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호남 총리’ 뒤로 손 맞잡았나?

2010.10.05 10:00:00 호수 0호

박지원-청와대 총리 인선 ‘밀월설’ 전모



맥 빠진 인사청문회, 김태호 낙마 파워 어디갔나
제1야당 맡은 박지원 ‘봐주기 의혹’에 말년 몸살

첫 호남출신 국무총리가 탄생했다. 지난 8·8 개각에서 낙마한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후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앞에 선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가 무사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것.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 3명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의 낙마로 생긴 국정공백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을 덜게 됐다. 또한 몇몇 부처 장관들의 후임 인사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하지만 ‘호남총리’가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데 대한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제1야당과 청와대의 ‘사전 조율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무총리가 탄생했음에도 민주당 안팎의 표정은 밝지 않다. 박지원 원내대표와 청와대가 차기 총리를 사전 조율한 데다 인사청문회에서 ‘봐주기’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은 탓이다.

‘호남 총리 봐주기’ 의혹은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의 내정 발표와 함께 시작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15일 김 후보자의 인선을 두고 “지역 간 불균형 인사 해소 차원에서 일단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화력 낮춘 청문위원 당 안팎서 ‘봐주기’ 의혹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다음날 박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김 후보자는 병역기피, 세금 탈루, 사돈 회사를 위한 감사원 권한 남용 의혹과 부적절한 처신 등 문제가 많다”며 “도덕성과 자질을 국민의 눈높이로 검증할 것”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는 또 “이명박 정권은 4대 필수 과목(병역 면제,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중 몇 개를 이수해야만 총리나 장관이 된다는 것을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일갈했다.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정권 안보라인이 국방장관을 제외하면 모두 병역 면제자라는 점을 국민들이 우려한다. 이를 집중적으로 따질 것이며 낙마가 목표”라고 밝혔다.

전날 김 후보자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 당 안팎에서 ‘호남 출신 인사라 봐주려한다’는 의혹의 눈초리가 일자 강경한 태도로 전환한 것.

그러나 정작 김 후보자에 대한 공격 수위는 높아지지 않았다. 8·8개각에서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낙마에는 박 원내대표와 박병석·이용섭·박영선·박선숙 의원의 연합공격이 주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희상 의원을 비롯해 김유정·정범구·최영희 의원 등이 청문위원으로 나섰다. ‘호남 출신 총리 후보자’라서 호남 출신 의원들은 배제됐다는 설명이 이어졌지만 지난 인사청문회보다 ‘화력’이 떨어져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달 29, 30일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봐주기 의혹은 계속됐다. 당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

정범구 의원은 청문회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엄정한 검증을 해야 할 국회 수뇌부가 청문회 직전 행정부 최고수장인 대통령과 술과 밥을 곁들여 만찬을 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특히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더 적절치 않다”고 청문회 전날인 지난달 28일 이 대통령과 청와대 만찬회동을 가진 박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호남 출신 후보자여서 느슨한 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당 안팎의 불만에 펄쩍 뛰었다.

이미 호남 출신 총리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깜짝 놀랐다”면서도 “특정 지역이기 때문에 도덕성과 자질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통과시켜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던 만큼 ‘봐주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총리 후보자가 지명됐을 때 언론에서 민주당이 전남 출신이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던 것 같다”며 “우리는 야당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원칙과 명분을 지킬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수위를 낮추는데 여권과의 교감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김태호 후보자의 낙마 이후 외교부장관 등은 제청권이 없어서 국정 공백이 있었다”며 “야당도 국정의 일부분을 책임지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총리를 추천하면 우리도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것이지 특정인을 얘기한 것은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가 김태호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당시 낙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검·경 뺨치는 정보력으로 국회 상임위 활동이나 국정감사, 인사청문회에서 현 정부의 심장부를 겨냥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는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다.


날 잃은 의혹 공세…호남 총리라 봐준다고?

당 일각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김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현미경 검증을 강조했지만 실제 그러했는지는 의문”이라며 “정부여당도 두려워한다는 정보망을 돌리고 ‘흠’을 잡으려고 했으면, 의혹들에 대한 파상공세가 제대로 됐다면 결과는 달라졌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박 원내대표는 “(정치인인) 김태호 후보자의 경우 크고 작은 제보들이 당일이나 그 전에 들어왔다”면서 “김황식 후보자는 34년을 판사, 대법관을 했기 때문에 거의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인사청문회에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청문위원들과 역할 분담을 한 것”이라며 ‘봐주기 의혹’을 일축했다.
이와 관련 한 당 관계자는 “공공연히 ‘김황식 봐주자’고 하는 호남 의원들이 많고, 심지어 몇몇 의원들은 지역구에 가서 ‘내가 봐주려고 하는데 청문위원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고 다닌다”고 분개했다.

급기야 인사청문회에서 내정 발표가 있기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김 후보자가 박 원내대표를 만났던 사실이 공개돼 청와대와 박 원내대표의 총리 인선 사전조율설에 기름을 부었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 원내대표와 총리 지명 전에 만났느냐”는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총리 내정을 이틀 앞두고 박 원내대표를 만났다”고 답했다.

그는 “총리 내정이 발표된 것이 16일인데 박 원내대표를 잠깐 만난 것은 이틀 전인 14일”이라며 “13일 대통령실장으로부터 ‘총리직을 맡아 달라’는 대통령 뜻을 전달받고, ‘나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고사했다”며 “그러나 대통령실장이 ‘박 원내대표께서도 상당한 호감을 표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박 원내대표가 자신에게 호의를 표명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적진의 김황식-박지원, 총리 인선 전 ‘잘못된 만남’

그는 “그래서 다음날 박 원내대표를 만나 ‘박 원내대표께서 저를 평가해서 관심을 표명한 것은 고마운데 저로서는 당혹스럽고 달갑지 않다’는 제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박 원내대표가 빼도 박도 못할 의혹의 사슬에 엮인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김 후보자가) 제 방에 잠깐 들러서 ‘감사원장 임기를 채우고 싶은데 총리설이 있다. 제발 가고 싶지 않다’고 하길래 ‘갈 수도 있는 것이니 잘 준비하시라’고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같은 당의 정범구 의원이 “청문회 16시간 전에 야당인 민주당이 대통령과 함께 술을 곁들인 만찬자리를 가진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이미 청문회 오래 전에 잡혔던 스케줄”이라며 “거기서 와인 마시고 막걸리 마시고 그냥 온 것이 아니라 ‘대북 쌀 지원 해라’ ‘금강산 관광 지원 해라’ ‘4대강 공사 하지 마라’는 것을 다 지적하고 왔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총리 인선을 사전 조율한데 대해서는 이미 고개를 끄떡인 바 있다. 그는 인사청문회 비공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면서 “청와대와 일부 간부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나라당이나 정부 측과 (총리 인선에 대해) 여러 차례 의견을 교환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내가 총리를 추천할 입장도 아니고 그분들이 몇분을 물어서 의견을 조율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야심차게 내 놓았던 ‘김태호 카드’ 등 8·8개각이 무너지면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면서 “그만큼 차기 총리 인선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전당대회까지 당을 책임진 박 원내대표와 물밑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낙마 확률’을 최대한 줄이려 했을 것”이라는 말로 이번 총리 인선의 뒷배경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 조율’이 “제1야당이 날 한 번 제대로 세워보지 못했다”는 내부의 불만으로 이어지면서 박 원내대표의 정치력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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