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가 먼저 방 빼야 하는데?”

2010.09.07 09:10:00 호수 0호

친이·친박 의원모임 격돌 막전막후


한나라당의 화합 처방전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당내 화합을 위해 ‘계파모임 해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친이·친박계가 ‘따로’ 모이는 것은 당내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계파간 갈등을 부추길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하지만 이러한 당의 ‘화합카드’는 한 달여가 지나도록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다수 모임이 ‘연구모임’임을 강조하면서 해체 수순을 밟으려던 일부 모임조차 “왜 우리가 먼저여야 하냐”며 슬쩍 발을 빼고 있다.

한나라당 당내 화합위해 친이·친박 계파모임 해체 권고 
친박, ‘해체’ 직전 “발길 돌려”…친이 “태풍아 지나가라”


한나라당이 당내 화합책으로 제시했던 ‘계파모임 해체’가 계파간 기싸움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지난 7월29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당내 계파모임을 해체할 것을 권고키로 결정했다. 또한 앞으로 의원모임은 특정 계파의 모임이 아닌 연구모임으로 제한할 것을 권장키로 했다.

당은 “(기존 모임을) 해체하거나, 해체 후 연구모임으로 모이거나, 해체하지 않는 경우도 계파모임에서 연구모임으로 전환할 것을 권유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당 지도부의 이 같은 결정은 의원모임이 공부를 하거나 정책을 생산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계파색을 띠거나 세를 확장하기 위한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했다. 같은 모임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정치적 인식을 같이 하거나 비슷한 처지에 놓이는 등 이미 일정부분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각종 정치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계파모임을 중심으로 의견이 나뉠 수 있고, 이는 곧 계파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 함께 공부해요”

하지만 화합을 위한 당 지도부의 결정은 도리어 계파간 물밑 신경전을 부르는 단초를 제공했다.
현재 한나라당에는 친이계의 ‘함께 내일로’와 ‘국민통합포럼’, 친박계의 ‘여의포럼’과 ‘선진사회연구포럼’, 강재섭계의 ‘동행’과 초선모임인 ‘선진과 통합’, 중도개혁파 모임인 ‘통합과 실용’ 등 다양한 계파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계파모임들은 당의 결정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당 지도부가 해체 대상 모임의 명칭·해체의 기준·해체 거부 시 제재안 등을 따로 적시하지 않는데다 대다수 계파모임들이 ‘연구모임’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계파모임에 대한 제재가 계파를 해체하거나 계파간 갈등을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중 김무성·유기준·최구식·이진복·유재중 의원 등 친박 무소속·친박연대 의원들이 ‘단일대오’를 위해 만들었던 ‘여의포럼’이 해체 수순을 밟아 당 안팎의 시선을 모았다.

여의포럼은 친박 무소속 연대의 복당 후 친박연대 출신 등 친박 성향 인사들은 물론 중도 성향의 김세연·장제원·이한성 의원 등까지 받아들이며 20여 명의 의원들이 참여하는 모임으로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지난달 중국방문에서 모임의 진로를 고민한 끝에 김무성 원내대표와 서병수 최고위원이 탈퇴를 선언,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김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친이·친박의 벽을 허물기 위해 당 지도부에서 결정한 권유를 받아들여 여의포럼도 해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여의포럼을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서 최고위원도 “여의포럼은 대체로 해체한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졌다”며 “저도 해체를 앞당기기 위해 탈퇴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의포럼의 해체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여의포럼은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어 당초 ‘해체’로 기울었던 모임의 진로를 ‘문호를 개방해 순수 연구모임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의 계파해체 권유에는 동의하지만, 친이계 의원모임인 ‘함께 내일로’ 등에서 해체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먼저 해체할 필요가 없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

회의에서는 “우리가 먼저 모임을 해체할 이유가 없다” “당내 모임을 모두 없앤다면 몰라도, 정책연구 성격이 더 강한 여의포럼을 앞장서서 해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정치적 입장을 발표한 적도 없고, 세미나만 해왔는데 해체한다면 계파모임임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해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여의포럼 간사인 유기준 의원은 “많은 회원들이 모여 갑론을박 끝에 계파 해체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앞으로 의원들의 계파 또는 성향과 관계없이 문호를 개방하는 무계파 순수연구모임으로 하자고 결의했다”고 밝혔다.

친이계 모임들은 아예 해체 논의에서 한발 물러섰다. 당내 최대모임인 국민통합포럼 측은 “우리 모임에는 친이계 뿐만 아니라 친박과 중립 의원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며 “(계파모임이 아니니) 해체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친이계의 의원모임 결성에 반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자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모임 결성을 강행했다고 하면 친박도 다시 모일 수밖에 없다”며 출범하게 된 친박계 ‘선진사회연구포럼’도 친이계가 모임을 해체하기 전에는 해체 수순을 밟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이·친박모임의 대립 속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내 화합을 위해 의원모임을 탈퇴하거나 다른 계파모임에 가입, 계파간 벽을 허물려는 이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것.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지난달 4일 “우리가 먼저 하나가 돼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아직 2%가 부족하다.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계파 해체에 공감을 이뤘다고 하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진정한 정책모임, 공부하는 모임이 되려면 차제에 헤쳐모여가 돼야 한다”면서 그동안 참여하고 있던 ‘국민통합포럼’과 ‘함께 내일로’에서의 탈퇴를 선언했다.

누가 먼저냐, 기싸움

친이계 정두언·주호영 의원은 친박계 ‘여의포럼’에 가입키로 했다. 여의포럼 간사인 유기준 의원의 가입 제안에 정 의원은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주 의원은 “생각해보겠다”고 답한 것. 주 의원은 지난달 18일 여의포럼 회원들의 중국 상하이 방문에 동행키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각의 움직임이 한나라당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시선이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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