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테스트’를 아십니까?

2017.11.06 10:42:37 호수 1139호

유영철 38점 강호순 27점 이영학 25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일반인과 비교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사이코패스 테스트(PCL-R, Psychopathy Checklist-Revised)는 특정 문항을 이용해 그들의 시각을 분석, 의도를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희대의 살인마로 알려진 범죄자들은 이 테스트서 대개 높은 점수를 받았다. PCL-R을 <일요시사>가 분석해봤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불과 10여년 사이에 우리 사회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단어가 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는 전문 용어에 가까웠다. 그러다 2004년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검거되면서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현재는 영화, 드라마, 소설의 주요 소재로 사용될 만큼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생활 속 그들

최근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이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영학은 딸의 친구 김모양을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를 먹여 재운 후 성추행하다 아이가 깨어나 저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아내 최모씨를 성매매에 동원한 뒤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중을 경악시켰다.

이영학의 범죄 수위가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판명나면서 그에게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영학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 사건 기사에는 “사이코패스 아냐?” “사이코패스 같다” 등의 댓글이 심심치 않게 달렸다.


24점 이상이면 위험 분류
공감 능력·범죄 경력 물어

실제 이영학은 사이코패스 테스트서 25점을 받았다. 이영학을 면담한 이주현 서울청 과학수사계 프로파일러는 지난달 13일 수사결과 브리핑 자리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를 평가할 때 이영학은 40점 만점에 25점을 받았다”며 “25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보는데, 이영학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25점은 사이코패스로 넘어가는 경계선으로 강력범들 중에서도 상위 10∼15% 수준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교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타인을 괴롭히는 걸 재미로 느끼는 특이한 사람들”이라며 “극도의 자극을 추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범죄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보면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 또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 상대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될 만큼 처세술도 능수능란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코패스를 진단하는 도구로는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만든 PCL-R이 주로 사용된다. 조은경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와 이수정 교수가 한국판으로 표준화했다. PCL-R은 20개 문항으로 구성돼있다. 피검사자는 전문 검사자가 불러주는 문항을 듣고 ‘아니다(0점)/아마도(1점)/그렇다(2점)’로 나눠서 답한다.

만점은 40점이고 우리나라에선 24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미국은 30점 이상부터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범죄 기록이 다양하지 않고 아동·청소년기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차이다. 미국과 우리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기준점을 보정했다.

PCL-R은 피검사자의 ‘과도한 자존감’ ‘죄책감 결여’ ‘타인을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 ‘청소년 비행’ ‘범죄 경력’ 등에 대해 묻는다. 1년간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38점, 중곡동 주부 살해범 서진환은 31점, 어린 아이를 엽기적으로 성폭행한 조두순은 29점,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27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죄 전까지 성향 잘 안드러나
‘천사’로 불렸던 범죄자도 있어

PCL-R 결과 만점을 받은 범죄자도 있다. 2005년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엄 여인’이라는 여성에 대해 다뤘다. 엄 여인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피해자와 주변 지인들은 그녀를 ‘천사’로 기억할 정도. 


하지만 엄 여인 주변에선 첫 번째 남편, 두 번째 남편, 그녀의 자녀들까지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천사로 불렸던 그녀는 수면제를 투여한 뒤 바늘로 눈을 찔러 실명시키고, 남편의 배를 칼로 찌르는 등 극악무도한 살해 수법을 사용했다. 남편 두 사람이 기이하게 죽은 점을 의심한 가족들까지 모두 살해하는 등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인터뷰서 “엄 여인의 남동생이 ‘누나 주위에는 안 좋은 일만 있다’고 말했다”며 “엄 여인 주변 인물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 여인은 처음 진술서 보험금을 타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서 금전 관계가 없는 가사도우미 집에 방화를 일으켜 가사도우미의 남편을 숨지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

맹신은 금물

형량을 줄이기 위해 마약 중독이라는 변명까지 내놨지만 엄 여인의 체내에선 마약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엄 여인은 PCL-R서 40점 만점을 받았다. 이수정 교수는 “사이코패스 테스트 결과 엄 여인은 모든 기준에 전부 만점이었다”며 “매우 희귀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엄 여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문항이 대중에 널리 공개된 PCL-R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모두 사이코패스 성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고도로 훈련받은 심리 전문가가 피검사자와 면담, 기록 자료 등을 종합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이코패스 성향은 강호순이 유영철보다 더 강하다는 분석이 있었지만 PCL-R 결과는 오히려 유영철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 전문적인 분석이 병행되지 않는 이상 점수만 두고 사이코패스로 단정 짓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이코패스 구별법?

각종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자주 드러나면서 ‘사이코패스 공포’가 늘고 있다. 특히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범죄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될 만큼 처세술에 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이코패스 구별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홍혜걸 박사는 사이코패스를 ‘양복을 입은 뱀’에 비유하며 “자신을 잘 위장하고 감정 조절이 뛰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이 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 심리학과 교수는 표정 변화를 언급했다. 일반인의 경우 불안함 등의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데 반해 사이코패스는 그 변화가 매우 적다고 전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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