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대기업 러시’거물급 관료 리스트

2010.03.09 09:25:26 호수 0호

‘주총의 계절’잠깬 개구리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결심한 고위 공직자들의 이탈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거물급 관료 출신 인사들의 대기업 러시가 노골화되고 있다. ‘주총의 계절’을 맞아 대기업들도 고위 공무원 수혈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검찰, 국세청, 감사원, 공정위, 금감원 등 재계와 살이 맞닿아 있는 부처 출신 인사가 영입 1순위다. 대기업에 안착한 거물들과 이들에게 러브콜을 보낸 대기업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고위직 출신 인사들 사외이사 등 기업행 줄이어
공정위, 금감원 등 해당업계 담당부처 영입 1순위


각 기업들의 올해 주총 이슈는 이사 감축이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이사회 규모를 줄이고 있다.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3∼4명까지 전체 사내·사외이사 수를 축소했다. 사외이사로 쓸 만한 사람을 구하기 어렵거나,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란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전체 이사수 줄이고
고위 퇴직자 그대로



그러나 이 와중에도 거물급 관료들의 ‘대기업 러시’가 줄을 잇고 있다. 대기업 역시 경·검찰, 국세청, 감사원, 공정위, 금감원 등 고위직 ‘수혈’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별로 경찰청 고위 퇴직자를 영입했거나 추진 중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 이영화 전 대전지방경찰청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경찰 재직 당시 보안(대북 담당), 경무, 공보 등의 업무를 담당한 이 전 청장은 울산경찰청 차장과 서울경찰청 경무부장, 대전경찰청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에스원도 오는 19일 주총에서 조용연 전 충남지방청장을 감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조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 교통지도부 부장, 경찰청 보안국장, 충남경찰청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울산경찰청장 등을 지냈다. LG그룹은 지난 1월 텔레콤과 데이콤, 파워콤 등 통신 3사의 통합법인인 ‘LG텔레콤’을 출범하면서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 장관을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에 앉혔다.

이 전 장관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LG텔레콤의 경쟁사인 KTF 사장으로, 2001∼2002년엔 KT 사장으로 재임했으며 이후 2002년 정통부 장관을 거쳐 2004년 코오롱그룹 상임고문, 2005년부터는 광운대 총장을 지냈다. 현대차그룹은 임영록 전 재정경제부 제2차관을 신규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임 전 차관은 금융실명제 실시단 파견,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국고국장, 금융정책국장, 재경부 차관보, 제2차관 등을 역임한 ‘금융통’이다.

SK그룹은 고위 금융 관료 출신 남상덕 중앙대 객원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남 교수는 재무부 재무정책국 과장과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 대통령 금융비서관, 한국은행 감사 등을 역임한 금융계 거물이다. SK그룹 계열사인 SK에너지도 사외이사로 장관 출신인 김영주 법무법인 세종 고문을 선임했다. 김 고문은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수석,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또 국세청 조사국장과 국세심판원장 등을 지낸 최명해 법무법인 김앤장 고문을 감사위원으로 임명했다. 두산그룹은 국제금융 전문가 문홍성 전 기획재정부 국장을 전무로 스카우트했다. 그룹의 글로벌 전략업무를 담당하는 문 전 국장은 옛 재정경제부에서 국제기구과장, 금융협력과장, 외화자금과장을 역임했고 청와대 국책과제비서실 행정관을 지내는 등 국제금융 정책 관련 부서를 두루 경험했다.

웅진그룹은 이주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그룹 총괄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그룹의 재무, 인사관리를 총괄하며 계열사 간 기획조정, 윤리경영 등의 업무를 맡은 이 전 청장은 국세청 사무관으로 시작해 부산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국세청장 등을 거쳤다. STX그룹은 신철식 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을 미래전략위원회 위원장으로 데려왔다. 미래전략위원회는 ㈜STX 산하에서 그룹의 핵심역량과 조직·인사를 혁신하는 조직이다.

신 전 차장은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고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아들로, 선친이 물려준 삼성전자 주식 덕분에 지난 2006년 행정부 1급 중 재산총액 1위를 기록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STX그룹은 고위 공무원 출신인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STX그룹 에너지부문 회장으로, 이병호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을 ㈜STX 무역·사업부문 사장으로 각각 영입한 바 있다.

