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영화관 ‘단성사’의 애환<가봤더니>

2008.10.11 14:21:16 호수 0호

한국 최초 영화관 ‘단성사’가 결국 부도처리됐다. 1백년이 넘도록 종로를 지키며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한 단성사. 이 오래된 영화관의 부도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학창시절 단성사에서 영화를 보며 자란 서울토박이들은 단성사 부도소식에 남다른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 극장영업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단성사가 가진 역사와 전통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탓이다. 단성사가 무너진 것은 90년대 들어 우후죽순 생겨난 멀티플렉스극장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종로의 극장가가 조금씩 쇠퇴하면서 단성사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된 것. 한 세기동안 한국영화의 영욕의 세월과 함께 한 단성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자.

자존심은 무너졌어도영사기는 계속 돈다!

지난달 23일, 한국 1호 영화관 단성사가 무너졌다. 15억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된 것. 단성사는 지난 달 19일 우리은행 지점에 들어온 당좌를 결제하지 못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지난해 1백10억원의 손실을 낸 단성사는 부채(6백76억원)가 자산(5백73억원)보다 1백억원 가량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관의 부도소식이 많은 이들에게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는 이유는 단성사가 가진 남다른 역사에 있다.
종로에 단성사가 문을 연 것은 1907년. 문을 열 당시의 단성사는 지금과는 달리 2층짜리 목조건물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전통연희를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던 단성사는 1910년 중반 광무대 경영자 박승필씨가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상설 영화관으로 발돋움 하게 된다.
그리고 1919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된 곳이 바로 단성사였다. 첫 한국영화 <의리적(義理的) 구토(仇討)>를 상영하면서 한국영화의 역사는 시작됐다.
1924년에는 단성사 촬영부에서 7권짜리 극영화 <장화홍련전>을 제작하고 상영함으로써 최초로 한국인에 의한 극영화의 촬영 ·현상 ·편집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1926년에는 나운규감독의 <아리랑>을, 1935년에는 <춘향전>을 개봉하면서 많은 관객들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후 단성사는 조선극장·우미관(優美館)과 함께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음악·무용발표회 등의 공연에도 무대를 제공하며 한국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대륙극장으로 잠시 이름을 바꿨고 광복 후 다시 단성사로 돌아와 영화와 예술의 장을 이어나갔다.
해방 이후에도 단성사의 인기는 계속됐다. 단성사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은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다. 피카디리, 서울극장과 함께 호황을 누리며 ‘종로 3가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며 영화팬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절정은 <서편제>가 개봉됐던 1993년. 이 영화로 단성사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관객 1백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영화 개봉일 단성사 앞에 들어선 관객들의 줄이 얼마나 긴지가 영화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단성사는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에서 만든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일반 영화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와 화질, 사운드 등을 무기로 관객들의 발길을 돌렸다.
여기에 이동통신사와 제휴해 할인행사까지 벌이자 소규모의 극장들은 버텨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동네의 작은 극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단성사는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이동통신사 할인에 동참하는 등 전통과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기도 했다.

1백년 한국극장 자존심 부도처리로 ‘와르르’
영욕의 세월 함께 한 한국영화…운영은 정상

또 주위에 하나 둘씩 생기는 거대한 극장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지난 2001년, 90여년 만에 건물을 헐고 멀티플렉스 극장으로의 탈바꿈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 동안 수 없이 보수공사와 내부 개조공사를 하면서도 외관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레드 오션이 되어 버린 극장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변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2005년 단성사는 7개관 1천5백3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개장하게 된다. ‘시네시티 단성사’라는, 멀티플렉스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으로 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로는 ‘영화의 메카’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선 종로로 가야 한다는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였다. 관객들은 강남, 신촌, 명동, 용산 등에 생긴 새로운 극장의 매력에 빠져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을 돌리기에 단성사는 그리 매력적인 극장이 아니었다.
종로를 찾은 영화팬들도 단성사보다는 서울극장 등 보다 큰 극장을 찾아 표를 샀다. 조금 돌아올 기미를 보였던 종로 안 극장의 부흥도 단성사와는 인연이 없었다.
결국 단성사는 지난해 1백1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2년째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지난해 매출은 44억원으로 전년 대비 34억원이 급감한 수치였다.
이 같은 끝없는 영업난을 벗어나기 위해 건물을 매각하려고 나서도 봤지만 부동산 경기가 둔화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결국 단성사는 1백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부도라는 굴욕을 맞게 됐다. 그러나 당분간 단성사의 극장 영업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부도 처리가 된 곳은 영화관이 아니라 단성사 영화관과 1층의 보석점 등을 가진 단성사의 건물주다.
단성사 건물 내 영화 상영관은 지난 5월부터 씨너스가 임대해 ‘씨너스 단성사’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그러나 많은 영화팬들과 서울시민들의 가슴 속에 단성사는 영화관 이상의 의미를 가진 장소인 탓에 부도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금세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씨너스, “단성사 사라지는 일 없다”
단성사의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 퇴색시키지 않을 것
극장 단성사의 운영권자인 멀티플렉스 씨너스가 “㈜단성사 최종부도로 인한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씨너스는 지난달 24일 “㈜단성사는 영화관과 귀금속 상가를 포함한 종로구 묘동 56번지의 복합상업건물을 소유해 운영하던 법인이다. 씨너스는 올해 4월 ㈜단성사와 영화관 시설의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운영권을 확보해 ‘씨너스 단성사’로 명칭을 변경한 후 5월1일부터 현재까지 정상 운영 중”이라며 “㈜단성사의 부도에 관한 채무와 관련사항이 없음을 밝힌다”고 전했다.
이어 “씨너스가 운영한 후 영화관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상승했고, 관객수도 꾸준히 증가해 극장운영이 정상괘도에 진입하고 있다”며 “단성사 극장의 운영권한이 씨너스에 있는 만큼 복합상영관 ‘씨너스 단성사’는 ㈜단성사 최종부도와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씨너스는 “단성사의 이름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명칭을 변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 신수현·사진 송원제 기자 /ssh@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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