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사주’ 6人 해외탈루 백태

2010.06.01 09:18:41 호수 0호

검은돈 세탁∼ 스위스 ‘비밀 금고’ 열렸다


드디어 해외 ‘비밀 금고’가 열렸다. 국세청은 악덕 사주들이 아무도 모르게 해외에 숨겨놨던 괴자금을 끝까지 추적, 그 실체를 밝혀냈다. 이들의 수법은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스토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은밀하고 지능적인 해외 탈루 백태를 살펴봤다.


국세청, 은닉 괴자금 6224억 적발… 3392억 과세
사상 최초 스위스·홍콩·싱가포르 등 계좌 열어


국세청은 ‘중점 세정추진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차단’업무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지난해 11월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발족했다. 전담센터는 해외정보수집활동과 분석을 통해 조세피난처 등에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기업자금을 불법유출한 혐의가 있는 기업과 그 사주에 대해 6개월 동안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6개월 총력 추적
국제공조에 초점

이 결과 탈루소득 6224억원을 적발, 총 3392억원을 과세하고 관련자들을 검찰 고발 등 조세범칙 처분할 예정이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사상 최초로 해외금융계좌에 대한 정보 수집을 통해 스위스·홍콩·싱가포르 등에 내국인이 개설한 14개 계좌의 입출금 내역(입금 5억달러, 출금 3억7000만달러)과 2009년 12월 말 현재 계좌잔액(1억3000만달러)을 확인했다.

탈루자들은 해외펀드투자를 가장해 기업자금을 유출하거나 스위스·홍콩·싱가포르 등에 다수의 해외금융계좌를 개설해 은닉자금을 관리했다. 또 케이만·브리티쉬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 소재 신탁회사를 통해 상속을 준비하는 등 은밀하고 지능적인 역외탈세수법들을 동원했다. 국세청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역외탈세분야에서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은 국제공조, 조사관리 등 조직 역량을 효율적으로 집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조세피난처 국가는 전세계 40여개국에 이른다. 명단을 보면 대부분 섬나라이거나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군소 국가들이다. 세계 최대의 조세피난처는 알려진 대로 스위스다.

나머지는 미국 버진 군도와 모나코, 파나마, 몰디브, 서사모아, 마샬제도를 비롯해 카리브해의 섬 앵귈라, 바베이도스, 안티구아, 프랑스 국경 근처의 안도라 공화국, 서인도제도의 섬 도미니카, 그레나다, 세인트루시아, 플로리다 반도에 위치한 바하마, 페르시아만의 군도 바레인, 중앙아메리카의 벨리세, 채널해협의 섬 게른지와 올더니, 스페인 항구도시 지브롤터,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공화국, 스위스 근방의 리히텐슈타인, 호주 북방의 나우루 공화국, 인도양의 세이셸 공화국, 태평양 서남부의 비누아투, 쿡아일랜드, 통가 등이다.

국내에선 정·재계 전·현직 거물들이 은닉한 비자금과 탈세로 빼돌린 괴자금이 이들 국가 비밀계좌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이른다는 게 풍문의 요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괴자금의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다. 그만큼 해외로 나간 정·재계 거물들의 ‘뭉칫돈’진위 파악이 어렵다는 얘기다. 조세피난처들이 대부분 아직 우리나라와 형사사법 공조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더욱 그렇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해외로 유출된 자금들이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유출 경로와 명의 확인이 쉽지 않아 앉아서 구경만 하는 실정”이라며 “그중 의심스러운 스위스 은행들의 계좌가 열릴 경우 소문으로 떠돌던 정·재계 거물들의 검은돈 진위 파악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도 “정부가 몇해 전부터 유럽을 시작으로 해외 재산 도피에 대한 조사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법원도 외국 은행이 조회 요청을 거부할 경우 강제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에 국세청의 끈질긴 추적으로 악덕 사주들이 아무도 모르게 해외에 숨겨놨던 괴자금을 찾아내 소문으로만 떠돌던 의혹의 실체가 드러났다. 적발 사례를 보면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국세청 조사에서 확인된 주요 역외탈루 유형은 ▲해외 현지법인을 이용한 해외은닉자금 조성 및 신탁회사를 이용해 우회상속 준비 ▲역외펀드 투자로 위장한 해외투자손실 및 사주의 사적비용 부당 보전 ▲역외 페이퍼컴퍼니(SPC)를 이용해 사주의 해외 고급주택 구입 ▲역외 SPC 명의 해외계좌에 증권예탁증권(DR) 매도대금 부외보유 ▲역외 SPC를 이용해 제3국 투자자산 부외관리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거액의 주식양도차익 해외은닉 등으로 나타났다.



