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미리 내는 남자 김기성 미리내운동본부 사무국장

2014.09.04 11:49:52 호수 0호

“나눔엔 성수기가 따로 없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두 그릇 값을 계산한다. 먹지 않은 나머지 한 그릇의 가격은 가게에 적립돼 불특정 다수에게 돌아간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뒷사람을 위해서 만든 나눔 문화다. 미리내 가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인 것이다. 이를 전파하느라 쉴 새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기성 미리내운동본부 사무국장이다. 그에게 미리내 운동 이야기를 들어봤다.

 


100여년 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맡겨놓은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이 한국에서 ‘미리내 운동’으로 재탄생했다. 배고픈 이웃을 위해 음식이나 음료 값 등을 미리 지불하는 나눔의 가치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미리내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중이다.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곳곳에 싹트고 있다.
 
생활밀착형 기부문화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미리내운동본부를 찾았다. 김기성 미리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매우 바빴다. 그의 전화 벨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미리내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됐다. 본부 내 상주 인력은 얼마 없었지만 열정만큼은 한 가득이었다.
 
“나눔 플랫폼 전문 서비스 업체에서 ‘기부톡’이란 앱을 개발했었어요. 기부톡은 전화 이용자가 통화를 종료한 후 여러 기부 프로젝트 중 하나를 선택해 기금을 모으는 기부 플랫폼이었죠. 통화가 끝나면 자동으로 기부톡이 실행돼요. 이때 여러 개의 모금 화면 중 하나를 선택해 각 후원 단체에 기금을 전달하는 시스템이었죠. 그런데 기부톡을 활성화시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모델을 고민하던 찰나, 이탈리아의 ‘맡겨놓은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을 접하고 나눔 운동이 가게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리내 운동까지 이르게 됐어요.”
 
미리내 운동의 목적은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소비자와 함께 생활 속 나눔실천운동을 전개해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미리내 운동은 비영리단체로 이제 막 1년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내에 280여개, 해외에 3개 미리내 가게가 생기는 등 가파른 상승 곡선을 나타내고 있다. 향후 5년 간 목표는 국내 1만점, 해외 500점이다.
 

“미리내 가게 신청이 들어오면 우선 가게 주인의 의지를 확인한 뒤 직접 가게를 방문해 간단한 행사를 시작으로 관계를 맺어요. 지방의 경우 재방문이 쉽지 않기 때문에 방문이 갖는 의미가 커요.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부톡과 함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등 여러 개의 채널을 유지하며 미리내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고 있어요. 미리내가게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고요.”
 
“미리내 운동은 공동체 보험”
밥 굶는 뒷손님 비용 부담
따뜻한 사회 만드는 데 일조
 
미리내 운동은 미국 탐스 슈즈와 비슷한 모델이기도 하다. 탐스 슈즈는 신발 두 개의 가격을 지불하고 하나를 사면 나머지 하나는 어려운 아이들에게 간다. 작년엔 1000만 켤레가 판매됐다. 나눔 마케팅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미니래 운동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사무국장은 “내는 사람이 있으면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피드백을 강조했다.
 
“미리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드백이에요. 미리 낸 기록이 활발한 가게는 기본적인 신뢰가 쌓여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요. 시흥의 한 국수집의 경우 1600그릇이 적립됐어요. 심지어 부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 2그릇의 국수 값을 낸 고등학생도 있었죠. 요즘엔 아이들의 참여율이 높아요. 미리 내고 인증샷을 찍어 미리내 SNS에 올리는 일이 부쩍 늘었어요. 가게 주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더 힘을 내죠.”
 
“아저씨 이거 뭐에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슈퍼에 놓여 있는 모금함을 발견한 아이의 질문에 가게 주인은 미리내 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과자를 사고 남은 동전을 모금함에 넣었다. 가게 주인은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미리내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이처럼 신선한 충격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사람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지만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 같은 현상을 높이 평가했다.
 
“송파구 세모녀 자살 사건 이후 서울시가 저희에게 의견을 구한 적이 있어요. 당시 미리내 가게 주인들에게 일종의 지역 정보원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어요. 미리내 운동이 지역 내 징검다리 역할을 해 식사 한 끼를 통해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거죠. 이 운동은 일종의 사회사업이기도 해요.”
 
김 사무국장은 미리내 가게를 ‘소셜스토어(Social Store)’라고 정의한다. 동시에 ‘소셜 인슈어런스(Social Insurance)’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리내 운동이 공동체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과제다.
 

“사실 미리내 운동은 민간이 스스로 준비하는 보험이나 다름없어요. 누구나 가난해질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타인을 위해 돈을 미리 낼 수 있어도, 나중엔 타인이 미리 낸 돈으로 밥을 먹게 될 수도 있는 거죠. 건강한 사람이 보험료의 혜택을 바로 받지는 못해도 보험료를 내는 동안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잖아요.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에요.”
 
더불어 사는 가치
 
연말이면 특히 연탄과 함께 나눔을 강조한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들은 겨울에만 어려운 게 아니다. 겨울에 연탄이 필요하다면 여름엔 선풍기가 필요하다. 나눔엔 성수기가 없다는 뜻이다. 김 사무국장은 4계절 내내 나눔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옆집에서 비극이 일어나도 시체 썩은 냄새가 나기 전까진 모르는 게 오늘의 현실이에요. 경제적 양극화 문제, 고령화 사회 진입 등 갖은 사회문제로 사회적 약자가 꾸준히 양산되고 있어요. 미리내 운동이 지속성을 갖고 나아가면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이 차츰 해결될 거라고 믿어요.”
 
 
<khlee@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