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오 자살’ 5대 미스터리

2009.11.10 09:26:40 호수 0호

‘분노와 슬픔, 그리고 그리움…’한(恨) 많은 쓸쓸한 최후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전 두산그룹 회장)의 사망 소식에 재계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 2003년 8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의 투신 사건과 같이 파장도 엄청나다. 그만큼 박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는 왜 세상을 등진 것일까. 재계사에 또 한차례 비극으로 남은 그의 쓸쓸한 최후를 둘러싼 의문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자택서 넥타이로 목 맨 채 발견 “한국 재계사 비극”
경찰 “범죄 가능성 없다” 수사 자살로 잠정 결론


박용오 회장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은 지난 4일 오전 7시50분쯤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다. 안방 드레스룸 옷장 봉에 넥타이로 목을 맨 채 쓰러져 있는 박 회장을 가정부가 발견해 즉각 운전사에게 연락했고 운전사는 경비원 2명과 함께 박 회장을 차에 태웠다.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박 회장은 약 30분간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최종 사망 시간은 이날 오전 8시32분이다.

곧바로 박 회장의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졌다. 병원과 경찰, 언론, 회사 측이 ‘자살이냐 병사냐’를 두고 의견이 갈라진 것. 당초 서울대병원은 응급실 사체검안서에 심장마비라고 적었다. 박 회장의 사인을 급성심장사에 따른 병사로 기재한 것. 이에 따라 두산그룹도 자살설이 돌자 “사실무근”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성지건설 역시 박 회장의 자살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의 발표는 달랐다. 경찰은 박 회장이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박 회장 목에 끈으로 졸린 흔적과 자택에서 유서가 발견된 점, 목격자 진술 등 조사 결과가 뒷받침됐다. 경찰은 “증거와 진술, 정황 등을 근거로 자살이 확실하다”며 “검시 결과도 타살 등 범죄로 인한 사망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자살 은폐 의혹이 제기된다. 서울대병원 측은 “박 회장이 심장 수술을 받는 등 심장 질환으로 수년간 치료를 받았고 응급실에 심장이 정지된 상태로 왔기 때문에 추정 사인을 급성심장사로 한 것”이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박 회장의 검안서엔 가장 핵심인 삭흔 기록이 없다.

목을 맨 흔적이 있는데도 병원이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서울대병원은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이 1998∼2004년 병원장을 지낸 곳이다. 한편으론 타살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가정부와 운전기사 등 최초 현장 목격자들은 경찰에서 “박 회장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은폐 의혹에
타살 의혹도 제기



옷장 봉에 목을 맸다면 사망한 채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쓰러져’ 발견된 것과 ‘매달려’ 발견된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결정적인 사인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정황인 탓이다. 박 회장의 일부 측근도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박 회장은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인 지난 1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친인척의 돌잔치에 참석했는데 자살 징후가 전혀 없었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한 측근은 “박 회장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며 “건강도 좋아 보였고 기분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고 증언했다. 경찰의 결론대로 박 회장이 자살했다면 그 동기도 의문이다. 이를 풀 만한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만큼 박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진짜 이유가 명확치 않다. 직접적인 자살 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 다만 박 회장의 복잡한 사정을 놓고 여러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박 회장이 이끌던 성지건설의 경영난이 꼽힌다. 2005년 7월 시작된 ‘형제의 난’으로 두산일가에서 퇴출을 당하다시피 쫓겨난 박 회장은 지난해 2월 성지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그는 경기침체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왔고 이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성지건설의 부진은 결국 자금 압박으로 이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
1. 사체검안서에 삭흔 기록 누락 왜?
2. 목맸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3. 극단적인 선택 결정적 동기 부재?
4. 두산가 형제 도움 요청 외면했나?
5. 남긴 유서 미공개 나머지 내용은?

사실상 두산일가에서 맨몸으로 나온 박 회장은 성지건설을 약 730억원에 인수할 당시 돈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인수 이후에도 정상적인 대출이 어려워 높은 금리의 제2금융권으로부터 적지 않은 자금을 끌어다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지난해 발행한 1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의 상환만기가 올 연말까지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업 재개를 위한 자금 마련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지만 박 회장은 돈 될 만한 주식, 부동산 등 재산을 털어 성지건설을 인수했다”며 “자금 출처를 두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박 회장은 그룹 내 지분이 거의 없었고 ‘형제의 난’과 관련 법원으로부터 부과받은 80억원의 벌금을 비롯해 횡령금, 탈루액, 재판비용 등 금전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아들의 구속도 박 회장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평소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차남 중원씨는 주가 조작혐의로 지난 7월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박 회장이 ‘형제의 난’이후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인 상황에서 회사 경영난과 아들 구속 등이 겹치면서 상당한 심적 불안을 일으킨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형제들의 ‘왕따’가 궁지에 몰린 박 회장을 더 외롭게 만들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데 한몫했다는 지적도 있다. 박 회장은 ‘형제의 난’으로 틀어진 형(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동생(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 회장,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들을 일절 만나지 않았다.

일가서 맨몸으로 퇴출
성지건설 자금 압박

지난해 9월 모친 고 명계춘 여사의 별세 당시 형제들과 잠시 조우해 서로 화해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으나 깊은 갈등의 골은 쉽게 메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성지건설이 자금난을 겪자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회장이 최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성지건설 자산 매각을 시도했지만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급기야 자존심을 접고 두산가에 손을 내밀었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모 회사 지분도 두산그룹에 급매하려 했으나 이 또한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건설업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는 성지건설을 인수하면서 주변에 “건설 말고는 할 것도 아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회장을 비롯해 두 아들 모두 두산건설 임원 출신으로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들이 각각 성지건설 부회장과 사장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회장이 ‘형제의 난’을 일으킨 단초도 건설업이다. 박 회장의 장남인 경원씨가 2000년 초 두산일가와 상의 없이 그룹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건설사를 차리자 ‘괘씸죄’에 몰렸고 이는 박 회장의 회장직 박탈로 이어져 형제간 갈등의 화근이 됐다. 박 회장은 분가 대가로 두산건설을 떼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때도 형제들은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박 회장의 한 측근은 “두산그룹과 언론이 박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양측이 화해할 가능성을 점치지만 이는 속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며 “박 회장이 쓸쓸한 최후를 맞은 게 다 누구 때문이냐. 나중에 형제들이 남은 유가족들을 확실히 껴안는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어도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형제 사이서 ‘왕따’
‘X파일’ 존재 관심 

지금으로선 박 회장이 남긴 유서가 유일하게 의문들을 풀어줄 단서다. 경찰은 박 회장의 안방 침대 옆 금고에서 A4용지 7장 분량의 볼펜으로 작성한 유서를 찾아냈다. 경찰이 공개한 유서 내용에 따르면 박 회장은 가족과 지인들을 한 명씩 거론하며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적었다. 또 “회사 부채가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채무 관계를 잘 정리하라”는 당부도 있다. 이 유서는 지난 5일 유가족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유서의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더 이상 유족들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항간에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만큼 그가 생전 못다 한 말들도 포함되지 않았겠느냐는 조심스런 의견도 나온다. 유서 외에 다른 비망록 존재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직설적인 화법과 과감한 성격이었던 박 회장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X파일’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박 회장은 생전 빙빙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