페이퍼컴퍼니 통해 은닉
해외 손실, 국내 손실로

서울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역외에 설립한 현지법인과 페이퍼컴퍼니를 이용, 매출단가를 조작하거나 가공용역대가를 지급하는 방법으로 역외에 은닉자금을 조성했다. A씨는 개설한 스위스 ○○뱅크 및 △△뱅크 비밀계좌에 돈을 숨긴 뒤 5∼7단계의 자금세탁 과정을 거쳐 브리티쉬 버진아일랜드, 홍콩, 라부안 등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외 금융상품과 실물자산 등에 재투자했다.

해외은닉자금을 완전하게 은폐하기 위해 자금운용 주체를 패밀리트러스트로 전환하고, 조세피난처 소재 신탁회사에 자산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세금 없는 상속을 준비했다. 국세청은 A씨에게 종합소득세 등 세금으로 2137억원을 부과했다. 역시 서울에서 금융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국내기업의 부외 해외투자손실과 사주가 개인적으로 해외 지인에게 지급한 사적비용 등을 기업의 정상적인 투자손실로 처리하기 위해 관계사들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성했다.

과세당국의 자금추적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설립한 펀드에 투자하는 것처럼 위장해 복잡한 단계를 거쳐 국내기업에 손실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했다. 국세청은 역외펀드 투자손실로 위장한 714억원을 적출하고 세액을 부과했다. 서울 제조업체 사장 C씨는 국내기업의 해외현지법인과 관계사가 역외 SPC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기업자금을 해외로 유출했다.
 
이후 그 자금을 다시 미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의 신탁계좌에 송금한 뒤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해외고급주택을 구입해 사적으로 사용했다. 국세청은 C씨의 법인자금 유용금액 40억원을 적출하고 세액을 부과했다. 서울의 도매·무역업체를 운영하는 D씨는 국내 법인이 발행한 DR을 해외유명 금융회사들이 인수하는 것처럼 위장, 실제로는 해외현지법인이 허위 Forfeiting 방법으로 조달한 자금을 역외 SPC에 DR인수 자금으로 부당 지원했다.

‘편법 유출 → 돈 세탁 → 비밀계좌 입금’
조세피난처 국가 전세계 40여개국
국내 정·재계 거물 뭉칫돈 찾는다


DR을 인수한 역외 SPC는 DR 일부를 국내에서 이면계약으로 양도해 대금의 일부를 SPC 명의의 홍콩계좌에 보유·관리했다. 국세청은 DR매수대금 200억원, 부외자산 15억원을 적출하고 세액을 부과했다. 서울의 제조업체 사장 E씨는 지분투자명목과 가짜 무역금융을 일으켜 조달한 자금을 해외현지법인에 송금하고 제3국 투자목적용 SPC를 역외에 차명으로 설립했다.

이 역외 SPC는 제3국에 호텔·운수·금융사업 등 총 8300만달러를 투자하고 부외로 관리하는 채권잔액 5400만달러가 남은 상태에서 제3국의 경제상황을 이유로 해외현지법인과 역외 SPC에 대한 채권을 전액 상각한 후 대손처리했다. 잔존채권 등은 별도의 역외 SPC에서 부외관리했다. 국세청은 부당하게 손실처리한 303억원을 적출하고 세액을 부과했다.

비거주자로 위장한 국내 거주자 F씨는 서울에서 서비스·투자자문업체를 경영하면서 조세피난처 소재 페이퍼컴퍼니를 이용, 거액의 해외주식양도차익을 해외에 은닉했다. 자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투자주식을 제3국 경유 옵션거래로 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재매입 후 해외에서 1억5000만달러에 매각해 모두 해외로 빼돌렸다. 국세청은 역외탈루소득 310억원을 적출, 총 194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국세청은 역외 금융계좌 및 해외자산을 파악한 결과 관련 법령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계획적이고 지능적인 역외탈세행위 사례들이 더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그동안 조세정보교환협정(TIEAs) 체결 지원,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JITSIC) 가입, 국제거래세원통합분석시스템(ICAS) 개발, 국제금융자문역 영입 등 역외탈세추적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들 인프라를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금까지 TF로 운영해 오던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상설조직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또 역외탈세 정보수집을 위한 근본적 대책의 일환으로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입, ‘해외정보수집요원파견제’신설 등 제도적 장치의 보완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DR매도대금 허위 인수
현지법인 채권 대손처리

국세청은 “지능적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역외소득탈루행위가 소중한 국부를 유출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성실한 납세자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일으키고 있다”며 “앞으로도 역외탈루행위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과세하고 조세범처벌법을 예외 없이 엄격하게 적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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