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히든 카드

2010.05.04 09:18:08 호수 0호

“탄탄한 수익구조 개편으로 대북사업 지켜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연달아 악재가 닥쳤다. 북측의 금강산 자산동결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채권단이 그룹의 재무상황을 문제 삼고 나선 탓이다. 채권단은 최근 현대그룹의 부채가 위험한 수준이라고 판단, 구조조정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해운업 불황에 따른 현대상선의 실적부진과 장기간의 대북사업 중단이 현대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는 취임 이후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현 회장이 위기의 현대그룹을 살리기 위해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채권단 재무약정 검토…계열사 실적부진·대북사업 중단 원인
현대그룹 측 “재무상황 나쁘지 않다” 반박 속 대책 마련 부심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약정(MOU ·이하 재무약정) 대상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채권단으로부터 재무구조가 악화돼 부실 우려가 있다는 1차 경고를 받은 셈이다.
채권단은 지난달 27일 “현대그룹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재무구조 평가에서, 앞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향후 부실 우려가 있다는 예비 판정을 받았다”며 “구조조정 대상으로 최종 확정된다면 5월 말에 채권단과 재무약정을 맺어야 한다”고 밝혔다.

채권단, 현대그룹
재무약정 검토 중



채권단과 재무약정 체결 시 현대그룹은 부채 탕감과 현금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 처분에 들어가야 한다. 주요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계열사 매각을 검토하기도 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를 잃었던 현대그룹에게는 다시 한 번 아찔한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설은 주식시장에서도 빠른 반응을 보였다. 지난달 28일 현대상선ㆍ현대엘리베이터ㆍ현대증권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5일째 연속 하락세를 보인 현대상선은 전날보다 7.67% 하락한 2만6500원에 장을 마감했고, 현대증권과 현대엘리베이터도 전날대비 각각 4.32%, 3.92% 하락한 1만3300원, 4만9000원을 기록했다.

현대그룹이 재무약정 대상기업으로 오르내리는 것은 최대 주력사인 현대상선의 실적부진과 대북사업 중단으로 인한 현대아산의 부실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이 중 현대상선의 부실은 그룹에 직격탄을 날렸다. 현대상선은 그룹 전체 자산의 8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매년 현대상선의 매출 실적이 그룹의 한 해 재무상황을 좌지우지할 정도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지난해 실적은 최악의 수준이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해운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크게 급감한 탓이다. 현대상선의 지난해 매출은 6조9386억원으로 8조9309억원을 달성한 전년대비 20%이상 하락했다. 결국 현대상선은 지난해 5764억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을 입었고 8375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최악의 실적부진은 부채 증가로도 이어졌다. 현대상선의 부채는 2008년 5조8915억원에서 2009년엔 6조647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1조원의 회사채 발행으로 부채비율은 196%에서 284%로 뛰었다.

업계는 채권단이 그룹 자산의 80%를 차지하는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200%를 훌쩍 넘었다는 데에 있어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12년째 이어져온 대북사업의 장기간 중단도 현대그룹의 악재를 이끄는 요인 중 하나다. 그룹의 대북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현대아산은 수년째 누적적자를 키우며 부실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막혀버린 북로가 2년째 뚫리지 않고 있는 탓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북사업이 조속히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사실상 현대아산의 존립자체가 위태롭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현대아산은 지난해에만 32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도 영업적자 54억원의 6배에 달한다. 2008년 대북사업 중단에 따른 현대아산의 매출손실도 올 2월까지 금강산 관광 사업 2315억원, 개성공단 사업 265억원 등 총 2580억원에 달한다. 장기간 경영난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아산은 인력도 이미 60% 가량 구조조정했다. 지난해 7월 1000여 명에 이르렀던 직원은 현재 380여 명에 불과하다. 남은 임직원의 급여 또한 5~15% 가량 삭감됐다.

고사 위기에 처한 현대아산을 이제껏 이끌어 온 것은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다. 지난해 경영난에 놓였던 현대아산은 200억원의 증자를 실시했고, 현대상선 등 주요 계열사들이 긴급 수혈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도 대북사업은 여전히 재개될 가능성이 없어 보여 현대그룹에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오히려 최근 북한의 태도는 그룹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13일 우리 정부가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를 막고 있다며 정부와 관광공사가 소유한 금강산 관광지구내 5개 부동산을 동결하고, 관리 인력을 추방했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금강산 내 현대아산 소유 부동산에 대한 동결에 착수했다.

