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주무르는 ‘예산소위’ 두 얼굴

2014.11.24 11:08:02 호수 0호

‘쪽지예산’ 없다더니 실제로는 ‘문전성시’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예산정국의 하이라이트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이하 예산소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예산소위는 국회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 예비심사를 거쳐 올라온 정부 예산안을 최종심의·결정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기구다. 그간 예산정국 때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른바 ‘쪽지예산’도 예산소위 심사단계에서 기승을 부려왔다. 이를 막기 위해 여야는 앞다퉈 “이번만큼은 쪽지예산이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내년 예산안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예산소위가 지난 16일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예산소위 회의장과 예산소위 위원 사무실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정부부처 공무원, 국회의원들이 예산소위의 예산 삭감을 막거나 쪽지예산을 끼워 넣기 위해 로비를 하고자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예산소위의 힘

당초 376조원 가량이었던 정부 예산안은 상임위 심사에서 13조5690억원 가량 증가돼 예산소위로 넘어왔다. 상임위 심사 증가분 중에는 지역구 선심성 쪽지예산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간 쪽지예산은 예산소위 심사에서 갑자기 생겨 최종 확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야가 앞다퉈 “이번에는 쪽지예산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며 상임위 예비심사 단계에서 쪽지예산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새누리당 예결특위 간사인 이학재 의원은 “국회가 매년 밀실·졸속예산을 편성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산을 힘의 논리, 친소관계로 끼워 넣으니 엉터리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쪽지뿐 아니라, 카톡·문자예산 모두 받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예결특위 간사인 이춘석 의원도 “일체의 쪽지예산을 없애고 예산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쪽지예산을 없애겠다”는 발언은 매년 나왔고,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구 예산을 많이 끌어올수록 능력있는 의원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 정치풍토상 이런 행태가 매년 반복된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여야의 공언이 허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쪽지예산을 제도적으로 없애기 위해 발의된 법률 개정안이 2년이 다 되도록 소관 상임위에 방치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매년 되풀이하듯 쪽지예산 근절을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의지조차 없다는 얘기다.

정부부처 공무원, 국회의원 로비 ‘여전’
매년 하는 ‘근절 약속’ 이번에도 허언?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2년 내에 제출된 국회법 개정안 가운데 각 상임위의 예산안 예비심사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은 모두 6건이다. 이 개정안들은 예산소위가 상임위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경우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이 지난해 1월 발의한 개정안은 예산소위가 상임위에서 심사한 예산을 증액 또는 감액하는 모든 경우에 상임위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쪽지예산을 막기 위한 개정안이 수년간 잠자고 있는 것은 국회가 이를 바꿀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히 홍문표 예결위원장은 “선의(?)의 쪽지예산은 집어넣겠다”며 쪽지예산 경쟁에 공개적으로 불을 지폈다. ‘선의’의 개념이 모호한 만큼 일단 지역구를 챙기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로비가 이뤄질 여지를 열어준 것이다.

비교섭단체라는 이유로 예산소위에 한 명의 위원도 참여시키지 못한 정의당도 쪽지예산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유감스럽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예산소위가 교섭단체인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로만 꾸려졌다"며 “하지만 심의기간 동안 가만히 있지 않겠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예산을 만들기 위한 쪽지예산을 매일 예산소위에 공개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예산소위 위원으로 내정됐다가 첫 회의를 앞두고 갑자기 교체된 이정현 의원이 “예산소위 복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호남 예산 지키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것도 상임위 심사에서 밀어 넣은 예산은 지키고, 추가로 쪽지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쪽지예산 반복?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지난해 예산소위 위원을 맡을 때 지역구 예산을 두둑이 챙겼던 것이 사실”이라며 “만약 올해까지 했다면 지역구에 큰 건물 몇 채를 더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임위 심사에서 이미 13조원 가량의 예산이 증가했지만, 예산소위 심사에서 추가로 쪽지예산이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밀실·졸속 편성된 쪽지예산이 늘어나면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1~8월 누적 재정적자가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인 34조7000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쪽지예산을 통한 예산 증가는 국가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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