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대본 놓고 방울 잡은 새내기 무속인 정호근

2015.02.23 10:39:10 호수 0호

어릴 때부터…“무당은 내 운명”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배우 정호근씨는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무당)의 삶을 시작했다. 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의아한 시선이 대부분. 명품 감초 연기로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한 그가 갑자기 왜 무당이 됐는지 말이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초인종을 누르고, 신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배우 정호근이 아닌 무속인 정호근이 취재진에게 던진 첫 마디였다. 취재진은 북악산 골짜기에 있는 신당 대명원을 찾느라 진땀을 뺐다. 약속한 시각은 저녁 6시30분. 헤매는 동안 7시가 됐다. 신당은 일반 단독 주택이 아닌 가정집 빌라였다.  
 
기구한 인생사
 
장난기 어린 중저음 목소리, 진달래 빛깔의 노란색 한복과 책상 위에 놓인 방울이나 부채, 쌀, 엽전 등은 사극 촬영 의상과 소품을 보는 듯했다. 여전히 브라운관에서 본 그의 모습과 일치했다. 또한 예술인 특유의 여유로운 모습에 ‘배우긴 배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신당은 8평 남짓한 방으로 아늑했다. 하지만 방안은 정월이 되기 전에 신께 바칠 재물로 쌀가마가 한가득 쌓여있다. 한쪽에는 동자선녀를 모시는 제사상이 있는데, 초콜릿, 사탕 그리고 인형도 놓여있었다. 어린 동자, 선녀 신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먼저 많이 바쁘냐고 물었다.
 
“아휴, 파김치에요. 6시에 일어나서 신당에 옥수 올리고, 준비하다 보면 근방 8시예요. 그때부터 손님들이 오는데 예약이 거의 꽉 찼어요.”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는 초인종이 울리며 예약 손님이 들어왔다. 신당을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홈페이지도 없다. 제대로 홍보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배우 정호근이 신당을 차렸다는 소식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손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고 있다.
 
“무당이라는 게 일종의 카운슬러예요. 그걸 우리는 신의 언어로 ‘공수’라고 불러요. 사실 신의 공수는 아주 간단명료하죠. ‘돼. 안 돼, 앞으로 성공해, 기다려야 해’ 이런 거예요. 근데 그걸 ‘뭐가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너는 그렇지!?’ 이렇게 말하면 그건 그냥 구라죠.”
 
그는 점을 보는 게 심리 상담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생의 한이 많은 사람일수록 무속인 일을 하는 게 유리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겪어왔던 인생 경험을 접목하면서, 상대방에게 동질감과 공감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관 종횡무진하다 ‘갑자기 왜?’
초등생부터 기행동…이제야 받아들여
 
사실 정씨만큼 기구한 인생을 산 사람도 없다. 그는 일찍이 큰 아이와 막내 아이를 먼저 보낸 슬픔을 겪어야 했다. 
 
“지금까지 계속 잘되려다가 코가 깨지고, 또 잘되는가 싶으면 어디선가에서 아스발이를 걸어서 자빠졌어요. 근데 그게 다 신가물이었죠. 신내림을 받아야 되는 사람인데, 신은 그런 사람한테는 항상 맛만 보여줘요. 올라가야지 뭐가 될 거 아닙니까.(웃음) 근데 올라가려고만 하면 탁! 아스발이를 거니깐 만날 코만 박는 거예요.”
 
 
그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만큼 캐스팅이 됐던 작품이나 광고 출연에 취소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니깐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작년 분기 기점으로 나한테 신병이 왔어요. 원래 예민해서 과민성 대장증상이 있긴 한데 일주일만 고생하면 없어졌어요. 근데 이건 3개월간 계속 설사만 하는 거야.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촬영 현장이나 토크쇼 촬영할 때 아파죽겠는데, 웃어야 하고, 그리고 들어왔던 일이 계속 취소가 돼요. 재수 옴 붙은 것처럼요.” 
 
“무속인이 무섭다고요?

목사·스님처럼 봐주세요!”
 
정씨는 당시 좋지 않은 일만 계속 생겨 기도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귓가에 “누가 니 고집을 꺾겠니. 니놈 무당 시켜 찌그러진 집안 다시 일으켜주려고 했는데”라고 말했다고. 또 “2년 안에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넌 죽어”란 말도 들렸다. 이 말을 듣고 무당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느닷없이 헛소리를 했어요.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놀랐겠어. 비 내리고 천둥번개 치면 마당에 나가 춤을 췄어요. 그러다가 잠을 자더라고, 근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이었죠.”
 
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무당이 될 운명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단지 지금까지 그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다 이제야 받아들였다. 물론 무당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무당을 정신병자 취급하는지 모르겠어요. 방울만 흔들면 ‘저 사람 왜 저래?’이런 반응을 해요. 무당은 사제예요. 목사, 스님, 신부처럼 말이에요.”
 
3개월 전 신내림
 
주위의 반응은 그의 선택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주변에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주셔서, 일할 맛이 나요. 지난 연말에는 함께 활동했던 동료 배우와 연예인들이 찾아와서 점을 보고 갔을 정도예요.
 
인터뷰 막판 기자는 올 한해 대한민국의 전망을 점쳐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민감한 거 좀 물어보지 마세요. 잘못 말하면 큰일 나요”라고 손사래 쳤다.
 
 

<min1330@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