현대아산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은 이 날 오후 현대아산 소유 부동산인 콘크리트 혼합장, 눈썰매장, 해수욕장 등에 대한 동결조치를 집행했다. 북한의 이 같은 강도 높은 압박에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대북사업의 전면 폐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현대상선 부채비율 284%
현대아산 누적적자 ‘차곡’

만약 일각의 우려대로 북한이 동결조치를 자산 몰수로까지 끌고 간다면 현대그룹은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현대그룹은 지난 12년간 대북사업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투자했다. 2000년 정상회담 대가로 북측에 5억 달러를 전한데다 금강산 지역에 들어간 시설 투자비만 2269억원이다.
금강산 내 소유 토지 및 사업권의 규모만도 6000억원 가량이다. 이에 비해 현대아산이 올린 영업이익은 대북관광 사업이 호황을 이루던 2005년부터 3년간 수백억원에 불과하다. 북한이 이대로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모든 계약을 파기하고 남북 통로를 차단해 버린다면 현대아산은 손실보전도 받지 못한 채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에도 현대그룹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구조조정설이 터진 직후 “재무구조약정 체결을 해야 할 만큼 재무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룹 자산 80% 차지한 현대상선 ‘골골’      
현대아산 대북사업 ‘빨간불’ 존폐위기


현대상선도 다음날 재빨리 올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기존 다음 달 초쯤에 예정된 실적 발표였지만 실적부진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 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올 1분기 매출 1조7500억원, 영업이익 116억원을 달성했다. 2008년 4분기 이후 5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이와 관련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해운 경기 불황으로 일시적으로 실적이 나빴지만 최근 해운 시황이 빠르게 살아나고 있어 재무약정을 맺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1분기 실적 발표로 현대그룹의 재무안정에 대한 불안감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의 실적이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꽉 막힌 대북사업도 걱정거리다. 특히 현대상선은 현대아산의 지분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어 대북사업에 따른 리스크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

돌파구는 수장인 현 회장의 손에 달려있다. 2003년 경영권 확보 후 뚝심으로 이끌어 온 현대그룹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현 회장은 어떤 방안을 마련하고 있을까. 그 밑그림은 현 회장이 최근 발표한 현대그룹의 새로운 비전에서 엿볼 수 있다.
현 회장은 지난달 12일 연지동 사옥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행사에서 그룹의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2020년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5조8000억원 달성’이라는 경영목표를 제시했다.

현 회장은 이 같은 비전을 이루기 위해 그룹의 경영 전략도 새로 짰다. 현 회장은 우선 사업구조를 지금의 해운·인프라·증권업 3개 분야에서 글로벌 인프라·통합물류·종합금융·공간이동·관광유통교육 등의 5개 부문으로 확대해 추진키로 했다.

특히 관광유통교육 부문을 육성해 현대아산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현대아산은 정권 때마다 바뀌는 남북관계의 변화에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지게 된다.

‘2020 비전’ 사업다각화
안정적 수익 구조 꾀해

또한 현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이를 통해 러시아 등 해외진출 사업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증권 등의 금융 업무는 캐피탈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 날 현 회장은 대북사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현 회장은 “당국 간 대화가 진전되면 막힌 길이 뚫리고 더 큰 희망의 문과 축복의 통로가 활짝 열릴 것으로 확신 한다”면서 “우리 현대가 열어놓은 남과 북의 민족화해사업인 금강산·개성관광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북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다양한 사업 확대로 수익구조 강화에 나설 계획인 현대그룹은 이 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제2의 도약’에 나서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바로잡습니다]
5월6일자 지난호(746호) 22·23면 「재벌 주식부호 별별랭킹 TOP10」제하의 기사내용 중 ‘최고령 주식부호 9위는 79세의 장재진 오리엔트바이오 회장…’에서 장재진 회장은 79세가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1961년생인 장 회장은 올해 50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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