KT는 고위 관료 출신 2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낙점했다. 송종환 명지대 교수와 정해방 건국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송 교수는 주UN대표부 정무공사와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를 역임한 해외분야 전문가다. 정 교수는 경제기획원과 기획예산처 등 예산 관련 정부 요직을 거쳐 제6대 기획예산처 차관을 역임한 정통 재경관료 출신이다.

기업-정 관계 중간다리 역할
방패막이·로비용 전락 지적


이외에 ▲현대중공업은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등을 지낸 송정훈씨를 ▲KCC는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권오승씨를 ▲KT&G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지승림씨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 위원인 김득휘씨를 ▲신세계건설은 감사원 감사교육원장을 지낸 김재선씨를 ▲한화손해보험은 금감원 소비자보호센터 국장을 지낸 이성조씨를 ▲세방은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을 지낸 김용재씨를 각각 영입했다.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들이 대거 교체된 우리금융지주, KB국민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금융권도 대부분 ‘거물급 사외이사 모시기’에 성공했다. 벤처기업인 엔씨소프트의 경우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오명 건국대 총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해 눈길을 끌었다. 대기업들은 고위직 출신이 아닌 실무진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국세청에서 무더기로 빠져나간 인사들이 가장 눈에 띈다. 재계에 국세청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기 위한 스카우트전이 과열되고 있는 것. 세무서장급 이상 20여명 가량이 지난 연말 명예퇴직을 한 가운데 이들을 잡기 위해 기업 관계자들이 물밑에서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기업들은 이들의 주요 경력이나 조직 내에서의 평판, 인맥 등을 평가해 입맛에 맞는 ‘타깃’을 선별하고 있다.

국정원 출신 인사도 인기다. 기업들의 채용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국가 수사·정보 전문가도 대기업 사이에서 영입 1순위로 꼽히지만 국정원 출신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기업에 영입된 국정원 출신 인사들의 임무는 주로 정보수집을 통한 대관업무다. 기업은 이들의 ‘정보력’을 활용한다. 기업에게 국정원 인사들은 ‘정보 갈증’을 해소해 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각종 근거 없는 소문이 쏟아지면서 기업들은 다양한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다”며 “‘정보 안테나’를 풀가동해야 하는 대기업 입장에선 정보통 만한 스카우트 대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공직자 출신, 특히 고위직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속내가 뭘까.

사외이사 제도 10년째
내부견제 시스템 미흡

사외이사는 회사의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이사 외에 외부 전문가들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는 제도다. 경영진에 속하지 않지만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 결정과 대표이사 선출, 업무집행 감시 등을 맡는다. 그만큼 회사 내 막강한 파워도 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사는 총 이사수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1000억원 미만인 기업은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는 1998년 사외이사를 처음 도입, 의무화하고 있다. 초창기만 해도 주로 학계, 시민단체 등의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그러나 갈수록 정·관계, 법조계 출신들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경제부처 출신 인사들은 기업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외이사 후보군이다. 모기업 임원은 “국세청, 감사원 등 전직 관료들의 사외이사 영입은 회사의 투명·윤리경영 원칙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라며 “관료 출신 사외이사를 새로 영입해 한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를 경영에 활용하는 등 기업환경 변화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보험용’내지 ‘로비용’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기업과 정관계 고위층을 연결하는 ‘중간다리’란 오명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이유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들의 사외이사 성향과 출신을 분석한 결과 지배주주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거나 정·관계 출신인 인사가 무려 20% 수준이었다.

현장형 실무진도 인기
스카우트 경쟁 치열


시민단체들은 기업이 ‘힘 있는’사외이사를 영입하는 이유에 대해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동시에 ‘전관예우’효과를 볼 심산이라고 잘라 말한다. 기업마다 경영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내부견제시스템 수준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기업들은 해당 업종에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을 꼭 한명씩 사외이사나 감사로 영입하고 있다”며 “전직 관료들은 대기업 고문, 사외이사 등으로 재취업해 사실상 대정부 창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사외이사 제도는 독립적인 인사들의 선임과 적극적인 이사회 참여가 이뤄질 때 효율성을 발휘한다”며 “그러나 현실은 지배주주 및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사외이사들이 선임되고 있어 이들에게 경영진에 대한 견제·감시 기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선임 방법을 엄격히 하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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