간”이라며 “한순간의 실수로 환자에게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해야 하는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그 정도가 너무 과해 신입 간호사들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게 현실”이라며 “그 힘든 대학 과정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해 병원에 입사했다가 선배의 괴롭힘에 못 이겨 그만두는 게 상식적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2015년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무려 33.9%에 달한다. 높은 이직률 탓에 입사 100일, 입사 1년이 되면 축하 파티를 해주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 조사에선 간호사 76%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열악한 근무환경과 극심한 노동강도’를 꼽은 이들이 많다. 간호사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8.25년으로 채 9년이 안 된다. 현장에선 늘 인력이 부족하지만 간호사들은 떠밀리듯 병원을 떠난다.

못 버티고 퇴사

대한간호협회는 성심병원 사태를 두고 “모든 간호사들의 소명 의식과 자긍심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중대한 사건”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의료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현재 준비 중인 ‘간호사인권센터’를 통해 근로현장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막고 간호사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간호사 임신 순서는?

여름 휴가철이 되면 직원들끼리 휴가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경우가 있다. 

휴가철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와 비슷하게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임신순번제’라는 게 있다. 간호사 여러 명이 동시에 임신하면 업무에 차질을 빚기 때문에 아예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순서를 어기고 임신을 할 경우, 심하면 퇴사를 종용 받기도 한다.

임신을 해도 축복보다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실제 임신한 한 간호사는 산달까지 일하다가 출산 2주 전에야 휴직을 신청할 수 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은 간호사 수급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지난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서 발표한 내년에 부족한 간호사 수는 12만명이 넘는다.

이미 농어촌 지역이나 중소 병원은 간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부분 간호사들은 힘든 환경서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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