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 YS가 찾아내고 키운 이들로 ‘꽉’
왼팔, 오른팔에 거물들 끼고 현실 정치 노릴까
여의도에 ‘YS의 사람들’이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발을 들였거나 정치적인 성장을 한 사람들이 여야 중추에 자리하게 된 것. 이는 현 정권 출범 후 이명박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행보와 더해져 갖가지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 정가 일각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현실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유일한 정치원로가 된 김 전 대통령이 ‘YS의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부활의 날개짓을 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부 거물급 정치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여야 정치권에 고루 자리 잡고 있지만 정치권 입문 배경을 살펴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정리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 전 대통령이 발탁, 정치권으로 불러들인 이들이 승승장구하면서 ‘김 전 대통령이 심은 사람들’이란 뜻의 ‘영심이’라는 신조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야 모두 ‘영심이 시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현역 정치인 중 대표적인 YS계 인사다. 김영삼 대통령 후보 시절 보좌역으로 정치에 발을 들인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문하생으로 대통령 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으나 박 전 대표와 멀어진 후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을 맡아 여야의 조율을 맡고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화해를 선언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만남에서 상도동계의 대표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YS로부터 정치를 배웠다”면서 “김 전 대통령과는 13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았다 반납했을 때와 이회창 총재의 비서실장을 맡았을 때 등 두 번 틀어졌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이 자리에 오도록 해준 큰 은인으로 완전한 신뢰관계가 형성돼있다”고 말한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안경률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최형우 전 의원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지난해 10월 재보선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측면지원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친이계로 분류되는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도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정무비서관을 지냈으며, 지난 8·8 개각의 일환으로 청와대에서 물러난 박형준 전 정무수석은 김영삼 정부 시절 최연소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으로 발탁된 이다.
김 전 대통령이 현재 거물급으로 성장한 이들을 대거 발탁한 건 지난 15대 총선에서다. 당시 신한국당은 여소야대 상황이 예상되자 ‘개혁공천’ 카드를 빼 들었다. 당내 반발이 있었지만 법조계와 학계, 재야에서 대표 선수들을 고른 뒤 철저히 여론조사와 인지도를 고려해 공천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이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들 중에는 높은 인지도와 강한 정치 생명력을 기반삼아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한 사례가 적지 않다.
당시 ‘새 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한 안상수 검사와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홍준표 검사가 수혈됐다. 이들은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각각 당 대표와 최고위원으로 선출돼 지도부에 합류했다.
재야에서는 민중당 출신 이재오, 노동운동계의 대부 김문수 후보가 각각 서울 은평과 경기 부천소사에서 당선됐다. 현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은 지난 7월 재보선을 통해 정계로 복귀한 후 특임장관이라는 중책까지 맡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후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다.
학계에서 발탁, 당시 서울 서대문을에 공천을 받았던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은 차기 감사원장 하마평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야권에서도 ‘영심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김영삼 정부 시절 감사원장에서 국무총리, 그리고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전력이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고른 인재다. 김영삼 정부 집권 초인 1993년 김 전 대통령이 개혁추진에 걸맞은 인물을 당시에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려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던 것. 김 전 대통령은 평소 “내가 직접 고른 사람이 손학규”라며 애정을 표시해왔다.
당시 손 대표는 ‘대통령이 불렀다. 개혁 위해 나섰다’는 선거 구호로 경기 광명 재보선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이 밖에도 김 전 대통령은 ‘영남의 맹주’라 불릴 정도로 정치적 기반을 영남에 두고 있다 보니 YS계에 속해있지 않다 하더라도 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치인들은 김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야 지도부에 자리 잡고 있는 ‘영심이’들의 활약과 더불어 김 전 대통령도 최근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이 발탁한 ‘사람들’과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주는 유일한 정치원로’라는 점을 활용, 막후정치의 힘이 강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막후정치 우려 제기
이 같은 우려는 특히 야당인 민주당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손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한 것을 시작점 삼아 한나라당 소장개혁파의 리더로 당 대변인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쳐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대권주자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영심이 시대’의 활용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영심이’라는 말로 여야 주요 인사들을 한데 묶을 수는 있겠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들이 정계로 들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을 뿐”이라며 “지금은 각자의 위치가 있고, 개인적인 인연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할 만한 이들도 아니”라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