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파탄 위기’ 서울시 재정 대해부

2010.08.10 09:01:17 호수 0호

‘대한민국 심장’ 빚더미에 눌려 마비 증세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시가 파탄 위기에 몰렸다. 전국 지자체들의 재정에 속속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와중에 서울시마저 ‘곳간’이 비어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얼마나 ‘속빈 강정’이길래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을까. 서울시와 그 하부조직들의 재정 상태를 해부해봤다. 그리고 대책은 있는지 짚어봤다.

시의회, 시 재정난 몰리자 7천억 ‘편법 전용’ 주장
“부도 직전 돌려막기 상황” 지적…“일시 현상” 반박



김명수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등 민주당 시의원들은 지난 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시의회 본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렸다. 서울시가 재정위기에 몰리자 수천억원을 편법 전용했다는 것이다.

시의원들은 “서울시가 도시기반시설 공사 등에 투자해야 할 재정투융자기금 7000억원을 지난 6월 말 일반회계로 전용했다”며 “재정투융자기금을 일반회계로 전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관련 개정안이 7월15일부터 효력이 발생했는데 이 조례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기금을 일반회계로 돌렸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개정 전 지방재정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일반회계에 기금을 포함할 수 없다. 시의원들은 기금을 일반회계로 전용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한 것도‘예산은 그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는 원칙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서울시는 이 과정에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에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융자금을 갚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 일반회계로…
명백한 불법행위”

시의원들은 “서울시는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려고 SH공사에 상환 시기도 안 된 융자금 3000억원을 당겨서 갚도록 했다”며 “이에 SH공사는 서울시가 요구한 융자금 등을 갚기 위해 지난 상반기 1조4000억원의 기업어음을 발행했다”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곧바로 반격했다. 서울시 측은 “이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방채 발행 대신 재정투융자기금에서 7000억원을 융통했다”고 해명했다. 또 불법전용 의혹에 대해선 “현재 지방재정법 78조엔 같은 회계연도 안에서는 다른 회계로 자금을 전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며 “기금에서 일반회계로 전용이 가능하다는 행정안전부의 유권해석도 받았다”고 반박했다.


서울시의 재정운용 방식을 놓고 양측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서울시가 왜 다른 목적으로 조성된 기금을 일반회계로 돌렸냐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나친 확대재정 정책으로 자금이 부족해진 탓이다.

시의원들은 “서울시와 그 하부조직들의 재정상황은 부도 직전의 기업이 계열사로부터 자금을 끌어와 돌려막는 상황과 비슷하다”며 “서로 빚을 돌려막아 빚이 별로 없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금고 예금잔액이 지난 6월 말 현재 51억원에 불과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금고를 운영하는 우리은행의 공공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9948억원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예금 잔액은 2006년 2조3631억원, 2007년 2조4548억원, 2008년 2조1384억원 등으로 꾸준히 2조원 이상 유지됐다가 지난해 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특히 올 상반기 예산을 조기 집행해 지난 6월 현재 51억원으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

채무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시의 부채는 2005년 1조100억원, 2006년 1조1462억원, 2007년 1조5545억원, 2008년 1조8535억원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3조2454억원으로 급증했다.

서울시는 재정난이 가중되자 지난해부터 시금고에서 차입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일시차입 한도인 1조원을 빌렸다가 7월 말 2700억원을 갚았다. 일시차입은 회계 연도 중에 임시로 돈을 빌리는 것으로 단기차입과 달리 세입 예산에 편성되지 않는다. 시는 지난해에도 7000억원을 일시 차입하는 등 모두 2조4600억원을 빌렸다 갚았다.

서울시는 이렇게 부족한 자금을 임시 융통해 사용하면서 이자만 지난해 59억8700만원, 올해 상반기까지 29억1800만원을 지급했다. 반면 서울시의 시금고 운영 이자수입은 지난해 179억원으로, 2008년 1550억원보다 1371억원이나 줄었다. 올해는 사정이 더 나빠져 지난 6월말까지 45억원에 그쳤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조성, 디자인 서울 사업,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을 무리하게 벌려 재무건전성이 나빠졌다”며 “줄곧 이자 수익이 1000억원을 웃돌 정도로 재정상태가 양호했는데 이젠 이자를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질타했다.

