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카이스트 교수 ‘방송도 속고 독자도 속았다’

2011.01.11 09:27:43 호수 0호

‘제2의 신정아’ 전정봉씨 허위학력 혐의 기소 <내막>

카이스트 교수이자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장으로 알려졌던 전정봉(63)씨가 약 10년간 자신의 학력을 속여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4년 전 허위 학력으로 동국대 교수를 지냈던 신정아 사건 이후 허위학력 파문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문젯거리다. 하지만 전정봉씨의 허위학력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이름 석자만 빼면 모두 거짓이었다는 점과, 연구비 편취, 강의료 횡령 등 명백한 범죄 행위에 허위학력을 이용했다는 데 있다. 특히 그는 이 가짜 학력으로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거짓말에 방송도 독자도 모두 놀아난 것. ‘짜가’가 판치는 세상 속 ‘인간 짜가’ 전정봉씨 허위학력 혐의 기소 내막을 들여다봤다.

미국 명문대 박사 출신 카이스트 교수 사칭 ‘10년 속여’
연구비 편취, 강의료 횡령 등 부당이득 챙겨 ‘이럴 수가’
네티즌, ‘카이스트’ 방관자 의혹? 학교 측 신고로 ‘덜미’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박사 출신의 카이스트 교수, 여기에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장까지. 이 화려한 경력은 모두 가짜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박철)는 지난 3일 가짜 경력, 허위학위로 연구비를 편취하고, 강의료를 횡령한 전정봉(63)씨를 사기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짜가’가 판친다”

실제 전씨는 눈부신 가짜 경력으로 경영 관련 책도 여러 권 내고 라디오와 TV에도 출연했으며, 2004년에는 한 케이블 방송에서 CEO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참으로 얄궂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 2002년부터 자신의 학력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에 미국 워싱턴대 석사 및 펜실베이니아대 박사학위를 획득했다고 주장·소개하며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언론사의 인물 DB에도 등록했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 국내 모 대학 무역학과 학사과정만 졸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씨가 내세운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 역시 사실상 1인 연구소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전씨의 대담한 사기 행각은 상식을 뛰어넘었다. 2006년 그는 자신을 카이스트 마케팅연구소 소속 교수라고 소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주겠다”며 수협중앙회 전략마케팅 용역계약 담당 직원 A씨에게 접근했다.

이어 전씨는 A씨에게 카이스트 연구동에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17명의 상근 연구원과 10명의 보조 요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연구계획서를 건넸다. 안타깝게도 A씨는 전씨의 허위 계약서에 속아 전씨와 계약을 맺은 뒤 용역비로 2000여 만원을 지급했고, 사기의 성공에 힘입은 전씨는 이듬해 2월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모 인터넷교육업체와 연구용역을 체결하고 4400만원을 받아내는 등 다른 기업들도 속여 연구비 명목으로 총 9580여 만원을 받아 챙겼다.

전씨는 또 위조학력과 교수 직함을 들고 철도인력개발원에 접근했다. 개발원 측은 ‘1984년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1989~2007년 카이스트 교수’라는 전씨의 프로필을 믿고 강의료 90만원을 지급했다. 전씨에게 ‘돈 벌기’는 ‘누워서 떡 먹기’ 만큼 쉬운 일에 불과했다.

그런가 하면 전씨는 가짜 경력과 허위학력을 이용 사기행각을 벌이는 와중에 라디오와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중소기업을 위한 산학 연구에 몰두했다’면서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전씨가 낸 책은 <시장조사론> <통합마케팅> <사장학 특강> <강한기업의 경쟁력> <창업닥터> <이 시대의 작은 거인들> <일류 팀장도 놓치기 쉬운 36가지 룰> <21C 이렇게 하면 마케팅 전략 성공한다> 등 16권에 이른다.

또 전씨는 KBS 라디오와 BBS 라디오에서 <경제 레이다>와 <전정봉 교수의 열린 경제>를 오랫동안 진행했으며, MBC-TV 및 SBS-TV에서 <경제포커스>와 <기업탐구>를 진행했고, 지난해까지 CEO 대담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으로 알려진 그의 허위 명성과 그가 내세운 완벽한 서류는 누가 보더라도 의심할 여지없이 학력과 경력을 포장했고, 방송사의 제작진들 역시 감쪽같이 속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전씨가 지난 2009년 한국 신문기자 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한민족 대상’ 마케팅경영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짜가’가 판치는 그의 경력과 학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씨의 호사는 여기까지였다. 방송과 출판, 기업체와 공공기관들을 오가며 사기와 횡령, 편취 등으로 돈을 쓸어 모았던 전씨의 거짓은 본인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주장한 카이스트에 의해 들통났다. 지난해 사실 확인을 한 카이스트 측이 전씨를 형사고발한 것.

“누워서 떡 먹으면 체해”

카이스트 측은 전씨가 카이스트 내 산학협력업체에서 일할 당시 교수를 사칭한다는 소문을 듣고 2001년 전씨를 퇴출했지만 이후에도 전씨의 카이스트 교수 사칭은 계속됐다. 결국 카이스트 측은 지난해 5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에 전씨를 형사고발했고, 10여 년간 지속됐던 전씨의 사기 행각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TV까지 나오는 대담함에 정말 소름 돋았다” “TV 출연해 말 진짜 잘하던데 다 거짓이었다니 충격적이다” “학력 위주의 사회가 불러온 폐단”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형사고발과 검찰의 기소로 전씨의 대담한 사기행각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뿌리 내리고 있는 허위학력 실태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학력 위주의 사회가 어떤 폐단을 가져올 수 있는지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경각심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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