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MB 벼랑 끝 ‘불도저 전술’

2010.06.15 09:27:18 호수 0호

앞뒤 돌아보지 말고 “밀어붙여”



이명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지방선거 이후 당·정·청 모두 이 대통령만을 바라보고 있다. 정몽준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세종시 수정안은 변함없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에서는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함께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요구에 따라 정부의 주요 정책을 다시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당과 청와대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며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안으로, 밖으로 몰린 ‘고립무원’에 처하게 된 것이다.

여론조사 뒤엎은 지방선거 결과로 지지율 의심하게 된 MB
당·정·청 대규모 인적쇄신론, 세종시 수정안 백지화 거세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묻는 화살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당초 정부 여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데다 한나라당 후보들의 여론조사 전망이 밝자 지방선거를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정반대’의 결과를 냈고 이제 그 책임을 묻는 시간이 온 것이다.

특히 지방선거의 가장 큰 패인으로 이 대통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이 지적되면서 청와대를 향한 시선에 날이 서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가 3~5일 전국의 유권자 패널 9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참패 원인으로 이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이 지적됐다.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이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이라는 응답이 50.8%로 가장 많았으며, 한나라당의 잘못이라는 응답이 28.4%에 달한 것. 여권의 잘못을 짚은 유권자가 79.2%로 나타난 것이다.

불도저식 국정운영에
전국서 ‘반대 푯말’

유권자들은 또 이번 지방선거가 ‘이명박 정부 심판론’으로 치러졌다는 데 동의를 표했다. ‘MB 심판론’에 공감한다는 이들이 65.6%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33.5%)의 두 배 가까이 나타났다.


그리고 MB 심판론에 공감한다는 이들 중 74.5%가 그 이유로 ‘세종시나 4대강 사업 등을 독단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천안함 관련 불신’을 꼽은 이도 10.8%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답변이 나왔다. 리얼미터가 지난 3일 한나라당 패배 원인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4대강 추진’을 꼬집은 이가 34%로 가장 많았다.

천안함 사태 등 북풍에 대한 역풍(12.4%)이라는 의견과 세종시 수정안 추진(9.9%)을 원인으로 돌린 응답자들도 있었다. 그 뒤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등 노풍(7.4%)과 야권 단일화 효과(7.2%), 박근혜 전 대표의 비협조(7.0%), 잘못된 공천(5.7%)이 따랐다.

노풍이나 야권의 후보단일화 등 야권발 ‘바람’이 미풍에 그친 반면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등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나 국정운영 태도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정당 지지층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반감은 강하게 나타났다.

한나라당 지지층은 박 전 대표의 비협조(13.7%)와 4대강 추진(13.4%)을 비슷하게 봤으나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권 지지층에서는 4대강 추진을 지방선거 패인으로 꼽은 이들이 각각 45.8%와 34.8%로 압도적이었다. 또한 지역을 불문하고 4대강 추진 때문에 한나라당이 패배했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여론에도 불구, 청와대는 “지방선거는 지방선거일 뿐”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방선거의 패배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 국정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강조하고 있는 것.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의 사의 표명도 개인적 차원에서 도의적으로 한 것일 뿐 당장 이를 계기로 인적 개편, 청와대 개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도 “당과 내각, 청와대가 재점검해 입장을 정하겠지만, 이 대통령의 ‘성찰하되 국정은 꾸준히’라는 말대로 뚜벅뚜벅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에 대한 추진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청와대가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는 의중을 내비친 후 달라진 친이계의 움직임도 주요 정책에 대한 청와대의 ‘정면 돌파’ 의중을 짐작케 하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 ‘쇄신’에 목소리를 냈던 진수희, 진성호 의원 등은 지난 7일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진수희 의원은 “당은 당의 일만 하면 되지 우리 할 일은 안 하고 정부와 청와대에 손가락질해서 되겠느냐”고 청와대를 향한 쇄신 주장을 막아섰다. 진성호 의원도 “청와대, 정부의 인사 문제가 많이 지적되고 있는데 (알아서) 잘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 이 대통령의 ‘친위대’들은 세종시 수정안보다는 4대강 사업의 추진에 무게감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의 경우 충청도에서의 참담한 패배 이후 ‘출구전략’을 찾는 이들이 상당하다. 청와대에서도 지난 9일 이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가 주례회동을 나누고 세종시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수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으니 국회 논의에 맡기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이 ‘고민거리’가 되기는 했으나 당장 이에 대한 의견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이 같은 태도는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세종시 수정안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친이·친박을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는 것.

