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선관위, 정치자금법 위반 26명 고발·7명 수사의뢰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에 지방선거 후폭풍이 불어올 조짐이다. 신호탄은 공천헌금이다. 현직 국회의원과 지역구 위원장이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좌불안석이다. 민주당의 A의원, 한나라당 B의원에 대한 검찰의 내사가 끝났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정기국회만 끝나면 소환이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동반했다. 선거비용과 정치자금법 위법행위로 고발이나 수사의뢰 건만 100여 건이 넘는다. 당선된 후 업무를 보고 있지만, 마음이 불안한 이유다. 국감 이후 대대적인 사정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태철)는 지난 10월14일 지방선거 출마자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민주당 김희선 전 의원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6·2 지방선거의 동대문 지역구 출마자와 당직자 등에게서 사무실 운영비 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부인
공천 대가로 금품 요구
검찰은 이에 앞서 4일 제3자를 통해 김 전 의원에게 2000만원의 현금을 건넨 혐의로 동대문구 구의원 출마자 정 모(55)씨를 구속했다. 또 9월 13일에는 박승구 동대문구의회 부의장과 김희선 전 의원 사무실 사무국장 최모씨를 구속했다. 박 부의장과 최씨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동대문구 구의원 후보로 공천한 이모씨로부터 각각 3000만원과 2800만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이씨로부터 박 부의장과 최씨에게 돈을 전달한 시점과 금액 등이 상세히 기록된 수첩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연합 대표도 공천헌금으로 구속 기소됐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6·2 지방선거에서 수천만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친박연합 대표 박준홍씨 등 2명을 구속 기소했다. 또 박씨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대구시의원 주모씨를 구속 기소하고, 구의원 신모씨 등 2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박씨 등은 지난 5월 지방선거에 앞서 비례대표 1순위 공천을 주는 대가로 현직 시의원인 주씨와 신씨에게서 각각 3000만원과 5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친박연합은 지난 선거에서 대구와 경북 등에서 기초·광역 의원 20여 명을 당선시켰으나, 지난 7월 당 지도부 사이에서 부정부패 의혹이 제기되며 내분을 겪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부인이 공천 영향력을 내세워 돈을 챙기기도 했다. 한나라당 윤영 국회의원 부인 A(47)씨는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요구, 수수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제1형사부는 9월27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회의원 부인의 신분으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서 공천 희망자의 기대 심리를 이용해 금품을 수수하는 등 공정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현행 선거법의 입법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해 엄격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판시했다.
또 A씨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광역의원 부인 B(55)씨와 시의원 출마 후보자 부인 C(58)씨에게는 각각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2000만원, 1억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6·2 지방선거 거제지역 한나라당 후보자 공천과정에서 각각 2000만원과 1억원의 공천헌금을 주고받은 혐의로 지난달 9일 A씨는 구속기소, B씨와 C씨는 불구속기소 됐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 거제시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부인에 대한 유죄가 인정된 만큼 윤영 의원은 이번 사태에 무거운 책임감과 반성의 자세로 거제시민들에게 사죄하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영 의원은 공천헌금 관련해 부인이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법정에서 명백한 진실이 밝혀지고 재판결과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며 시민사회의 사퇴요구를 외면해 왔다.
공천 금품 수수 친박연합 대표 구속·국회의원 부인 징역
선거사무소장·직계존비속 벌금형 시 연대책임 ‘당선무효’
윤 의원 부인 측은 “1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한편 B씨의 1심 형량이 최종적으로 확정될 경우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남편 김모 도의원은 의원직을 잃게 된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 외에도 검찰이 단서를 포착하고 이미 내사를 마친 것만도 여러 건이기 때문이다. 공천을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민주당의 A의원과 한나라당 B의원 등에 대해서도 조만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헌금 파동은 역대 정치권의 큰 변수로 작용했다. 특히 공천비리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 강세 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다. 일단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18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공천 파동을, 총선 후에는 ‘공천 헌금설’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친박연대와 창조한국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사법 처리를 받았을 뿐 집권당과 제1 야당의 공천 헌금 문제는 베일에 가려졌다.
