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알바하는 노인들 ‘실상’

2017.04.03 11:00:12 호수 1108호

몸 팔고 생체실험까지…힘든 말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평균 기대수명은 늘어난 반면 은퇴 연령은 빨라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평균 기대수명에 비해 행복수명은 8년 이상 짧다는 결과도 있다. 사망에 이르기까지 8년 정도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노인 인구는 매년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복지는 그에 비례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늘그막에 불안정한 생활에 던져진 노인들은 살기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내년이면 칠순을 맞는 서울 서초구의 한씨 할머니는 2015년부터 아파트 청소 일을 시작했다. “자식들도 먹고살기 힘든데 손 벌릴 수는 없고, 연금만으론 버거워 (일을) 하게 됐다”며 “마땅히 할 줄 아는 게 없어 청소 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노인들이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20∼30대 구직자와 경쟁하는 것은 물론 같은 연령대 노년층 간 일자리 다툼에 내던져진 채 방치되고 있다. 경쟁 끝에 어렵사리 따낸 일자리의 질이 낮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70세까지 일해야

지난달 20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2017년 3월 월간 노동리뷰’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 82.1세로 과거 45년 동안 20세가량 높아졌다. 반면 주된 직장으로부터 은퇴하는 연령은 2005년 50세에서 2016년 49.1세로 오히려 낮아졌다.

선진국에 비해 근속이 짧고 직장서 은퇴 나이가 빨라지면서 연금 등 노후 소득 부족으로, 65세 이상 노인 2명당 1명꼴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층의 빈곤율은 46.9%로, OECD 평균(12.6%)과 비교해 4배 가까이 높다.


노인 인구↑ 일자리 경쟁↑
고령 2명당 1명 빈곤 시달려

‘소일거리’가 아닌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노년층의 비율이 증가했고, 이는 노동시장 은퇴 연령 증가로 나타났다. 노동시장 은퇴 연령은 2000년 남성 67.1세, 여성 65.9세에서 2014년 각각 72.9세, 70.6세로 5년 이상 늘어났다. 70세가 넘어서야 노동시장서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이다.

통계청의 ‘노인실태조사: 전국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취업노인의 종사 직업은 단순노무직이 36.6%로 가장 많았다. 과거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취업 노인의 50% 이상이 농·어·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2014년 단순노무직에 취업한 노인은 2011년과 비교해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아파트 경비원, 지하철 청소 일을 하는 노인들을 이전보다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문제는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알바 인생’으로 전락한 노인층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는 점이다.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노인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또 60대 초반의 노인들이 60대 후반의 노인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내는 기현상이 발생하면서 빈곤 문제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노인 취업시장서도 갈 곳을 잃은 이들은 단기 임시직에 뛰어든다. 전체적으로 임시직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인 데 반해 60세 이상에서는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시직은 1개월 이상 1년 미만인 단기 일자리를 의미한다.
 

전체 임시직은 지난해 11월 같은 기간 대비 17만4000명 증가, 12월에는 11만3000명이 늘었다. 올해 1월에는 1만9000명으로 증가폭이 크게 둔화됐고, 2월에는 오히려 9000명 감소했다. 반면 60세 이상 임시직은 지난해 12월 13만8000명, 올해 1월 11만3000명, 2월 9만1000명, 3월 11만7000명 등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경비나 청소직에 국한됐던 노인 일자리는 주차요원, 베이비시터, 패스트푸드 직원 등으로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노인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일자리는 임상시험이다. 20∼30대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임상시험 알바가 노년층의 ‘희망알바’로 각광받고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구조는 어린이들의 비율이 줄고 만 65세 이상의 비율이 늘어나는 전형적인 고령화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행정자치부는 만 65세 이상 인구가 699만5652명으로 전체 인구의 13.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반면 만 15세 미만 인구는 691만6147명으로 전체 인구의 13.4%였다. 만 65세 이상 인구가 만 15세 미만 인구를 앞지른 건 행자부가 2008년 주민등록 통계관련 시스템으로 인구 통계를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사회로 진입 초읽기 상태다.


임상 시험…시위에 동원도
‘살기 위해’ 일터서 허우적

고령인구의 증가로 노인들이 자주 걸리는 질환에 대한 치료약 개발이 활발해졌다. 치료약을 시판하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이 필요한데, 여기에 노인들이 대거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임상시험이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으로 주로 제약회사나 병원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벽면 광고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한 대형회사가 고혈압·고지혈 관련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 전체 지원자 중 절반가량이 60대 이상 노인이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진행한 골다공증 임상시험 지원자 모집에도 노인들이 몰렸다. 노인들이 임상시험 알바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일에 비해 수당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험 의약품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약을 1회 투여하는 데 평균 4만∼5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최저시급 언저리서 왔다 갔다 하는 경비, 청소직에 비해 고수익이라 돈이 궁한 노인들에겐 ‘꿀알바’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제약업계 측에서도 고령층 의약품 시장이 커지는 만큼 노인 임상시험 대상자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높은 보수가 곧 위험수당이라는 점이다. 임상시험 알바가 20∼30대 젊은 층에 한창 인기를 끌 때 ‘마루타 알바’라는 말이 함께 유행했다.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르는 임상시험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돈을 버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시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식약처에 따르면 임상시험 도중 약물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신고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총 476건에 달했다.

일각에선 노인들이 돈을 받고 집회·시위에 참석하는 일도 빈곤 문제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6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화이트리스트’를 언급했다. 정부와 반대되는 성향의 문화체육계 인사들의 명단이 담긴 ‘블랙리스트’와 달리 화이트리스트는 정부가 지원하고 관리하는 특정 단체의 명단을 일컫는다.

슬픈 자화상


특검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2014년 대기업서 받은 자금과 전경련 자금을 합해 청와대 지정 22개 단체에 지원했다. 특검은 이 돈이 세월호 참사 반대집회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이 사실은 지난해 4월 <시사저널>이 보도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개최한 세월호 반대 집회에 일당 알바가 대규모로 동원됐다는 의혹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빈곤에 떠밀려 마구잡이로 선택하는 일들이 자신의 몸을 망치는 것은 물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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