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김종인의 대리청정, 그 끝은?

2016.03.14 14:29:50 호수 0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조 8대 임금인 예종이 승하하자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여걸로 평가받고 있는,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실시했던 정희왕후(세조의 부인)가 전교를 내린다. 조선왕조실록을 인용한다.



『이제 원자가 바야흐로 어리고, 또 월산군은 어려서부터 병에 걸렸으며, 자을산군이 비록 어리기는 하나 세조께서 일찍이 그 도량을 칭찬하여 태조에 비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그로 하여금 주상을 삼는 것이 어떠하냐?』

상기 기록에 등장하는 원자는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고 월산군은 오래전에 사망한 큰 아들 덕종과 인수대비의 큰 아들이고 자을산군은 덕종의 둘째 아들이다. 조선조 왕위 승계절차를 살피면 당연히 제안대군이 보위에 올라야했다.

그러나 정희왕후는 이외의 선택을 한다. 제안대군 그리고 서열 2위인 월산군을 제치고 서열 3위였던 자을산군을 선택한다. 그것도 예종이 죽은 바로 그 날 말이다. 이와 관련해 정희왕후는 세조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의 정치역학을 살피면 답이 나온다.

정희왕후가 비록 왕실 최고의 어른이었지만 절대권력은 지니지 못했다. 하여 그녀는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와 가례를 맺은 성종을 선택해 훈구파와 결탁하고, 이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수렴청정을 실시해 손자를 ‘이루다’는 의미의 성종(成宗)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왜 정희왕후의 아들인 예종이 만 20세가 되기 딱 한달 전에 세상을 등졌는가의 부분이다. 예종은 세조가 죽자 보위에 올랐는데 당시 그의 나이 열여덟이었다. 만 20세가 되지 않은 관계로 당연히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해야 했다.


그런데 예종은 보위에 오르자마자 어머니인 정희왕후를 무시하고 홀로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태종 이방원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의 손자로 정희왕후의 지원을 받고 있던 남이 장군을 역모로 몰아 죽이는 등 정희왕후의 통제를 벗어나는 행동을 일삼았다.

그리고 성인이 되기 한달 전에 건강하기 이를 데 없는 예종이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 독살설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예종이 죽은 이후 정희왕후의 태도를 살피면 능히 짐작된다.

임금이 죽으면 반드시 그 사인을 조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종의 경우에는 예외였다. 정희왕후의 엄명으로 예종의 사인을 조사하지 못하고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겨지고 이는 예종의 독살설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 시선을 현실로 돌려보자. 지금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실소유자로 지목되는 문재인 전 대표를 대신해 이른바 대리청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김 대표의 행동을 살피면 단순히 대리정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민주의 모든 실권을 김 대표가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문 전 대표를 바라보는 김 대표의 시각이다. 문 전 대표의 경제, 안보 등에 관한 의식을 문제 삼았던 그는 문재인이 대표 시절 만들어놓은 혁신안도 강하게 질타하고 나섰다.

아울러 산전, 수전 심지어 공중전까지 경험한 김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문 전 대표에게 차기 대권을 맡길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여 이 부분에서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김종인의 대리청정이 향하는 곳은, 정희왕후가 아들을 제거하고 어린 자을산군을 선택하며 본인이 직접 권력을 잡은 것처럼, 바로 본인이 대안으로 나서는 게 아닌가 하는!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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