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헌법기구 규제개혁위원회 대해부

2014.11.24 11:34:55 호수 0호

‘정부 위의 위원회’ 넘어 ‘헌법 위의 위원회’로 군림?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의 권한이 한층 더 강화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이 소속 의원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 규개위에 힘을 더 실어주는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규개위는 권한은 막강한 반면 책임은 지지 않는 ‘숨은 권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였다. 규개위의 권한 강화는 숨은 권력을 넘어 이제는 초헌법기구로 자리매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규개위는 정부의 규제 관련 정책을 심의·조정하고 정부의 모든 입법에 대해 규제 여부를 사전 심의하는 기구다. 사실상 정부의 규제 관련 법령을 좌지우지하는 만큼 ‘정부 위의 위원회’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규제개혁을 내세우고 있어 규개위의 비중은 더 커졌다. 그런데 가뜩이나 힘이 센 규개위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이 발의돼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도 쩔쩔매는
규제개혁위원회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규제개혁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광림 의원은 지난 13일 소속의원 157명(전체 158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행복·일자리 창출·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규제개혁특별법 제정안(이하 규제개혁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전체 재적인원의 과반이 넘는 인원이 법안 발의에 참여한 만큼 법안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규제개혁특별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선 규제개혁 적용기관과 대상을 국회·법원·감사원 등 헌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까지 확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 입법권과 지방분권 정신에 위배될 수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규제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해 야권으로부터 “초헌법적 발상”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고 물러선 바 있다.


둘째, 규제개혁 공무원 면책 조항을 신설됐다. 공무원이 규제개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을 위한 업무 중 중대한 과실이 없거나, 상급 행정기관이나 규개위의 의견을 들어 처리한 경우 문제가 되더라도 해당 공무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헌법 초월한 규제완화…권한 더 키워
국회·감사원, 지자체까도 심사 대상

이 조항은 지난 8월 ‘위헌 요소’로 인해 정부 입법안에서 삭제된 바 있다. 감사 면제는 헌법이 규정하는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 대통령이 이 조항을 재검토할 것을 지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공무원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나중에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감사에서 면책해 주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 조항의 위헌적 요소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박 대통령의 지시는 집권여당에 전해져 의원 입법의 형태로 되살아났다.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헌법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공무원을 규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기 위해 위험한 발상을 한 것”이라며 “위헌적 요소를 제외하고도 권한이 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특별법에는 규개위의 규제개혁 추진체계를 강화하는 ▲직무감찰 요구권 부여 ▲정부업무평가에 규제개혁평가 의무 반영 ▲규개위 상설화 ▲규제비용총량제 ▲규제개선 청구제 ▲규제일몰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위헌적 요소 가득
헌법 위의 위원회?

규제개혁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정부 위의 위원회를 넘어 ‘헌법 위의 위원회’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로 야권에서는 지금까지도 모든 정부 부처의 규제와 관련된 법령을 심사하며 공직사회의 ‘갑중의 갑’으로 군림해 왔던 규개위에 규제개혁특별법 특혜까지 부여하면 삼권분립 위에 존재하는 초헌법기구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의원은 “법적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려가 없는 초헌법적 발상의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할 수는 없다”며 “정부와 여당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 추진에 적극적으로 맞대응 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특별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법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단체들은 규제개혁특별법 발의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환영 메시지를 내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4단체는 공동명의 논평을 통해 “규제개혁은 돈 안 드는 대표적인 경제활성화 수단”이라며 “경제활력 회복이 중요한 현 시점에 국회가 앞장서서 규제개혁을 위한 특단의 법안을 발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호평했다.


재계의 적극적 환영은 누구를 위한 특별법인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규개위는 민간 위원장을 포함한 민간위원 18명 중 기업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인사가 4명에 이르고 시민단체 인사는 한 명도 없는 등 위원구성이 지나치게 경제계 쪽에 편중돼 ‘경제계를 위한 규제완화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재계 “돈 안 드는 경제활성화 방안” 대환영
편중된 위원·불투명 운영 등 규제완화 치중

이와 관련 지난 3월 규제개혁위원장직을 중도 퇴임한 김용담 전 대법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법률상 규개위가 규제를 강화 혹은 완화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규제 완화 여부만을 심사하는 것으로 운영돼 왔다”고 말한 바 있다.

규개위를 지원하는 총리실 산하 규제조정실 관계자도 “원안보다 강화하는 결정을 내린 사례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규제를 풀기만 하는 것을 규제개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규개위의 이러한 활동 탓에 각 정부부처의 규제 정책은 신설·강화보다는 완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신설·강화 규제는 규개위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완화 규제는 아무런 제약 없이 국무회의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밀실 회의’도 규개위 활동에 대한 의혹을 키우고 있다. 규개위 운영원칙에는 회의소집은 ‘위원장이 일시, 장소 및 부의사항을 정해 회의 개최일 7일 전까지 각 위원에게 서면으로 통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열린 44차례 회의 일정 고지를 살펴보면 회의가 열린 뒤 사후 고지 29건, 일주일 이전 고지 불이행 15건 등 한 차례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505회 행정사회분과위원회 개최계획(5월30일)은 다섯 달 뒤인 10월21일에야 고지됐다.

게다가 규개위는 상세한 회의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고 있다. ‘위원회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위원장이 공익보호나 기타 사유를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위원회 의결로써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언론의 회의 참관 요청은 기피하고, 간략한 보고서 형태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밀실 운영
의혹 키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03년 7855개였던 규제가 올해 10월말 기준 1만4987개로 급증하며 일부에서 ‘규제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개혁이 필요한 규제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꼭 필요한 규제도 있는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를 거쳐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무조건 규개위의 권한만 키워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carpediem@ilyosisa.co.kr>

 

[규제개혁위 인적 구성]

▲위원장 : 정홍원 국무총리, 서동원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경제분과 위원장 :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경제분과 위원 : 김종일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원장
                         손원익 안진회계법인 R&D센터원장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조신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장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한경희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이사
▲행정사회분과 위원장 : 전의찬 세종대 환경에너지융합과 교수
▲행정사회분과 위원 :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영수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 교수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손현덕 매일경제신문사 편집국 차장
                               이원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
▲당연직 정부위원 :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정종섭 행정자치부(구 안전행정부)장관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공정거래위원장(12월4일 정재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예정)
                            제정부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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