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공간을 그리는' 설치미술가 정혜련

2015.03.16 11:46:56 호수 0호

추상적 시간, 입체적으로 '쓱쓱'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정혜련 작가의 '연쇄적 가능성 Serial Possibility_Planet'전이 이달 28일까지 개최된다. '공간드로잉'이라는 새로운 미술 영역을 개척해 온 정 작가는 캔버스를 벗어나 빛과 운동이 공존하는 3차원에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탁월한 조형감각으로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에게서 남다른 가능성이 엿보인다.



'공간을 그리는 입체드로잉'으로 이름을 알린 정혜련 작가가 서울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은 '연쇄적 가능성 Serial Possibility_Planet'전이다. 그간 회화와 설치를 넘나들며 다재다능함을 발휘한 정 작가는 '공간드로잉'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본인의 미적 세계를 확장시켰다.

탁월한 조형감각

정 작가는 무의식적인 드로잉을 공간에 따라 '모듈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듈화는 작품의 단위별 분할 및 구조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정 작가는 각 모듈에 인위적인 변형을 가했다. 직선이었던 구조물은 곡선의 형태로 얽혀 흡사 뫼비우스의 띠치럼 연결됐다.

불규칙한 모듈에는 '빛'이라는 2차 변형이 가해졌다. 빛을 받은 작품은 무한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어떤 선은 포물선을 그리고, 또 다른 선은 나선형으로 회전했다. 에비뉴엘 아트홀 구혜진 큐레이터는 "빛과 움직임이 공존하는 공간 속 3차원 입체드로잉이라는 새로운 (미술) 영역을 상장한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면 작품을 만든 의도를 더 뚜렷이 알 수 있다. 정 작가는 "내가 공간 속 3차원 입체드로잉이란 형식을 추구하는 것은 공간이 지닌 불확실함, 곧 변화 가능한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라며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늘 변화하는 대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움직이고 있고, 세포들은 끊임없이 분열하고 있다"고 적었다.


정리하면 정 작가의 작업은 공간을 소재로 한 시간에 대한 작업이다. 그의 1차적 목표는 시간(혹은 기억)이란 추상적 관념을 현실의 공간 안에 대입하는 것이다. 작품 가운데 '추상적 시간'이라는 제목이 여럿 있는 사실은 이 같은 가정을 뒷받침한다.

앞서 정 작가는 '연쇄적 가능성'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 여러 형태를 입체적 드로잉의 방법으로 끄집어냈다. 과거 전시가 기억의 추상성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형태가 모인 어떤 세계, 즉 행성(Planet)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됐다.

붉고 푸른 각각의 빛은 우주 밖 행성의 신비로움을 닮았다. 빛 반사가 특징인 광확산PC(특수 플라스틱)는 공간의 영롱함을 더했다. 의도된 변수지만 정 작가의 작품에서 빛은 의외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개별 모듈은 행성의 형체로 수렴되며 빛을 통해 가변적인 생명으로 거듭났다.

에비뉴엘 아트홀서 '연쇄적 가능성'
나무 모듈 제작 광학산PC·LED 사용

사실 정 작가가 처음부터 공간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것은 아니다. 그의 초기작은 가죽을 활용한 '모빌'이었다. 이후 놀이공원으로 작업의 중심을 옮기면서 자연스레 공간이 가진 '감정'에 눈뜨게 됐다. 특정 장소가 환기하는 복합적인 기억에 주목한 것이다.

조각을 전공한 그는 전시가 될 장소를 정하고, 재료를 고르고, 모듈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 과거 전시 소개글을 보면 정 작가는 딱딱한 나무를 오랜 시간 물에 적시고 변형시켜 선의 형태를 만든 뒤 각 선에 LED를 입혀 세련된 모듈로 주조했다.

이 모듈은 롤러코스터처럼 공간을 부유하는데, 연결된 모듈을 '레일'이라고 보면 레일 아래위로 그림자와 반사된 빛이 투영됐다.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빛의 과학적 속성을 파악하고 있어야만 설계 가능한 퍼포먼스다.

자르고 붙이고

정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느낀 시간에 대한 경험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구현했다. 나아가 해체와 치환을 통해 인류의 시간으로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성공이 끝은 아니다. 정 작가는 이제 막 위대한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angeli@ilyosisa.co.kr>

 


[정혜련 작가는?]

부산대학교 미술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김종영미술관(2012), OCI미술관(2011), 성곡미술관(2005) 등 20회에 가까운 개인전을 열었다. 다수 그룹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으며 김종영 미술관 올해의 젊은 조각가,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선정,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등 다수 수상 경력이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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