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재벌기업 몸집 줄이는 노림수

2014.04.21 11:48:04 호수 0호

IMF 이후 최대 새판짜기 “이유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계열사를 합치고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저마다 군살 빼기에 한창이다. 당사자들은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체질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숨겨진 목적이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같은 듯 다른 구조조정 속살을 <일요시사>가 들여다 봤다.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계열사를 합치고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군살 빼기 경쟁에 돌입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대 규모의 '새판짜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 바람은 재계 맏형 삼성그룹으로부터 불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9월 제일모직의 직물·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로 이관하고 삼성SNS를 삼성SDS와 합병시켰다. 10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삼성코닝정밀소재 보유 지분 전량을 미국 토닝에 매각했다. 11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영위하던 건물관리업을 삼성에스원에 양도했고 급식업은 삼성웰스토리를 신설해 분리했다. 12월 삼성생명은 비금융계열인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을 취득했다.

삼성 발 구조조정
재계 전방위 확산

지난달 31일에는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을 전격 발표했고 이틀 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했다. 삼성증권과 삼성생명도 구조조정을 공식화했다. 주력계열사인 삼성중공업은 수익성 악화 등의 이유로 조만간 조직통폐합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건설 부문도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덩치가 가장 커진 건 삼성SDI다.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자산규모 15조원, 시가총액 10조원, 직원 1만4000여명 규모의 거대 계열사로 재탄생했다.


삼성그룹은 구조조정의 이유로 "실적이 떨어지는 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며 "미래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기 위함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삼성그룹의 입장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3세 승계구도 정리에 목적이 있다는 것. '이재용 몰아주기'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애초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과 건설, 화학을,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이 패션과 광고를 맡는 방식으로 분할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 구조조정으로 삼성SDI의 영향력이 화학 계열사로까지 확대되면서 예상 구도가 깨졌다.

삼성SDI는 제일모직과 합병을 마치게 되면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제일모직이 이들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계열의 정점에 서있는 삼성SDI가 화학 계열사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밝힌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 방식은 삼성종합화학이 신주를 발행해 삼성석유화학 주식과 1대 2.1331의 비율로 교환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합병을 완료한 삼성종합화학의 지분구조는 삼성물산 36.99%, 삼성테크원 22.56%, 삼성SDI 9.08%, 삼성전기 8.97%, 삼성전자 5.25%, 이부진 사장 4.91% 순이 된다.

계열사 정리 직원들 희망퇴직 '군살 빼기'
"살아남기 구조조정"…숨겨진 진짜 목적은?

삼성SDI는 합병 후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인 삼성물산 지분 7.18%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을 제외하면 삼성SDI다. 여기에 제일모직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13.1%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와 건설 계열사가 삼성SDI 아래에 모이게 됐다는 얘기가 된다.

삼성SDI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지분 0.57%를 보유, 이부진 부회장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삼성그룹이 '이재용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2위 현대차그룹도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는 지난해 10월 현대하이스코의 냉연강판 부문을 현대제철로 넘기기로 했다. 이전까지 현대차그룹의 열연 공정은 현대제철에서, 냉연 공정은 현대하이스코에서 나눠 맡아왔다.

냉연 공정이 현대제철로 넘어감으로써 현대차그룹의 철강 업무가 한 곳으로 모인 것이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새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지난 1일에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 통합법인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출범했다. 기존 엔지니어링의 플랜트 사업과 엠코의 건축·토목 사업이 합쳐지며 종합건설사로 재탄생한 것. 그룹 측은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에 대해 "일관제철 사업의 경영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게 목표"라고 밝혔으며 엠코와 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전 세계 플랜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제철과 하이스코 합병을 통해 '현대모비스(20.78%)→현대자동차(33.88%)→기아자동차(21.29%)→현대제철(5.66%)→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7%를 보유해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번 합병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수혜자는 정의선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합병 전 현대엠코의 지분 25.06%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현대엠코의 지분 34.86%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도 31.88%를 갖고 있다. 합병 전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72.55%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던 현대건설은 합병법인의 지분 38.62%를 보유하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하며 정 부회장은 11.72% 보유해 2대 주주가 된다.

3대 주주는 현대글로비스로 11.67%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현대글로비스를 장악하고 있는 정 부회장이 사실상 현대엔지니어링 최대주주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현대엔지니어링은 그룹 승계를 위한 자금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 승계
열쇠는 삼성물산

최근 정의선 부회장이 '실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도 현대차그룹에서 승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노션에 보유하고 있던 지분 40%를 모건스탠리PE와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으로 현대차그룹의 지분율이 80%에서 40%로 떨어지면서 지배력이 줄었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4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마련하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 따르면 경영 승계를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취득이 가장 필요하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등 4개 핵심 계열사 가운데 기아차 지분 1.74%만 보유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노릴 수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기아차가 보유하고 있는 16.86%다. 현대모비스 주식가치는 지난 17일 기준 1주당 30만800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6.86%(1642만7074주)를 확보하려면 약 5조600억원이 필요하다.

