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한 대형마트의 기발한 장삿속

2010.03.30 09:20:31 호수 0호

부모 등골 빼먹는 얌체마트


대형마트들의 ‘고객 잡기’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 매장의 상품 진열이 화제다. ‘동심’을 공략한 이 진열 방식은 지역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구매를 유도하는 기발한 매대 배치로 회자되고 있다. 한마디로 어쩔 수 없이 지갑을 꺼내게 한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전략일까. 해당 점포로 가봤다.          


계산대 옆 장난감 매대 배치 “십중팔구 구매”
무빙워크 뚝 잘라 고객 유도…가림막까지 설치


대형마트들의 ‘고객 잡기’ 경쟁이 치열하다. 초특가 할인 공세를 벌이는가 하면 경쟁적으로 행사 상품을 늘리고 대대적인 판촉에 나서고 있다. 급기야 수천만원짜리 경품까지 등장했다. 모두 고객 한명이라도 더 잡기 위한 마케팅이다. 소비자에겐 반가운 일이지만, 업체간 ‘제 살 깎기’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각 매장은 보다 쉽게 고객의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그중 돈 안들이고 효과적으로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는 매장 진열, 즉 ‘인스토어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스토어 마케팅의 기본은 연관 진열이다. 우유와 시리얼, 고기와 쌈장 등처럼 본 진열대 상품과 연관된 상품을 함께 배치해 구매를 유도하는 식이다.

이 경우 따로 진열했을 때보다 10∼30%가량 판매량이 증가한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맥주와 기저귀’ 진열도 고객의 구매습관과 동선을 분석해 매출을 극대화한 사례다. 이는 남성 고객이 부피가 큰 기저귀를 주로 구입한다는 사실에 착안, 바로 옆에 맥주를 판매해 맥주까지 사도록 한 것이다.

안사고 못 배긴다

또 계산대 주변에 소규모 상품들을 진열하고 매장 입구에 과일을 놓는 등의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유통업계에 자주 회자되는 탓에 이미 고전이 돼 버렸다. 소비자도 언론, 인터넷 등을 통해 업체의 노림수를 꿰뚫고 있다. 결국 널리 알져진 전략으론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한 매장의 독특한 상품 진열이 화제다.

‘동심’을 공략한 이 진열 방식은 지역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기발한 매대 배치로 회자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지갑을 꺼내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구로구 한 대형마트.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유독 장난감 코너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어린 고객들과 이를 지켜보는 보호자들간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한창이다.

이 코너에선 부모를 난처하게 하는 어린이의 ‘생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다. 십중팔구 자녀에게 백기를 든 부모가 장난감을 계산대로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줄을 이었다. 다른 매장도 비슷한 광경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이곳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매장 직원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한 판매원은 “이 매장에서 부모와 자녀가 장난감을 놓고 밀고 당기는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며 “사달라고 조르는 자녀와 이를 말리는 부모 사이의 실랑이는 80∼90% 정도가 자녀가 고른 상품을 계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고 귀띔했다. 이 마트엔 그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절묘한 진열대 배치로 대부분의 고객이 장난감 코너를 지나치도록 쇼핑 동선을 조정한 것. 타깃은 차량을 이용한 고객이다.

매장은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로 3층부터는 주차장이다. 이 마트의 계산대는 각각 1층과 2층에 있는데 도보로 마트에 들른 고객은 1층에 마련된 계산대를, 차량을 이용한 고객은 2층 계산대를 통과해야 주차장으로 갈 수 있는 구조다. 2층 계산대와 맞붙은 매대가 바로 장난감 코너다. 마트 측은 2층에서 3층으로 가는 무빙워크를 뚝 잘라 2층 계산대로 고객을 유도했다.

계산이 끝나야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무빙워크를 탈 수 있다. 2층 무빙워크에서 계산대까지 가림막을 설치해 고객 이탈(?)을 막았다. 결국 차량을 이용한 고객은 모두 마지막으로 장난감 코너를 지나쳐야 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자녀와 동반한 부모로선 여간 곤혹스런 ‘난코스’가 아닐 수 없다. 이 마트는 부모와 자녀간 밀고 당기는 실랑이로 계산대 일대가 너무 붐비자 얼마전 아예 장난감 매대와 매대 사이를 넓혔다.

해당 마트 관계자는 “소비자 심리와 구매 패턴, 동선 등을 고려해 장난감 진열대를 계산대 주변으로 배치한 뒤 더욱 효과적인 구매를 위해 무빙워크를 막아 주차장 이용객 100%를 이 코너를 지나치게 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특히 극심한 소비 침체 속에서도 키즈 제품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점까지 더해 장난감 매출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유통 전문가는 “대형마트들은 어떤 제품들이 잘 팔리는지, 어떻게 진열했을 때 고객의 구매액을 증가시키는지를 분석해 전략적으로 매대를 운영하고 있다”며 “구매자의 약 70%가 매장에서 충동적으로 구매를 결정하며 진열에 따라 30% 정도의 매출이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곤혹스런 ‘난코스’

하지만 부모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한 고객은 “다른 마트와 다르게 이 마트만 가면 자녀들의 장난감을 필요 이상으로 구매해 장바구니는 애초 계획보다 묵직해지기 일쑤”라며 “자녀를 데리고 계산대를 향할 때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떼를 쓸까하는 생각부터 든다”고 푸념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매출을 늘리려는 의도로 매장 구조까지 변경시킨 업체의 입장은 알겠지만 소비자로선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고객을 잡기 위한 마케팅도 좋지만 동심을 유혹하는 장삿속으로 보여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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