특히 지난 8일 여야가 18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별 국회의원 배치를 완료한 결과 세종시 수정안이 처리될 국토해양위에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과 민주당 등 야당 의원이 국토위 위원 정수 31명 중 21명을 차지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은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4대강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친이계 핵심 인사인 정두언 의원은 지방선거 직후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세종시는 애당초 선거하고 상관없이 국가 백년대계를 하면서 내놨기 때문에 선거하고는 별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어찌됐든 그것은 마무리해야 한다. 선거 후에 이대로 그냥 애매하게 끌고 갈 수는 없다”는 말로 결론을 내릴 것임을 시사했다.

정 의원은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이 이번 지방선거의 영향을 받아선 안된다”며 “이미 상당 부분 추진돼 있는 것으로 이제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추진할 것인지 말지를 ‘마무리’하는 반면, 4대강 사업은 ‘공사의 마무리’를 거론한 것.

침묵하는 청와대
‘강행’ 빼고 ‘추진 중’

당내에서도 친박계 의원들은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친이계는 “지금 공사 중인 사업을 그만 둘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다만 민심을 수렴하는 등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은 당·정·청이 더 이상 가지고 갈 수 없게 된 ‘세종시 수정안’을 버리는 대신 ‘4대강 사업 챙기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당의 쇄신 요구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선거 후 민심 수습 방안을 두고 한 목소리로 당·정·청의 쇄신을 주장했던 한나라당이 쇄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이와 자성을 촉구하는 이, 청와대를 엄호하고 나선 ‘경호실장’ 등 세 갈래로 나뉘는 등 목소리가 분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4월 재보선 이후 제기됐던 쇄신 국면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4월 재보선 패배 이후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당·정·청의 소통 강화를 주장했으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당장 6월 임시국회에서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안, 천안함에 대한 논의가 뜨거울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장고’는 쇄신이 쉽지 않을 것임을 방증한다. 청와대는 정운찬 총리의 사퇴설도 일축, 정치권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빼어들 ‘반전 카드’는 무엇일까. 정치 전문가들은 ‘중도실용’이 다시 고개를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도실용’은 지난해 4월 재보선 패배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정국 이후 이 대통령이 꺼내들었던 패다. 당시에도 한나라당에서 청와대의 쇄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다가 한껏 달아올랐던 민심이 식고 나서야 인사를 단행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6월15일 정례 라디오연설을 통해 중도실용 노선을 펼쳤다. 이후 이 대통령은 20%대에 머물던 지지율이 50% 수준으로 올라가는 등 짭짤한 재미를 봤다.

지난해 이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포기하고 중도실용을 표방, 시너지 효과를 노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세종시 수정안 포기와 중도실용의 투트랙으로 민심을 공략하려 할 것이라는 것.

지방선거 이후 내내 침묵을 지키던 이 대통령이 지난 10일 민생 현장을 찾아 친서민 중도 실용에 시동을 걸면서 이 같은 관측은 깊어지고 있다. 더 이상 가지고 갈 수 없게 된 세종시 수정안을 포기하고 중도 실용을 강화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들끓던 솥 식으면
새 물 부어 담는다

개각 등 인적 쇄신은 7월 재보선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7월 재보선에 나온 곳이 대다수 민주당 지역구라서 ‘야권 바람’이 7월 재보선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인적 쇄신을 위한 인재풀이 충분치 않아 시간을 두고 검증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정가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불도저식’ 국정운영 방식이 바뀌지 않고는 민심도 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발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을 국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강행 추진해온 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컸다는 이유에서다.

몇몇 정치 전문가들은 “효과가 입증되기는 했지만 한 번 ‘국면전환용’으로 사용됐던 ‘중도실용’이 이번에도 같은 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정권 출범 이후 계속해서 제기돼왔던 ‘소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언제든 ‘국민적 반발’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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