당시 사법처리를 받은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했다.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당선된 230명의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34명이 뇌물수수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사퇴했다.
한나라당은 박성범, 김덕룡 의원이 공천을 대가로 거액을 받은 혐의로 4월13일 소속당에 의해 검찰에 수사 의뢰가 이루어졌다. 결국 박 의원은 탈당을 하고, 김 의원은 정계은퇴 의사를 내비쳤다.
매관매직해도
영원한 금배지
공천 헌금을 풍자한 노래도 2006년에 등장했다. 80년대 대표적인 민중가요 작곡가이자, 2004년 탄핵정국 당시 ‘너흰 아니야’로 이름을 떨쳤던 윤민석 송앤라이프 대표가 정치권을 풍자해 만든 ‘It’s a magic’이다.
노랫말은 이렇다. “매관매직 차떼기 성추행 술꼬장 magic It is a magic! 매관매직 저들만 할 수 있는 놀라운 magic 차떼기 술꼬장 성추행 매관매직을 하여도 저들은 영원한 금배지 It’s amazing It’s a magic!”
현행 공직선거법 제47조의2(정당의 후보자추천 관련 금품수수금지) 조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정당이 특정인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일과 관련하여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의 이익 또는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제공을 받거나 그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누구든지 제1항에 규정된 행위에 관하여 지시·권유 또는 요구하거나 알선하여서도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제230조 제6항에 의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2008년 2월29일 신설된 이 조항은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처벌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해 공천과 관련되어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받은 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최근 제5회 동시지방선거 관련해 선거비용과 정치자금법 위법행위로 100여건 이상을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했다.
선관위에 적발된 선거비용 위법행위는 모두 1681건이다. 이중 78건이 고발됐고, 14건은 수사 의뢰됐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18건 고발됐고 3건이 수사의뢰됐다. 민주당은 14건 고발, 1건 수사의뢰다.
당후원금과 공천헌금
구별의 모호성
정치자금법 위법행위는 모두 397건으로 조사됐다. 이중 26건이 고발됐고, 7건은 수사의뢰됐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고발 7건, 수사의뢰 4건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당 고발 2건, 수사의뢰 1건, 자유선진당 고발 2건, 민주노동당 고발 3건 등이다.
유형별로는 법인이나 단체 등 기부제한자의 후원금 기부가 고발이나 수사의뢰 유형 중 가장 많았다. 다음이 법정 외 정치자금 수수, 후원금 납입·기부한도 초과가 뒤를 이었다.
수법도 가지각색이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이후 임승빈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이 분석한 유형 중 최근에도 널리 사용, 적발된 유형을 살펴봤다.
첫 번째가 잠시 돈을 맡아두었지만 원주인이 찾아 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수법이다. 먼저 공천을 신청한 자보다 후에 신청한 자가 공천헌금이 큰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례로 임 위원장은 평가했다. 일단 받아 두었다가 후에 처리된다. 이 유형은 상당히 범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수법으로 차용증을 써주고 나중에 갚는다는 식의 공천 계약금 수수형태다.
두 번째는 후보자들의 막무가내식의 돈 두고 가기다.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측근이 공천헌금을 수수하는 수법이다. 권력자 측근이 직접 공천헌금을 수령하는 전통적인 기법이다. 네 번째는 당 후원금과 공천헌금과의 구별의 모호성을 이용하는 수법이다. 당 후원금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자신의 공천헌금을 당 후원금이라고 탈바꿈 내지 말 바꾸기 쉽도록 하는 수법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공천헌금이나 조직관리비 등이 은밀하게 이뤄지는 돈 선거의 특성상 내부자 신고·제보 없이는 적발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며 “돈 선거 근절을 위해 내부자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