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인생을 그리는 서양화가 상하

2015.03.09 10:59:32 호수 0호

"유명한 화가? 행복한 화가 될래요"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우주의 유한한 존재에 대하여." 서양화가 상하의 작업노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별의 잔해일 뿐인 존재에 대하여" "지금이라는 순간을 살며 사라지는 존재에 대하여" "삶이라는 공기를 맡고 뱉으며 소멸하는 존재에 대하여" 상하의 그림은 소소한 일상을 버티고 선 작고 연약한 존재에 대한 헌사다. 상하와의 인터뷰는 경기 남양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멋진 옷차림과 젊은 감각의 헤어스타일이 돋보였다. 서양화가 상하는 화가이면서도 사고의 깊이가 있는 '철학가'였다. 대단한 것보다는 하찮은 것, 거창한 것보다는 소소한 것을 사랑했다. 인간 생명은 물론이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에게까지 애정을 보였다.

생명을 담다

그는 그림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소중한 순간을 말하고자 했다. 상하는 '순간'을 존재하는 것의 숙명으로 인식했다. 지구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인간도 결국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먼지가 된 인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사라진 것들'이 별이 된다고 생각했다. 별을 닮은 오색의 화려한 점은 새하얀 캔버스 위에 눈꽃처럼 흩날렸다.

때로는 뚜렷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각각의 '점'들은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가리켰다. 우리가 아는 별은 반짝하고 빛나지만 폭발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상하의 그림에서 별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당신은 이만큼 반짝이는 존재다'이고, 둘째 '그러나 당신 역시 언젠가는 사라진다'이다. 상하는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겼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덧없는 삶이지만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살다가 별이 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별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상하의 그림에는 남녀와 아이, 노인 등 인간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상하는 인간이 느끼는 각각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꼽았다. 상하는 "내 작품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사랑 시리즈"라며 "사랑의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키스와 포옹 장면을 자주 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말과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도 등장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마이클잭슨, 이소룡도 그의 작품에선 별이 된다. 단 대중의 기대와는 별개로 작가 본인은 '상처'라는 감정에 관심이 많다. 인터뷰 도중 몇 차례나 '세월호'를 언급했다. 그가 그린 작품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비극에 가깝다.

별 주제로 인간과 동물 화폭에 담아
지하철 드로잉 수천번…연습 또 연습

그는 관객이 비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화폭을 통해 전달코자했다. 상하는 "사랑 시리즈에 비해 갤러리의 수요는 없는 편"이라며 웃었다.

상하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출신학교를 밝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었다).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였던 1990년대를 온몸으로 관통했다. 미술 대학원을 졸업한 상하는 10년 가까이 붓을 잡지 않았다. 이 시기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5년 동안 상하는 거의 매일 책만 읽었다. 독서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지만 책은 인생의 해답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어느 순간 문득 '남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하의 그림은 오랜 성찰의 결과물인 인간에 대한 존중, 나아가 생명을 보듬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애견인이기도 한 그는 20년 넘게 생명을 기르고 있다.

10년의 깨달음

상하는 물감을 풀어 여러 번 덧칠하는 작업 방식을 지키고 있다. 특유의 몽롱한 색감은 이 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모델 앞은 물론이고 지하철에서 인체 드로잉을 수천번씩 반복하며 그림선의 맵시를 연마했다. 꿈틀대는 필선은 인체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상하는 "매일 새 작업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유명세를 좇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상하. 막연한 우울감을 뿌리치고 행복을 찾아 비상하는 그의 새로운 작업에 관심이 모아진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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