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에 돈 떼인 회장님 사연

2015.10.05 10:56:38 호수 0호

믿고 맡겼는데 발등 찍고 줄행랑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여윳돈이라고 해서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건네긴 어려운 법이다. 가족이라도 돈 문제가 얽히면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하물며 타인의 술수에 놀아나 생각지 못한 손해만 생긴다면 어떻겠는가. 누구든 참기 힘든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 제아무리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가진 자산에 비하면 몇 푼 되지 않는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은 채 10년 가까이 법정공방을 벌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재벌 총수가 최근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그의 잘못은 딱히 없다. 오히려 측근에게 배신당한 피해자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사람을 너무 믿은 나머지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실조차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된 모습은 재벌을 떠나 인간미마저 느끼게 한다.

가신의 배신

지난달 29일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정 회장이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 7억9000만원을 취소해달라며 남양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2006년부터 지금껏 이어진 법정다툼은 정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법정으로 정 회장을 내몬 원인 제공자는 그의 측근이었던 서씨였다. 1999년 당시 현대산업개발 재정팀장으로 근무하던 서모씨에게 정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신세기통신 주식 약 52만주를 팔라고 지시했다. 대신 매도가격이나 시점 등 주식 매매에 대한 모든 권한은 서씨에게 위임한 상태였다.

측근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을까. 정 회장의 주식 52만주를 173억원에 처분한 서씨는 중간거래인을 내세워 140억5000만원에 판 것처럼 이면계약서를 작성한 뒤 나머지 차액 32억5000만원을 챙겼다. 한발 더 나아가 부과되는 세금마저 140억5000만원에 맞춰 신고하는 치밀함마저 보여주었다.


서씨의 대범한 행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정 회장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검찰은 2004년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를 조사하면서 정 회장 주식의 실거래가가 140억5000만원이 아닌 173억원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해당 사실을 세무당국에 전했다. 남양주세무서는 정 회장에게 차액 32억5000만원에 대한 양도소득세 7억7000만원과 증권거래세 1780만원을 내라고 통보했다.

자신의 측근이 배신한 것도 황당한데 생각지 못한 세금이 부과되자 정 회장은 즉각 소송을 냈다. 32억5000만원을 횡령한 당사자는 자신이 아닌 서씨인 만큼 세금을 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길고 긴 소송공방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법원의 판결은 뒤집어지길 반복했다.

주식 매각 지시 이면계약서로 33억 챙겨
증발한 돈에 세금 “못 낸다” 씁쓸한 소송

정 회장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여긴 1심은 원고인 정 회장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2심은 정 회장이 서씨에게 속아 주식이 140억5000만원에 팔린 것으로 알았더라도 이는 둘 사이에 정산해야 할 문제일 뿐 세금은 실제 거래액을 기준으로 내야 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야 정 회장은 양도소득세 7억7000만원을 낼 필요 없다는 판결을 들을 수 있었다.

대법원은 대리인이 위임의 취지에 반해 자산을 저가에 양도한 것처럼 속인 채 양도대금 일부를 횡령했다는 점에서 돈 회수가 불가능하다면 이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증권거래세는 이익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소유권이 이전되면 부과되는 유통세인 만큼 정 회장이 실제 양도가액이 173억원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이 금액에 해당하는 1780만원은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10년 가까이 이어진 법정공방에서 승리한 정 회장은 피 같은 돈 7억원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정 회장이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한 7억원이라는 금액은 ‘상처뿐인 영광’이나 다름없다. 금전적인 손해를 최소화한 반대급부로 호사가들에게 재벌 총수가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이 법적공방을 계속한 건 개인의 자존심 문제를 우선시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4월 정 회장은 개인 소유 현대산업개발 주식 20만주를 포니정재단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산업개발 주식 종가가 6만1900만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돈으로 환산했을 때 123억80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처럼 큰 돈을 기부하는데 인색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정 회장이 정작 7억원이 아까워 길고 긴 소송전을 끌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다만 정 회장이 생각한 세금 7억원의 무게가 10년이라는 세월과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만하다.

10년째 공방


그렇다면 재벌 총수의 감쪽같이 챙긴 서씨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는 2002년 퇴사해 미국으로 이주해 영주권을 취득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영화 같은 복수전을 생각지 않는 한 당분간 그의 행적은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셈이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직원들 등친 사장님 사연

개발이 불가능한 부동산을 회사 직원들에게 팔아넘긴 업자들이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오모(48)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개발 가능한 땅을 보여준 뒤 실제 등기상 개발이 불가능한 산꼭대기나 근저당이 설정돼 개별 등기가 불가능한 땅을 팔아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방식으로 11명의 피해자에게 오모씨 일당이 챙긴 돈은 7억2000만원에 이른다.

피해자 가운데 고객 1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모두 직원이었으며 개발 덕분에 시세 차익이 생길 것이라는 회사 임원들의 말을 믿고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오씨 일당은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한 야산 꼭대기 일대 땅 18만5000㎡를 3.3㎡당 1만원의 헐값에 사두고 피해자들에게 "전철이 곧 생기고 택지개발이 된다"며 살 것을 권유했다.

속아서 땅을 산 피해자 6명에게는 3.3㎡당 19∼20만원의 땅값을 받아 2억7000만원을 챙겼고 보여준 땅 대신 자신들이 사둔 산꼭대기 땅을 등기했다. 은행 대출과 사채로 구입한 용인시 일대 땅은 근저당권이 설정된 사실을 숨긴 채 “국도가 개발되고 놀이동산이 들어온다”고 꼬드겨 나머지 5명에게 팔아 4억5000만원을 챙겼다.

경찰 관계자는 “기획부동산은 허위 과장 광고로 현혹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드시 실제 지적도와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권리 관계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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