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스페인 도예 거장 조안 자세르(Joan Llacer)

2014.05.12 12:17:29 호수 0호

"관객들이 '철'이냐 물으면 웃으면서 '흙'이라 답하죠"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스페인 도예의 거장 조안 자세르(Joan Llacer)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태초의 신비를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자세르의 작품은 독특한 조형미와 뛰어난 예술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현지 일정상 한국을 찾지 못한 자세르를 대신해 자세르의 부인이자 조력자인 박정연(조각가)씨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일요일(11일) 막을 내린 서울오픈아트페어(SOAF)에는 수백여점의 미술품이 전시돼 관객의 눈을 매료시켰다. SOAF에 설치된 수많은 부스 중 갤러리 라메르(LA MER)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4인의 작가를 초대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전시장 벽면에 걸린 모던한 회화들과 배치된 앤티크(Antique)한 조각들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Aura)로 공간을 압도했다. 유일한 외국 작가인 조안 자세르의 작품이었다.

40년을 헌신

자세르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파일럿을 꿈꿨던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 다른 인생의 항로를 개척해야 했다. 예술가. 그것은 어쩌면 자세르의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날 태어난 그는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40여년을 열정적인 작품 활동에 헌신했다.

"저(박정연)한테는 좀 무뚝뚝하지만 정말 순진하고 엉뚱한 구석이 있어요. 그이는 마드리드 대학(스페인 국립 세라믹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학생들과 전시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제자들 중 한 명이 흥이 나니까 의자를 퍼커션 삼아 리듬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러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는데 거기에 꽂혔는지 다음날 자세르가 학교로 악기를 들고 가서 음악회를 해보자고 한 거예요.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진짜로 하더라고요. 아마 예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세상 누구보다 열정적일 거예요."

자세르는 세라믹 공장을 운영했던 부친 덕에 어릴 때부터 흙과 친했다. 학교에 다니게 될 무렵에는 호기심이 많아 무엇이든 흙으로 빚어 가마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마의 뜨거운 열을 견디지 못한 초기작들은 형태를 잃고 새하얀 재가 되었다. 이런 유년기의 경험들은 자세르가 자연스럽게 열을 다루도록 하는 토대가 됐다. 흙으로 제 아무리 완벽한 조형을 빚더라도 열을 담아내지 못하면 온전한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한국서 앤티크한 세라믹 작품들 선보여
독특한 조형미 뛰어난 예술성으로 호평
중·고대유물 가까운 원시적 질감 특징

 "자세르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이것이 '철'이냐고 물어요. 그러면 자세르는 웃으면서 '흙'이라고 답한답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만 봐도 두들겨보면 맑은 소리가 들려요. 조형의 두께나 밀도, 성분, 그리고 가마 안의 온도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만 가능한 일이죠. 사실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도예가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요. 하지만 자세르 본인은 자신을 조각가라고 생각해요. 자세르의 작품은 생활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미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업의 산물이거든요."

자세르의 작품은 고대유물에 가까운 원시적인 질감이 특징이다. 세라믹을 기반으로 한 항아리나 병, 그릇의 형태를 띤 '토기'들은 시공을 넘나드는 아름다움을 발한다. 또 자연미라는 표현만으로 수식이 부족한 그의 작품에는 창연한 색상과 형언할 수 없는 깊이가 담겨 있다.

"갓 구운 토기에 톱밥을 묻히면 검은 연기가 나는데요. 자세르의 작품 중에서는 그 연기를 그을려 색을 만든 작품들이 있어요. 유약 같은 경우에도 본인이 만족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굽는답니다. 보통 한 작품에 수많은 색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대부분 열 조절로 내는 색들이에요. 작품에 따라 온도를 달리하는 거죠. 하지만 자세르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용납하지 않아요. 그는 세계에 완벽한 건 없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오로지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이 예술가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답니다."

만족할 때까지

일견 투박해 보이는 그의 작업은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담고 있다. 자세르는 조형 일부분에 균열을 주거나 때로는 힘을 가해 변형하는 수법으로 '손의 감각'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태곳적 순수에 가까웠던 인간. 그 인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유산은 오늘날 자세르의 손을 빌려 인간보다 더 따뜻한 온정을 관객에게 상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ngeli@ilyosisa.co.kr>

 

[조안 자세르는?]

▲Escuela Oficial de Ceramica(Madrid, Espana)
▲Escuela Madrilena de Ceramica de la Moncloa(Madrid, Espana)
▲이탈리아·일본·영국·프랑스·미국·루마니아·UAE·중국 등 국내외 개인전 다수
▲마드리드 시청·궁·시립미술관, 발렌시아 세라믹박물관, 빌바오 공항, 주스페인 이스라엘 대사관 등 국내(스페인) 작품소장 다수
▲그리스 Salonica 현대미술박물관, 독일 Karlsmuger Mounck 궁 등 해외 작품소장 다수
▲뉴욕 세계예술대회 명예학위(1988), 스페인 바르셀로나 파인아트 명예학위(1983) 등 수상 다수
▲현 마드리드 국립 세라믹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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