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헬조선’ 외치는 청년들 천태만상

2015.10.05 10:08:35 호수 0호

“더이상 한국엔 희망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사회가 날이 갈수록 팍팍하다 못해 노력해도 빈곤해져만 간다. 청년들은 이런 대한민국을 ‘헬조선’ ‘지옥불반도’라 부른다.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지옥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 ‘헬조선’(Hell·지옥+조선)과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라는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는 10대에 입시, 20대에 취업, 30대에는 주거·결혼 전쟁을 겪는다. 발버둥쳐도 ‘루저’ 신세와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날 수 없다. 헬조선 신드롬은 경제적 약자의 아픔을 그저 “‘노오력’이 부족해”라고 외면하는 불통의 현실에 대한 야유이자 집단 반란이다.



‘지옥+조선’
 
헬조선의 등장은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에서부터 시작됐다. 본래 헬조선은 식민사관을 비호하고 근대지상주의(일본이 한국을 지배해서 이만큼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한반도 역사가 미개하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네티즌들은 한국의 지옥같은 현실과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강렬함에 이끌려 온라인 공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5월부터 헬조선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가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한국 사회가 살기 어렵고 삶을 유지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사람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헬조선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헬조선을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노오력’ ‘금수저’ ‘탈출’ 등 이다. 이 키워드는 헬조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다. 이 단어를 뜯어보면 헬조선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도 엿볼 수 있다.
 
헬조선 목소리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취업과 청년문제다. ‘청년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조직문화’가 지옥인 것이다. 청년들에게 자발적 희생을 강조하는 의미의 단어 ‘노오력’ 등이 핵심이다. 노오력은 노력이라는 명분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성세대와 노력해도 끊을 수 없는 청년 빈곤을 풍자하는 데서 비롯됐다. 
 

최근 3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젊은이), 5포세대(3포세대에 취업·주택구입 등 포기한 젊은이), 7포세대(5포세대에 인간관계 및 희망을 포기한 젊은이) 등 이것보다 오래된 이태백(이십대 태반은 백수)과같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청년이 노력해도 되지 않은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노오력과 짝을 이룬 말로써 가장 많이 쓰이는 키워드는 ‘금수저’다. 금수저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부유한 사람과 상류층 자제를 일컫는다. 대물림되고 있는 부를 비꼬고 있다. 헬조선의 헬(Hell)은 이 신조어의 현대성을 부각하지만 ‘한국’도 아닌 ‘조선’은 이미 신분의 대물림이 거의 제도화된 한국 사회의 퇴행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조선의 한양 북촌에서 태어난 권문세도가들의 자녀들이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듯, 오늘날 ‘강남족’은 저들만의 세습적 신분이 이루어 거주지, 통혼권, 학습, 유학 루트, 언어 등의 차원에서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금수저와 상반된 의미로 ‘흙수저’도 있다. 흙수저는 저소득층, 일용직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소득이 저조한 계층을 의미한다. 흙수저에는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한계가 내재돼 있다. 이런 보이지 않은 계급적 한계를 빗대어 최근에는 “내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은 노오력이 부족해서”라며 한국 사회는 노력으로 극복 불가능한 신분 사회가 됐다는 비판을 우회적으로 하고 있다.
 
‘노력해도 빈곤한 삶’ 풍자한 신조어
지옥같은 현실·기성세대 향한 분노
 
네티즌들은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탈출 뿐’이라고 말한다. 탈출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예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청년층 간 ‘계층’과 ‘불평등’ ‘반목’이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오늘날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절망할 때 찾는 해결책이 있다. ‘한국을 뜨는 것’이다. 명문대생들을 중심으로 취업이민 스터디와 이민계까지 결성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경쟁구조, 빈약한 사회안전망 등에 실망한 2030 젊은이들이 최근 해외이민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코리아 난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민을 떠나는 이들의 공통으로 “내 아이에게 답답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암울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렸다.
 
해답은 탈출?
 

한 사회학자는 “청년들이 ‘살기 힘들다’ 외치면 정상적 사회라면 ‘뭐가 힘드냐? 어떻게 고칠까?’하고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헬조선의 486세대는 ‘내가 20대였을 땐 말이야’라고 훈계하고, 그 윗세대는 ‘북한 가라’고 말한다.”
 
헬조선은 청년세대의 절규를 귀담아듣지 않는 기성세대의 태도를 풍자하는 유머다. 기성세대는 ‘헬조선’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기사 속 기사 - 미니인터뷰> ‘헬조선’ 운영자에게 들어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헬조선’에는 한국 사회의 치부만 전문적으로 올라온다. 기자는 헬조선 운영자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은 헬조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최초로 사이트를 개설한 김모(30)씨와의 일문일답. 
 
▲하는 일은?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별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초중고 교육을 받고 입시를 통해 대학에 나와 우여곡절 끝에 취직했다. 시간이 날 때 헬조선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헬조선은?
정식 오픈은 올해 5월27일이다. 헬조선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판단되는 이슈들을 볼 수 있는 사이트다.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기준을 배제한 ‘현재 대한민국 모습을 전달할 수 있는 사이트로 만들자’라는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북한이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면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의 문제점 잘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냉소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애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 그러니 노예처럼 일해라’는 기득권 이데올로기가 만났다.
 
젊은이들은 누구 쇠사슬이 더 크고 예쁜지 자랑한다. 자신의 쟁취 해야 하는 건 아예 생각지도 못한 채 노예화 되고 있다, 기득권은 원정출산, 이중국적, 국적포기를 선도하며 앞서서 국부 유출에 힘쓰고 있다. 정말 말 그대로의 헬조선이 되고 있다. 
 
▲헬조선에는 한국을 풍자하는 촌철살인 같은 드립(?)이 올라온다. 기억에 남는 드립은?
‘너도 나도 죽창 한방이면….’ 죽창을 달라는 말은 불평등을 의미한다.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그저 죽창을 달라고 하는 것은 지독할 정도로 자기 파괴적인 포기선언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포기하게 하였는지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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