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금기어로 본 재벌가 비사 -귀뚜라미 ‘2인자 트라우마’

2014.04.21 12:00:42 호수 0호

회장 vs 전 사장 ‘밥그릇 싸움’

[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재벌가 혼맥, 대박 브랜드 비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기업 내부거래 등을 시사지 최초로 연속 기획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새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직원들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금기어'를 통해 기업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기업으로선 숨기고픈 비밀, 이번엔 귀뚜라미의 '2인자 트라우마'편이다.




보일러로 유명한 귀뚜라미 사내는 요즘 한 소송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직원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소송은 중소기업과의 기술유출 공방. 이 소송이 화제인 이유는 오너와 전 사장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져서다.

사사건건 딴죽

'골리앗' 귀뚜라미와 한판 붙은 '다윗'은 규원테크다. 그 악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규원 규원테크 사장은 귀뚜라미 출신이다. 1989년 로켓트보일러(현 귀뚜라미보일러) 기술연구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품질관리팀장과 공장장 등을 거쳐 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2007년엔 그룹총괄사장으로 선임돼 귀뚜라미보일러 난방사업, 귀뚜라미홈시스 유통·인테리어사업, 귀뚜라미범양냉방 냉방사업을 총괄했다.

당시 김 사장은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귀뚜라미그룹 제2의 창업을 이끌어갈 최고경영자로 평가받았다. 그만큼 최진민 명예회장의 신임도 두터웠다.


문제는 김 사장이 돌연 회사를 그만둔 2010년 이후다. 이때부터 김 사장과 귀뚜라미는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원수지간이 됐다.

먼저 퇴사를 두고 맞섰다. 김 사장은 "퇴직금도 지급되지 않은 일방적인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일축했다. "중국 법인에서 분식회계와 공금횡령 사건이 터졌는데, 여기에 김 사장이 연루돼 사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최 명예회장은 김 사장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가 이 사건 직전 복귀했다.

재기에 나선 김 사장은 그해 7월 자신의 이름을 딴 규원테크를 설립했다. 신재생보일러 전문회사인 규원테크는 가스보일러를 비롯해 펠릿보일러, 화목보일러, 하이브리드보일러 등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특히 고효율의 펠릿보일러가 잘 팔렸다.

산림청 보급사업 등록업체 중 최고효율 인증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다. 규원테크는 이 제품을 내세워 창업 2년도 안돼 매출 20억원을 올리는 등 자리를 잡았다. 김 사장은 "22년간 보일러업계에 몸담았던 노하우를 집약해 만들어냈다"고 자신했다.

잘나가는 김 사장을 보고 배가 아팠을까. 귀뚜라미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2010년 7월 중국법인 천진귀뚜라미보일러유한공사를 통해 김 사장을 상대로 분식회계와 공금횡령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곧바로 소를 취하하고 김 사장과 손을 잡았다. 귀뚜라미는 계열사 편입 등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한 규원테크에 투자하기로 했지만 말뿐이었다.

중소기업과 기술유출 공방 "뒷말 무성"
이상한 트집잡기 지적…잇단 패소 망신

급기야 김 사장에게 경영을 맡긴 귀뚜라미그린에너지가 삐걱거리자 사단이 났다. 귀뚜라미는 2010년 10월 자본금 3억5000만원을 들여 귀뚜라미그린에너지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자리에 김 사장을 앉혔다.

이도 잠시. 5개월 뒤인 2011년 3월 귀뚜라미 이사회는 "부채가 늘어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며 법인 해산을 의결했다. 이어 김 사장이 경업금지·비밀유지 의무를 어기는 등 대표이사 업무에 소홀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또 다시 김 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김 사장을 향한 귀뚜라미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규원테크에 따르면 귀뚜라미는 전국 산하 대리점에 '규원테크 제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할 경우 대리점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지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규원테크와 거래하던 업체들에 관계 청산을 요구하는 시그널도 보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원테크가 승승장구하자 귀뚜라미는 칼을 뽑아들었다. 2012년 3월 "영업비밀과 기술유출이 의심된다"며 김 사장을 경찰에 고소한 것. 규원테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선 경찰은 김 사장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고, 김 사장은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가까스로 철창행을 면했다.

김 사장은 풀려났지만 기술유출을 둘러싼 공방은 계속됐다. 양측이 치열한 설전을 주고받는 사이 소송은 어느새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결과는 김 사장 쪽으로 기운 모양새다.

고등법원은 최근 손해배상과 위약금 청구소송에서 김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고등법원 제1민사부는 "귀뚜라미그린에너지가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게 된 것은 귀뚜라미가 약정 의무를 먼저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진행된 귀뚜라미그린에너지가 제기한 손배 사건도 마찬가지다. 대구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원고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귀뚜라미가 먼저 약속을 어겼다"고 판결했다. 귀뚜라미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귀뚜라미는 하이브리드보일러 등 규원테크의 기술 6건에 대해 특허 침해 명목으로 특허심판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이 결과 역시 다르지 않았다. 특허심판원은 지난달 "귀뚜라미가 특허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현실성이 없다. 하이브리드 타입 보일러는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가신의 배신?

귀뚜라미와 규원테크 간 소송은 단순히 밥그릇 싸움이 아닐 것이란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최 명예회장과 김 사장의 갈등이 질긴 악연의 씨앗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다시 보일러 신화에 도전한 김 사장. 이를 막으려는 최 명예회장.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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