물론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물려받는 형태로도 경영권 승계는 가능하다. 하지만 증여세가 문제다. 정몽구 회장은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 6.96%(677만8966주·약 2조원), 현대자동차 지분 5.17%(1139만5859주·약 2조7000억원), 현대제철 지분 11.84%(1380만5299주·약 9600억원)를 가지고 있다. 현행법상 증여세는 약 50%. 모든 지분을 물려받는다고 가정하면 2조8000억원 수준이 든다.

정의선 실탄 확보
이노션, 정성이에?


정의선 부회장이 이노션 지분을 매각함에 따라 정몽구 회장의 장녀 정성이 고문에 대한 경영 승계도 윤곽이 잡혔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기존 이노션 지분구조를 보면 정의선 부회장과 정성이 고문이 각각 40%를, 정몽구 회장이 20%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정몽구 회장은 보유지분 20%를 '현대차 정몽구 재단'에 기탁했고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 중 정성이 고문만이 유일하게 이노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이에 따라 업계는 삼성그룹의 제일기획처럼 이노션도 딸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1인 오너기업이 사업구조 재편을 통한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KT와 포스코 같이 신임 수장을 맡은 기업들은 전임자 '색채지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8일 KT는 노사 합의에 따라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명예퇴직 대상자는 약 2만3000여명, 70% 정도가 해당된다. 앞서 황창규 KT 회장은 취임 직후 조직개편을 통해 전체 임원수를 30% 가량 줄이고, 임원급 직책 규모를 50% 이상 축소했다. 기존에 20개에 달하던 사업부문은 9개로 축소·개편했다.

KT가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하기로 한 것은 경쟁사에 비해 무거운 인력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KT 관계자도 "회사가 경영 전반에 걸쳐 위기상황에 처함에 따라 직원들이 고용불안 및 근무여건 악화를 우려해온 것이 현실"이라며 "이에 노사가 오랜 고민 끝에 합리적인 수준에서 '제2의 인생설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시각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황창규 회장이 전임자인 이석채 전 회장이 망친 KT를 대거 퇴직으로 수습하려는 모양새"라며 "임원들 중 '이석채 사람들'을 쳐내더니 이제는 직원들마저 잘라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창규 회장은 취임 직후 표현명, 김일영, 김홍진 사장을 업무 일선에서 쫓아내고 이 전 회장 체제핵심업무를 담당했던 코퍼레이트센터를 없애고 대신 미래융합전략실을 신설했다.

또한 스카이라이프와 BC카드 등 7개 계열사 사장들에게 사임을 통보하고 이 전 회장 시절 팽 당했던 인물과 삼성 쪽 인사들로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삼성·현대차] 경영승계가 배경
[KT·포스코] 전임자 색채 지우기

황창규 회장은 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 대출에 연루되어 있는 KT ENS도 버렸다. KT ENS에서 발을 빼는 방법으로 불필요한 잡음을 없앤 것이다. KT ENS는 돈이 묶여있는 시중 은행들의 집단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2일 만기가 도래한 기업어음(CP)을 상환하지 못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사외이사진도 대폭 물갈이 했다. MB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과 여성부 장관 후보에 올랐던 이춘호 EBS 이사장 등이 퇴진하고 이 전 회장의 대학동문인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와 교수 1년 후배인 송종환 주 파키스탄 대사와 김응한 이사회장이 사외이사직을 내놓았다.

이들을 대신해 김종구 법무법인 여명 고문변호사와 임주환 고려대 전자정보공학과 객원교수,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학장, 장석권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박대근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학 장 등 5명이 사외이사로 임명됐다.

포스코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탄소강 부문 스테인리스 부문 등 6개 본부를 철강생산·철강사업 등 4개로 통폐합했다. 경영 담당 임원은 68명에서 52명으로 감축했다.

포스코의 구조조정도 전임자 색채지우기 성격이 강하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취임 직후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성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며 "신사업에 투자를 너무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자 정준양 전 회장이 벌려 놓은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권 회장은 또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중단·매각·통합 등 과감하고 신속한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사업 분야는 '철강'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정 전 회장이 재임 시기에 시작한 LED 제조, 토목, 생활폐기물 연료화, 경전철 운영 등 계열사 10여개가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창규·권오준
'똥 치우기'

포스코 계열사 중 포스코P&S의 입지가 급격하게 축소되는 것도 정 전 회장 지우기로 해석된다. 울산지검 특수부는 지난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P&S 본사를 압수수색해 철강 거래와 관련한 각종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회계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철강제품 가격 담합을 비롯한 이 회사 간부의 비리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P&S는 철강소재와 알루미늄 등의 비철소재를 가동해 국내외로 판매한다. 포스코P&S의 지난해 매출 2조7457억원 중 대부분이 포스코와의 거래에서 발생할 정도로 포스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포스코가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도 국내외 철강사들의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등 포스코P&S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한다. 검찰 수사가 그룹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철강업계는 포스코가 자산규모가 훨씬 큰 대우인터내셔널에 비교적 작은 포스코P&S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선 긋기를 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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