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침뜸이 으뜸이라

2010.03.16 10:03:17 호수 0호

‘신의 의술’ 허임과 침의 이야기


손중양 저 / 허임기념사업회 펴냄 / 1만5000원



침과 뜸이 의료의 요체고 이 탁월한
조선의 침구술이 허임방이었다

조선에 침의가 있었다. 침의는 침과 뜸으로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선사시대 돌침으로 큰 종기를 치료하고, 기혈의 순환을 다스리던 이 나라 의술의 맥을 잇고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침의들의 활동은 급격히 두드러졌다. 전국 각지에 무수한 침의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허임은 바로 이 시기에 활동한 조선의 국가대표 침의이다.

<허준>과 <대장금> 등으로 조선의 어의와 의녀가 소설과 드라마 가운데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탁월한 침의의 역사는 누락됐고, ‘신의 의술’로 일컬어졌던 조선 침의의 중시조 허임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왜 이들 침의의 역사는 조명되지 않았을까? 허구가 역사로 오인되는 이 시대. 다시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나섰다. 이 책은 허임의 생애와 침의들의 이야기를 발로 뛰어 다니며 발굴ㆍ취재하여 묶어낸 책이다.

허임의 아버지는 양양의 관노였다. 그는 장악원에 악공으로 선상되어 당대 최고의 대금연주자로 성장했다. 악공에서 악사가 되고, 장악원 최고의 진행자인 전악에까지 이른 그는 조선음악의 한 시대를 이끌었다. 허임의 어머니는 김귀영이라는 재상집의 종이었다. 사비가 관노출신의 악사를 만나 허임을 낳고, 명의로 길러냈던 것이다.

이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험난한 시대를 살았다. 당시 한반도는 격동의 현장이었다. 허임 일가의 삶의 역정은 극적 전환으로 점철됐다. 허임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원 집에서 일해 주며 처음 의술에 눈을 떴다. 임진왜란 중에는 침의로써 광해군을 따라 전란의 상흔을 치료했다. 침뜸으로 일세에 이름이 난 허임은 내의원 침의로 천거됐다.

허임은 어의 허준의 추천으로 선조의 편두통을 침술로 치료하여 일약 당상관에 올랐다. 선조가 침을 맞을 때 허준은 스스로 자신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털어 놓았다. 허준은 실제로 침을 놓지 않았다. 허준이 침놓는 흔적을 찾아 많은 자료를 뒤졌으나 확인이 되지 않았다. 17세기 들어 침의들은 제도권 의료에서도 그 비중이 확고히 높아졌다. 허임은 침의들 중에서 으뜸으로 꼽혔다.

그는 광해군 시절에는 부평부사 등 지방수령을 지내기도 했고, 인조 초기까지 내의원 침의로 활동했다. 늘 백성들 가운데 살며 인술을 펼치고자 했던 허임은 중년이 지나서 공주에 정착했다고 한다. 저자는 많은 침의의 모습을 발로 찾아다녔다. 수년 동안 역사 자료를 뒤져 찾아낸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허임의 생애와 수많은 침의들과 당시의 사람 사는 모습을 흥미롭게 엮었다. 이 책을 통해 소설과 드라마에 의해 잘못 알려진 상식을 바로잡고, 생명과 건강을 침과 뜸으로 지켜온 슬기로운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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