이어 “서울시 재정자립도는 16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예산규모에서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재정자립도가 지난해 90.4%에서 올해 83.4%로 크게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부터 이를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해 재정을 조기에 확대 집행하다 보니 부채가 늘었다”며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에 따라 빌린 자금은 8월 재산세 등 하반기 세금이 걷히는 대로 나머지 일시 차입분을 모두 상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년전까지 양호했는데”
지난해부터 악화 비상


재정에 적신호가 켜진 곳은 서울시뿐만 아니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들의 실정도 마찬가지다. SH공사, 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공단, 농산물공사 등 서울시 산하 5개 공기업의 부채는 무려 20조4000억원에 이른다.

서울시의 각종 개발사업을 맡고 있는 SH공사의 부채는 2008년 10조8089억원에서 지난해 16조3454억원으로 늘어났다. 2005년 3조3627억원과 비교하면 4년 동안 12조9827억원이나 급증했다. SH공사는 올해 들어 이자로만 매일 15억3000여만원씩 내고 있다.

SH공사는 “‘선지출 후분양’방식으로 운영돼 토지보상비와 건축비 등 사업 초기 자금이 쏠릴 수밖에 없다”며 “최근 몇년 간 수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올해부터 여러 건의 분양이 예정돼 있어 자금 회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하철공사는 2조7100억원, 도시철도공사는 1조2537억원, 시설관리공단은 423억원, 농산물공사는 386억원 등의 부채를 갖고 있다. 이들 5개 기관의 부채는 전년보다 3조원가량 증가했다.

서울시를 압박하는 것은 ‘텅빈 곳간’외에도 또 있다. 바로 서울시 자치구들이다. 구청장들은 서울시의 일방적 사업추진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자치구에 떠넘겨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며 집단 성토에 나섰다.

서울시 예산에 자치구가 돈을 보태 사업을 진행하는 ‘매칭 펀드’사업이 집중 공격 대상이다. 서울시가 각종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비를 자치구에 넘기는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시가 무리하게 진행하는 사업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의회 의장단 14명과 25개 자치구 구청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이같은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서울시가 생태하천 조성사업, 디자인서울거리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비용 부담을 자치구에 가중시키고 있다”며 “서울시 주도의 사업에 연간 5억원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사업의 경우 당초 서울시와 자치구의 예산 부담 비율은 ‘9:1’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달 21일 부담 비율을 ‘6:4’로 변경한다고 통보했다. 생태하천조성사업도 부담 비율이 ‘7:3’에서 ‘5:5’로 자치구의 비중을 높였다.

“자치구에 부담 떠넘겨”
구청장들 집단 성토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자치구가 원하지 않는 사업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구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는 사례가 많다”며 “이러한 사업을 벌일 때 최소한 자치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겸수 강북구청장과 김성환 노원구청장도 각각 “자치구 재정 상황에 대해 서울시가 신경을 써야 한다” “기준에 맞게 재정을 배분하는 정책을 마련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울시는 진화 작업을 벌이는 동시에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우선 내놓은 방안이 투·융자 심사 강화다. 물론 재정 안정 등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서울시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투·융자 심사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9월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투·융자 심사 대상 기준을 현재 총 사업비 40억원 이상에서 30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 또 투·융자 심사 때 개별 사업의 타당성을 중심으로 검토하던 것을 실·국·본부별 사업 우선순위와 재원확보 대책 등을 함께 고려할 계획이다.

기존에 심사 후 40억원 이상 증액된 사업에 한해서 계약 체결 전 재심사하던 것도 기본설계 등 단계별로 30억 이상 증액된 경우 각각 심사하기로 했다. 심사 의뢰시기는 기본 설계 전으로 앞당기고, 부서단위로 의뢰하던 것을 실·국·본부에서 통합해 하도록 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할 뿐 재정구조는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일각의 우려를 외면할 수 없어 각종 대책을 마련하거나 검토하고 있다”며 “당장 하반기에 일부 사업의 재설계와 축소 등으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