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안 가린 사찰, 윗선은 여전히 ‘?’

2010.08.03 11:00:08 호수 0호

여의도 덮친 총리실 불법사찰 파문


여의도가 때 아닌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일어나고 한달여가 지났지만 불법사찰에 대한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민간인에 이어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 전 정권과 관련된 친노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사찰을 당했다”는 하소연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불법사찰의 실체인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는 더디게만 진행돼 정치권 안팎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법사찰의 어두운 그림자가 여의도를 겨냥하고 있다. ‘같은 편’인 여당 국회의원까지 사찰을 당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정치권에서도 ‘사찰 안전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권 사찰 파문은 정두언·정태근·남경필 의원에 대한 사정당국의 사찰 의혹으로 물꼬를 텄다. 한나라당 친이계 중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세 의원이 사정당국의 광범위한 사찰을 당했다고 밝혔던 것.

불법사찰을 당했던 내용들이 일부 공개되기도 했다. 정두언 의원은 “청와대 사람들이 2008년 4~5월쯤 나를 내사했다. 내가 다니는 술집까지 조사했다”며 “나오는 것이 없자 한 언론사에는 취재를 해 보라며 나와 관련한 자료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증권가 정보지에는 나와 관련한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고 주장했다.

아군인줄 알았는데…

남경필 의원도 지난 총선 후 “누군가가 날 조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낌새는 있었다. 내 주변의 일에 대해 악의적인 얘기들이 정치권 주변에서 많이 떠다니고 해서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 내 주류인 친이계 내의 비주류조차 사찰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원 불법사찰’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높아졌다.

여기에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사찰 의혹이 이어졌다. 친박계 이진복 의원이 최근 사석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구청장 재직 시의 각종 인·허가 건에 대해 사정당국이 광범위하게 뒷조사를 한 것으로 안다”고 밝힌 것.

이 의원은 “당시 사찰 주체가 어디인지 검찰과 국정원, 심지어 보안사에까지 알아봤지만 이들 기관은 아닌 것으로 들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에 대한 사찰설은 이 의원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사정당국이 친박계 현기환·이종혁 의원을 내사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김무성 의원 등 지역 중진들이 국정원에 거세게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었다. 또한 이성헌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모 종파의 스님과 식사를 한 뒤 정부 기관에서 스님을 찾아가 내용을 캐물었다”고 폭로, 친박계에 대한 사찰 의혹을 키웠다.

친박계 중진인 홍사덕 의원도 “의원 누구에 대해 마치 무슨 흠이 있는 듯 들쑤시고 다니면서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거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권에도 “여당 중진 의원까지 사찰했다면 과연 야당에 대해선 하지 않았겠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실제 야권 인사도 불법사찰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불법사찰 혐의를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정동영 민주당 의원, 신경민 MBC 앵커와 친하다는 이유로 김성중 노사정위원장의 교체를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영호 비서관이 ‘노사정위원장이 정동영 의원과 가까운 문제 인물이니 잘라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고 말해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했다.

친노 인사들도 사찰의 눈길을 피해가지 못했다. 한 친노 의원은 “사무실에서 회계 담당하는 여비서, 여비서의 신랑과 가족·친척까지 다 당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한달여가 된 불법사찰 조사는 아직도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불법사찰 의혹의 불씨가 된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혐의가 입증돼야 하지만 불법사찰의 핵심인물인 이인규 전 지원관 등이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는 거북이걸음


여기에 뒤늦게야 진행된 압수수색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훼손된 하드디스크만을 압수한 것도 수사를 장기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다른 불법사찰 의혹들도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검찰조사가 간이역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며 “검찰은 몸통인 박영준 차장의 윗선, 종착역이 누구인가를 밝혀야 한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이와 동시에 ‘이명박정권국민뒷조사진상특위’를 발족시켰다.

특위 위원장은 당 내 ‘저격수’인 박영선 의원이 맡았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이 불법사찰의 진상조사와 처벌이 아닌 사정기관의 운영실태 점검 및 개선을 하라고 지시한 것은 이명박 정권이 불법사찰 사실을 외면, 청와대 책임론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이어 “그간 민간인과 정치인 사찰의 현황을 보니 단순 영포게이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며 “김종익씨 불법사찰은 물론, 한노총 간부인 배정근씨 감시 및 미행 등 민간인 사찰이 이미 50여 건 밝혀졌고 국정원의 박원순씨 사찰, 대북사건을 핑계로 한 야권 정치인 사찰, 지난 여름 기무사의 민노당 당직자 등 민간인 10여 명 사찰 사건, 경찰청의 교육감 정보수집 등이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해온 민간인 사찰건”이라며 특위 조사활동이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또 “공직정보를 통한 인사개입도 있었다. 정보를 축적하고 특정라인의 인사개입 지원에 악용해 왔다”면서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 권력의 실체를 규명하고 성역없는 검찰수사를 촉구 및 감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한 정치권의 움직임으로 총리실의 전방위 불법사찰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 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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