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롯데·한화그룹 가족 묘지도 파헤쳐
재벌그룹 일가의 묘지를 파헤친 도굴범이 검거됐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최근 고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묘지를 도굴해 유골을 훔친 혐의(분묘발굴 및 사체 등 영득)로 A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경북 포항시 청하면 서정리에 있는 이 창업주의 묘지를 파헤쳐 유골 일부를 훔친 뒤 그룹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골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현금 10억원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이 창업자 묘를 파헤쳐 유골 머리 부분을 훔쳤다. A씨는 다음 날 오전 태광그룹 본사로 전화를 걸어 “10억원 주면 유골을 돌려주겠다”며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태광그룹 측은 A씨의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이후에도 수차례 전화를 했으나 자신의 용건만 말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는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A씨는 자신의 아들 명의로 된 휴대전화를 이용해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협박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찰은 A씨의 렌터카와 휴대전화, CCTV 등을 추적해 28일 오후 2시쯤 대전시 동구 용은동 주공아파트 주변에서 A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범행 과정과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며 “그의 진술과 CCTV 정황 등을 바탕으로 일단 단독범행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A씨는 과거 롯데그룹 일가와 한화그룹 일가의 묘를 도굴한 범인과 동일인으로 확인됐다. A씨는 1999년 3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충골산에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부친 묘지를 도굴, 시신의 일부를 가져간 뒤 회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유골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8억원을 요구하다 붙잡혔다.
2003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출소한 A씨는 다시 생활이 어렵게 되자 2004년 10월 충남 공주에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조부모 묘를 파헤치고 두개골과 팔, 엉덩이 부위 뼈 등을 도굴한 뒤 한화그룹 본사 비서실로 협박전화를 걸었다.
당시 A씨는 김 회장이 출장 중이라 특정 금액을 요구하지 못했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 A씨는 이번에 또 출소하자마자 태광그룹 일가의 묘를 도굴한 것이다.
경찰 “이번 범행 수법이 지난 1999년과 2004년 롯데·한화그룹 가족묘지 도굴사건과 유사해 당시 범인으로 검거됐던 A씨 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해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