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 380억 ‘세금폭탄’ 막후

2010.03.09 09:14:52 호수 0호

비밀 곳간 게이트 ‘딱 걸렸다’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국세청으로부터 부과 받은 380억원에 달하는 추징금에 대한 적부심 결과가 곧 나오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무슨 이유로 엄청난 과세를 물어야 할까. 또 국세청을 향한 박 회장의 불만이 뭘까. 박 회장에게 떨어진 ‘세금 폭탄’을 해부해봤다.

국세청, 변칙증여 혐의 추징 통보…적부심 진행 중  
아들 지배 계열사에 무상증여 방식으로 과세 피해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이 수백억원의 추징금을 부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하이트·진로그룹과 주류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달 박 회장에게 380억원가량의 증여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이 금액은 국내 주류업계 오너들이 부과 받은 추징금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박 회장은 이번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 과세전 적부심을 청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과세전 적부심은 세무조사를 받은 납세자가 세금을 최종 고지받기 전에 이의를 제기해 과세 적정성 여부를 가리는 사전권리구제 제도다.

세금 피하고 승계 다지고

박 회장이 받고 있는 탈세 혐의는 아들에게 주식을 넘길 때 편법증여 수법을 동원했다는 의혹이다. 박 회장의 장남 태영씨는 2007년 12월 하이트-진로그룹 협력사인 삼진이엔지의 지분 73%를 인수, 최대주주가 됐다.
삼진이엔지는 맥주냉각기 제조 및 판매업체로 하이트맥주의 협력사였다. 당시 태영씨는 삼진이엔지를 인수하면서 공정위에 기업결합신고를 지연해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받기도 했다.

태영씨의 지분 참여로 삼진이엔지는 하이트-진로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삼진이엔지는 하이트맥주 지분 0.7%를 갖고 있었다. 태영씨는 그전까지 하이트그룹 관련 지분을 전혀 보유하지 않았지만, 삼진이엔지 지분 인수를 통해 자연스레 그룹 지배구조에서 정점에 있었던 하이트맥주를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여기에 박 회장도 대놓고 힘을 실어줬다. 박 회장은 이듬해 2월 외국산 주류를 수입·판매하는 계열사 하이스코트 지분 100%를 전량 삼진이엔지에 무상 증여했다. 태영씨의 삼진이엔지 지분가치를 증대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업계에선 경영권 승계를 위한 든든한 ‘디딤돌’로 풀이했다.
나아가 태영씨는 하이스코트가 하이트홀딩스와 하이트맥주의 지분을 보유한 탓에 삼진이엔지를 통해 ‘하이스코트-하이트홀딩스-하이트맥주’까지 지배하는 위치에 올랐다.

현재 하이트-진로그룹 지배구조는 지주회사인 하이트홀딩스가 하이트맥주, 진로, 하이트산업, 세왕금속공업 등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형태다.
삼진이엔지는 2008년 12월 하이스코트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분리해 삼진인베스트를 설립했는데, 삼진인베스트는 박 회장(29%)에 이어 하이트홀딩스 지분 24%를 가진 2대주주로 등극한 상태다. 삼진이엔지가 삼진인베스트 지분 100%를 갖고 있어 결국 태영씨가 실질적인 2대주주인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2008년 말 재벌그룹들의 편법 주식거래 보고서에서 “박 회장이 하이트홀딩스를 지배한 하이스코트를 삼진이엔지에 증여해 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하는 한편 후계구도를 구축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하이트·진로그룹 측은 “계열사 간 소소한 지분 이동과 오너의 일반적 지분 취득일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큰 문제는 박 회장과 태영씨가 이런 증여 과정을 거치면서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회장이 보유했던 하이스코트 지분이 태영씨 개인이 아닌 삼진이엔지 법인으로 증여됐기 때문이다.

현행 세법상 개인에서 법인으로 증여가 이뤄졌을 경우 법인은 ‘자산수증이익’(회사가 주주 등으로부터 현금이나 기타의 재산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생기는 이익)에 따른 법인세(해당 금액의 약 20%)만 내면 된다. 반면 개인에서 개인으로 증여가 이뤄지면 총액의 50%(30억원 이상)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박 회장은 물어야 할 증여세를 법인이 대신 내게 하는 수법으로 자산 3000억원대 회사를 세금 한 푼 없이 상속할 수 있었다. 하이스코트와 삼진이엔지의 그룹 지배구조상 정점인 위치를 감안하면 절세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당시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박 회장이 효과적인 절세 방안으로 지분 증여를 통한 경영권 승계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와 명백한 편법증여로 국세청이 나서서 증여세를 물려야 한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왔다. 또 나중에 편법증여 사실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어차피 내야할 증여세만 내면 되는 만큼 박 회장으로선 ‘밑질 게 없는 장사’란 분석도 있었다.

국세청은 대기업 오너 일가의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차단하기 위한 ‘실질과세 원칙’(법적 실질보다 경제적 실질에 따라 과세하는 규정)과 ‘포괄주의 과세’(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더라도 편법과 유사한 증여 또는 상속 행위 발생시 과세하는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했다. 박 회장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부터 박 회장의 증여세 부분에 대한 세무조사를 착수해 편법증여 수법을 동원했다고 판단, 380억원 상당의 과세를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태영씨에게 직접 지분을 증여하지 않았어도 실질적으로 태영씨에게 넘겼다고 보고 이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절묘한 절세? 명백한 편법?

국세청은 지난해 10월부터 대기업 계열사들에 대한 주식거래를 조사해왔다. 정상적인 상속·증여세를 부담하지 않고 2·3세에게 지분을 넘겨준 혐의가 있는 대기업 오너들의 증여세 포탈 여부가 그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박 회장 외에도 증여세 포탈 혐의가 포착돼 수십∼수백억원대의 세금이 부과될 예정인 오너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 한 소식통은 “재벌가의 편법 상속·증여 행태가 교묘해지고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면서 국세청의 과세 기준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그동안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부족을 대기업 주식이동 조사를 통해 확보하려 눈에 불을 켜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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