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입원으로 본 전직 대통령 건강 체크

2010.05.25 09:40:00 호수 0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위 내시경 검진 결과 위 벽에서 발견된 혹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직 대통령들의 건강에 부쩍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퇴임 이후 저마다 특유의 건강관리로 건재함을 과시해오던 전직대통령들도 ‘칠순’ 이상으로 연로해졌다. 결국 세월을 이겨내지 못한 채 건강에 잇단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는 것. 이에 <일요시사>는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들의 동향과 건강 상태를 진단해 봤다.



83세 김영삼, 위벽서 혹 발견…제거 수술
78세 노태우, 희귀병 ‘소뇌위축증’ 앓고 있어
79세 전두환, 골프 치러 다닐 정도로 양호

현재 생존해있는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3명이다. 이 가운데 가장 건강상태가 염려스러운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올해 78살로 생존한 전 대통령 중 가장 젊은(?)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되면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혼자 일어서기도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연희동 자택에서 시간을 보내며 소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8년 폐렴 증세로 잇따라 입원하면서 한때 위독설까지 나돌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워낙 병세가 나빠 병원에 장기 입원하거나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뇌의 크기가 점점 축소되는 희귀병인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으며 기관지 절개 수술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YS 건강비결
규칙적 생활·운동

노 전 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측근들은 그러나 “거동이 불편하고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올해 79살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옥중 생활을 끝낸 후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릴 뿐 공식적인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선거 때마다 투표에 참여하거나 정치권 인사들의 예방을 받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지인들과 꾸준히 골프를 다닐 정도로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82살로 전직 대통령 중 최고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장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가끔 등산을 갈 정도로 무척 건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지난 2008년에는 무리한 운동으로 늑막 내부에 혈액이 고이는 혈흉 시술치료를 받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 가운데 가장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입장을 피력할 정도로 정치 현안에 꾸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 현대 정치사를 동고동락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건강에도 관심이 자연스럽게 쏠리고 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쓴잔을 마신 뒤 정계를 떠났던 김 전 총재의 건강 역시 좋은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재는 지난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3월에 퇴원한 뒤로 청구동 자택에 머물면서 인근 재활센터를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활동을 할 만큼 건강이 나아진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서거한 전직 대통령들의 말년은 어땠을까. 불행히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노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정점에 섰던 9명의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는 대부분 ‘씁쓸’했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는 초대부터 3대까지 재임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반공에 기초해서 당시 강대국들의 정치적 각축전 아래서 나름대로의 외교력과 국가관으로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정부를 수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끝은 좋지 못했다. 건국 초기에 필요한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초법적·권위주의적·폭력적 정치형태로 12년간의 장기집권을 시도한 과욕이 부른 화다. 3선 개헌과 3·15 부정선거로 이어진 이 대통령의 권력욕은 1960년 4·19 혁명이라는 역풍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결국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이후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그는 이국땅에서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죽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 쿠데타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박정희 정권 시절 사법처리 대상이 됐고 최초로 법정에 선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채 90년 타계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5∼9대 대통령직을 지내면서 경제개발과 남북관계발전에 물꼬를 트는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비극이 돼 돌아왔다.

3선 개헌과 1972년 ‘10월 유신’으로 종신집권체제를 획책하던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26일에 궁정동 안가 연회장에서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 박 대통령이 ‘시해’를 당함으로 18년에 걸친 장기집권은 막을 내렸다.

망명, 시해, 자살로 얼룩
전직 대통령 말로 ‘씁쓸’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최규하 전 대통령은 나중에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80년 신군부의 압력으로 하야했다. 역대 최단기 대통령이라는 오점을 남긴 채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루며 집권에 성공했다. 남북관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IMF 위기를 극복했으나 ‘게이트 공화국’ ‘3홍 게이트’로 불린 친인척 권력형 비리에 휩싸였다. 임기 말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기업체로부터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

두 아들이 한 달여 시간을 두고 차례로 구속되자 김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본인은 퇴임 직후인 2003년 대북송금 특검에서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면서 직접 조사는 받지 않았다.

높은 도덕성을 내세우며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이 겪은 비운을 피해가지 못했다. 퇴임 직후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연루되면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은 것.

참여정부 측근들과 친형 건평씨와 부인, 아들 등 가족까지 수사를 받자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면서 홈페이지를 닫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수사 도중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자살, 전직 대통령 수난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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