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도둑’ 리셀러를 아십니까?

2017.01.31 11:10:10 호수 1099호

20만원짜리 신발이 600만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산 물건을 되파는 ‘리셀러(Reseller)’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되팔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물건을 구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것. 하지만 리셀러들은 정당한 경제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리셀러란 한정판 제품 등 인기 있는 상품을 비싸게 되팔 목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을 말한다. 시간과 정보만 있으면 리셀(resell)을 할 수 있고 투자하는 돈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리셀러의 대부분은 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가 수십배

리셀 상품은 의류, 레고, 전자제품 등부터 팬 사인회 대기 순서 등 무형의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 리셀러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입장과 리셀은 정보와 노력을 투자하는 정당한 이윤 추구 행위이라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최근 직장인 김모(28)씨는 한 커피전문점 한정품을 사면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줄 서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사재기를 위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온 것. 한 사람이 사재기하면서 줄 서 있던 사람들 중 다수가 물건을 구입하지 못했다. 해당 제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 중고 사이트서 정상가의 2배를 넘는 금액으로 재판매됐다.

이모(34)씨는 최근 유명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 예매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티켓 판매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예매가 종료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씨는 온라인 중고 사이트 등을 통해 티켓을 구매하려고 했으나 판매가가 당초 정상가의 3배에 달해 포기했다.


사회적 이슈가 됐던 허니버터칩 품귀현상의 배경에도 리셀러들이 있었다. 당시 한 달 동안이나 닥치는 대로 편의점과 수퍼마켓을 모조리 뒤지고도 허니버터칩을 찾지 못했던 회사원 김모(30)씨는 결국 중고물품 카페서 한 봉지를 6000원에 샀다.

택배비 4000원까지 포함하면 정가 1500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1만원에 맛본 셈이다. 김씨는 “심지어 아르바이트생에게 입고 날짜까지 물어본 뒤 찾아갔지만 판매대가 늘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온라인서 산 물건 되파는 중간상인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시장 교란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판매 전문 온라인 사이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SNS에서는 전문 리셀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재판매 대상은 과거 유명 브랜드 의류, 신발 등에서 최근에는 장난감, 식료품 등으로 다양해졌다. 특히 신발 등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재판매가 가장 활발하다.

일부 상품은 정상가의 수십 배에 재판매되고 있다. 실제 미국 유명 가수 카니예 웨스트가 나이키와 협력해 만든 신발 ‘나이키 에어 이지Ⅱ레드 옥토버’는 20만∼30만원 수준으로 발매됐지만 현재 리셀러를 통해 400만∼600만원대에 재판매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본인이 사용하다 활용가치가 떨어진 물건을 재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되팔 목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는 봇(bot)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물건을 자동 구매하거나 티켓을 예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 구매자가 예약 등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봇은 ‘조던봇’ ‘슈프림봇’ 등 인기 품목에 맞춰 세분화돼 있으며 유명 판매사이트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경력 10년의 리셀러 김모(29)씨는 “봇을 돌리면 발매 시점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시 접속해 사이트가 마비돼도 여유 있게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을 수 있다”며 “프로그램 구입에 500만∼1000만원가량 들지만 이를 회수하는 데 1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일부 리셀러들은 가격 담합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중고 조던 운동화를 판매하려던 A씨는 리셀러들로부터 날벼락을 맞았다. A씨는 “중고라 정가에 내놓는다는 글을 올렸더니 리셀러들로부터 ‘왜 시세를 낮춰 장사를 방해하느냐’는 협박성 쪽지 폭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일부 리셀러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2년차 리셀러 이모(30)씨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리셀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노력을 통해 공정하게 얻은 기회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수요가 있어 공급하는 것인데 수익률이 높아 사람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이어 “간혹 되팔기에 실패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는데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인식하면 될 듯하다”며 “되팔기를 정당한 경제활동으로 인식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리셀러의 극성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일부 업체들이 리셀러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소비자 전체의 이익에서 본다면 다른 소비자들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리셀러 활동은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리셀러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일부 기업들이 이를 마케팅에 이용, 방관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자율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의류, 레고…사인회 대기 순서도
“피해 입는다” vs “정당한 행위”

리셀러들로 인해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자 판매업체들도 진화에 나서고 있다. 일명 ‘발망 대란’을 일으킨 H&M 관계자는 “일부 리셀러들은 짧은 시간에 매장 물건을 싹쓸이하느라 바닥에 물건을 늘어놓거나 이를 제지하는 직원과 언쟁을 벌이는 등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며 “내년부터는 판매 매장 수나 품목제한 등의 방법을 동원해 문제점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키는 최근 매장 앞 장사진을 친 구매 행렬을 막기 위해 아예 온라인 추첨제를 국내에 도입했다.

제일 큰 문제는 리셀러들이 온라인 시장의 유통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으나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과세당국은 재판매 행위도 부가세 부과 대상에 해당하지만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SNS 등 온라인을 통해 거래하는 리셀러의 속성상 적발이 어려워 사실상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제재방법 없나?

한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리셀러들은 정식 사업자가 아닌 탓에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판매업체가 애초에 한정 상품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구매를 제한하고 소비자 스스로 리셀러들의 터무니 없는 가격 요구를 외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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