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흔적 없이 갈라선다”

2010.10.05 10:34:28 호수 0호

혼인무효소송 급증하는 까닭

법원의 판결에 따라 혼인신고 기록이 삭제되는 혼인무효소송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부각되는 사회문제 중 하나인 외국인 배우자의 위장결혼 피해자 등이 혼인 기록을 남기는 이혼소송보다 혼인무효소송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는 이유에서다. 법률상 혼인신고를 했던 남녀가 갈라서는 방법은 세가지로 나뉜다. 이혼과 혼인무효, 혼인취소가 그것인데 이 중 혼인 기록 자체가 삭제되는 것은 혼인무효가 유일하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혼인무효소송 사례에 대해 알아봤다.



기록 안 남는 혼인무효 소송 6년 사이 2배 껑충
남녀 사이 한 사람이라도 혼인 의사 없어야 가능
혼인취소·이혼 소송보다 승소율 적어 법리 꼼꼼히


서울 가정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3년 200여건에 불과했던 혼인무효소송 신청건수가 지난 2009년 500여건 이상 접수됐다. 6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2003년 207건 접수됐던 혼인무효 소송은 2005년 439건, 2007년 487건, 2008년 502건, 2009년 529건 접수되는 등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사유를 알게 되거나,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부부는 혼인무효, 혼인취소, 그리고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혼인무효와 혼인취소, 이혼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느 경우에 할 수 있는 것일까.



혼인무효 바로 알기

법률상 혼인무효 사유는 ‘당사자 간에 혼의의 합의가 없을 때’와 ‘혼인 당사자가 근친일 경우’로 제한된다.

전자의 경우, 결혼이라는 것은 물론 당사자 간의 의사 합의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혼의의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를 들 수 있고,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들이 억지로 결혼을 시킨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혼인신고가 수리되기 전에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나, 위장결혼, 공무원의 실수로 혼인신고가 된 경우 등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 등은 혼인하지 못한다’ ‘6촌 이내의 양부모계의 혈족이었던 자와 4촌 이내의 양부모계의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법률 규정에 따라 혼인무효 사유가 된다. 그런가 하면 법률상 혼인취소 사유는 ‘민법상 혼인 적령 연령을 위반한 경우’ ‘근친간의 혼인’ ‘중혼’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 의사표시를 한 경우’ 등에 해당한다.

혼인취소는 혼인무효와는 달리 소멸기간이 있기 때문에 기간 안에 청구를 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다는 사실을 혼인 당시 알지 못한 경우에는 6개월 이내에,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3개월 내에 청구해야 하고 그 기간이 넘으면 혼인취소청구가 불가능하다.

혼인무효와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 다른 이유 등은 이혼 소송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 세가지 경우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혼인무효의 경우 처음부터 혼인이 부정되는데 반해 혼인취소는 취소청구에 의해 혼인이 부정되고 취소된 날부터 혼인이 부정된다. 혼인취소 소송에는 소급효가 없는 이유에서다. 이에 반해 이혼은 유효하게 성립한 혼인생활이 당사자의 이혼 의사에 의해 해소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쉽게 말하면 혼인무효는 혼인했던 기록이 전혀 남지 않고, 혼인취소는 혼인했던 기록과 함께 어떤 사유로 취소했는지의 기록이 남게 되고 이혼은 두말 할 것 없이 기록이 남는다.

이모(37)씨는 필리핀 국적의 A(27·여)씨와 2008년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결혼식을 올렸고, 같은 해 9월 혼인신고를 마치고 11월 A씨가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A씨는 한국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 가출했고,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다만 A씨는 가출 당시 이씨에게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결혼했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 한통만을 남겼다. 이씨에 따르면 한 달 동안 두 사람은 부부관계도 없었다.

이에 이씨는 혼인무효를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진정한 혼인의사 없이 다른 목적의 달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혼인 생활의 외관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쪽 당사자에게만 참다운 부부관계 설정을 바라는 의사가 있고 상대방에게는 그런 의사가 없다면 당사자 사이에 혼인신고를 할 의사는 합치됐더라도 그 혼인은 당사자 간의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어 “A씨가 입국한지 한 달 만에 가출해 연락을 끊었고, 이씨에게 남긴 편지의 내용과 함께 한 달 간 부부관계가 없었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A씨는 한국에서 취업하기 위한 방편으로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혼인무효소송은 이씨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배우자의 위장 결혼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상대방과 동의 없이 일방이 마음대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어 혼인무효소송을 통해 혼인을 무효로 돌리곤 했다.

윤모(32)씨는 “상대방이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는 중 몰래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며 여자친구 오모(31·여)씨를 상대로 혼인무효 소송을 청구했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나 교제하던 윤씨와 오씨는 부모의 동의 없이 혼인신고를 하기로 마음먹고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혼인신고를 앞둔 윤씨는 부모의 동의를 받은 다음 혼인신고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윤씨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반대했고, 윤씨의 어머니와 오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혼인신고서가 이미 작성된 탓에 윤씨 없이 오씨 혼자 몰래 혼인신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윤씨의 어머니는 온몸을 던져 작성된 혼인신고서를 빼앗으려 한 것. 결국 두 사람의 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고, 그 과정에서 오씨는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윤씨와 그의 어머니, 오씨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됐고, 조사를 받는 도중 오씨는 치료를 받겠다며 경찰서 밖으로 나와 같은 날 오후 혼자 구청을 찾아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는 2008년 이후 급속히 줄었다. 일방이 마음대로 혼인신고를 하는 사고를 막기 위한 가족관계등록법이 2008년부터 시행된 이유에서다. 법률에 따르면 혼인신고와 같이 신고로 인해 효력이 발생하는 경우,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는다면 신분증명서(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여권 등)나 인감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때문에 이를 첨부하지 않으면 신고서가 수리되지 않아 일방이 몰래 혼인신고를 해서 발생하는 혼인무효소송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된 것.

이럴 땐 혼인무효

이런 이유로 내국인 간 혼인무효소송보다 외국인 배우자를 상대로 한 혼인무효소송이 늘고 있다.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은 혼인무효소송은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승소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혼인무효소송 신청 중 상당수가 법리를 잘못 이해하고 신청한 후 변론 중에 이혼소송으로 청구 취지를 변경하는 경우가 다수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신모 변호사는 “혼인무효소송은 그리 만만한 소송이 아니다. 재판부에 따라서는 쉽사리 혼인무효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혼인무효가 인정되지 않으면 결국 이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혼인무효소송이이혼소송보다 승소율이 적으니 법리를 잘 살펴보고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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