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사이에 ‘세종시 피로감’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가운데 수정안 논란은 그야말로 끝이 없다. 자르면 다시 자라는 도마뱀 꼬리와 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이슈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종시 정국’은 또 다른 이슈를 끄집어내고 있다. 개헌·국민투표다. 수정안 논란이 매번 변화를 거듭하며 카멜레온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처음에는 백지화가 이슈가 되더니 다음 정운찬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이슈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국민투표와 지방선거 연계, 개헌으로 이어지는 등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국에서 주도권을 갖고 모든 이슈들을 확대·재생산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세종시 피로감’ 막고 국정 주도권 강화
개헌카드, 박근혜 집권해도 퇴임 후 보장
‘세종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구사되고 있다. 아울러 돌연변이 이슈들이 속속 탄생하며 이른바 친이계와 친박계의 피 말리는 두뇌싸움도 접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친이계들은 취임 2주년 전후로 일제히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이제 남은 과제는 선거법을 개혁하고 행정구역 개편을 한다든지, 또 제한적이지만 헌법에 손을 대는 과제가 있다”고 개헌을 언급하면서 “한나라당이 중심이 돼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개헌을 성공시키라는 특명을 내렸다.
‘개헌카드’ 내민 MB
현재권력이 미래권력 나눠먹기
이에 ‘2인자’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도 “정치개혁이라고 하면 헌법에서부터, 개헌부터 시작해서 정당선거, 이 모든 게 다 정치개혁에 들어가지 않겠나”라며 “금년 연말까지는 해야 된다”고 거들고 나섰다.
정몽준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에 제출된 국회선진화 법안의 통과부터 선거제도의 개선, 공천제도의 개선,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개헌논의 등 많은 정치개혁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며 “우리가 이 같은 정치개혁과제들을 제대로 완수해내면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길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힘을 보탰다.
당·정·청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개헌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마치 각본대로 움직이는 듯하다.
‘개헌카드’를 꺼낸 속내는 무엇일까. 정가는 ‘박근혜 전 대표를 배제하기 위한 책략이다’ ‘정권재창출을 위한 카드다’ ‘지방선거용 세종시 출구전략이다’ 등 다양한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된 연유는 MB식 개헌 때문이다. MB식 개헌은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의 힘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개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부터 줄곧 개헌을 주장해 온 이유가 ‘차기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가의 ‘해석’인 셈이다.
MB식 개헌 방향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내각 구성권을 가지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원집정부제’다. 더 나아가서는 ‘준 내각제’로 박근혜 대통령 체제에서도 MB를 포함한 친이계가 어느 정도 머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녹아 있다는 것.
이에 MB의 개헌 발언 하루 뒤인 26일 친이계 의원모임 ‘함께 내일로’의 대표 안경률 의원은 개헌론과 관련해 “이원집정부적인 형태를 한 번 거쳐서 내각제로 가는 게 좋지 않겠나”고 말했다.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도 내각제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했었다.
반면, 박 전 대표측은 개헌과 관련 ‘4년 중임제’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4년 중임제는 잘하면 ‘8년 대통령’까지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쪽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MB의 개헌 카드는 ‘세종시 전쟁’에 이은 박 전 대표에 대한 2차 전쟁, 즉 ‘개헌 전쟁’ 선포라는 것.
즉, 세종시 수정안 밀어붙이기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전쟁 속에, 개헌 카드는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나눠먹기 위한 전쟁이라는 해석이다.
‘개헌 카드’와 더불어 세종시 정국은 ‘국민투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친이계 강경파가 국민투표를 제안하면서 이 대통령이 ‘간보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여러 차례 의총과 친박 설득 작업에 들어갔지만, 그야말로 퇴로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수정안은 친박계와 야당들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통과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세종시 해법,
‘국민투표 밖에 없다’
친이계는 현재 수정안에 대해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쪽과 ‘하루 빨리 마무리 져야한다’는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이견 대립이 있다는 것.
이에 친이계 한 핵심의원은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국민투표 주장은) 친이계 전체의 뜻은 절대 아니다”라며 “3월까지 당론을 모아 늦어도 4월 임시국회에서 수정안을 처리하는 게 정상해법이고 중진체 모임도 이런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쪽이(친박계) 워낙 이야기가 통하지 않으니깐,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국민투표) 얘기가 나왔겠느냐, 하지만 그쪽에서(친박계) 계속해서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도리가 없다”고 했다.
앞서 세종시 국민투표 주장은 지난해 11월 친이계 중진인 공성진 최고위원이 제기한 적이 있다. 3개월 만에 다시 이 카드가 나온 것은 그동안 숱한 논란에도 당시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이런 와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민투표’가 세종시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YS는 지난 3일 정운찬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세종시 문제 해결은)국민투표 밖에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시에 대한 YS의 ‘국민투표’ 훈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세종국가전략조찬포럼’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자고나면 세종시 문제로 떠드는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되고, 빨리 종결해야 한다”고 말하며 국민투표에 힘을 실었다.
이 같은 언급은 이 대통령이 세종시와 관련해 ‘국민투표’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한 직후 나온 발언이라 더욱 주목된다.
MB가 ‘국민투표’론을 들고 나온 속내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다목적 카드라는 것이다. 친박계와 야당에 대한 일종의 압박전술이면서 동시에 여론몰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수정안 지지율이 점차 빠지면서 수정안을 이끌어나갈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국민들에게는 ‘세종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국민들은 친이·친박계의 대립구조에 대해 상당한 실망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새로운 이슈나 논란을 부상시켜야 한다는 것. 이른바 ‘세종 노이즈 마케팅’이다.
국민투표 속내는
수도권 민심 확보 전략
이와 관련해 한 정치전문기자는 “MB가 세종시 문제 해결을 위해 결국 쓸 만한 카드는 ‘국민투표’와 ‘개헌’”이라며 “특히 국민투표는 여러 정파의 이해관계가 뒤섞여져 위험성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국민투표가 MB 중간평가가 될 수 있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고, 성공하면 수정안 관철을 이루어낼 수 있다. 어찌됐든 MB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국주도권을 계속해서 쥐고 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MB와 친이계는 국민투표를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실히 얻은 후 대선을 잡겠다는 전략이다”며 “이미 박 전 대표에게는 TK라는 기득권이 있고 민주당은 전라도라는 기득권을 갖고 있다. 선진당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MB가 차지할 수 있는 부분은 수도권이다. 각 지역별 맹주가 있는 가운데 MB와 친이계가 퇴임 후 보장 차원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수도권의 기득권을 차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MB는 국민투표를 강력 추진할 것이고 그에 따르는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고 풀이했다.
그는 또 “MB는 세종시 주도권을 계속 잃지 않고 국민투표와 개헌카드를 가지고 주도권을 잡고 갈 것이다”며 “또한 4대강 사업추진과 경제살리기, 남북정상회담, G20 정상회의까지 집권 3년차의 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겠다는 속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