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필리핀 여성들을 국내로 데려와 성매매를 시킨 일당이 덜미를 잡혔다. 한국 무대에서 공연하며 돈을 벌 꿈에 부풀었던 피해 여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나라에서 강제로 몸을 팔아야 했다.
40만원의 월급을 받기 위해 반항 한 번 못하고 한국 남성들의 노리개가 되었던 피해여성들은 뒤늦게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연예기획사를 빙자해 외국인 여성들을 상대로 화대를 갈취했던 일당들의 행각을 살펴봤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단속을 피해기 위해 변종 퇴폐 업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또 하나 늘어난 것은 외국인 여성들을 고용하는 유흥업소와 성매매업소들이다. 단속이 두려워 성매매를 그만두거나 외국의 성매매업소로 떠나는 여성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이기도 했다.
“가수 시켜 줄게”
이런 가운데 연예기획사를 차려놓고 가수 등 무대에 서는 것을 꿈꾸던 필리핀 여성들을 국내로 데려와 술 접대와 성매매 등을 시킨 일당이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공연을 위한 초청이라고 속여 필리핀 여성을 불법 입국시키고 유흥업소에 넘긴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 등)로 최모(56)씨 등 연예기획사 대표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 필리핀 여성을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한모(51·여)씨 등 유흥업소 업주 3명과 필리핀 여성 17명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 연예기획사 대표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필리핀에서 밴드 등 연예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끌어모았다. 이들을 유흥업소 등의 업소에 팔아넘기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공연으로 돈 벌게 해준다” 필리핀 여성 유혹
유흥업소에 100만원에 팔아 넘겨 술 접대, 성매매 강요
최씨는 이를 위해 자신들의 목적을 숨기고 여성들에게 “공연을 하며 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말하며 한국행을 권유했다. 한국에서 큰돈을 벌며 가수의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여성들은 한국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비자를 발급받게 해주는 것은 최씨 일당의 몫이었다. 이들은 공연 목적의 초청으로 위장해 한국행을 희망하는 여성들에게 예술흥행비자인 ‘E6’을 발급받게 해 주었다.
일부 연예기획사 대표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E6비자 발급에 필요한 공연추천서를 받고자 근로자 파견 계약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자 발급을 받는 것까지 도와주는 한국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의 행동에 믿음을 가졌던 필리핀 여성들은 가수가 될 꿈에 부풀어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이들의 꿈은 입국과 동시에 무너졌다.
이들을 이끈 곳은 울산의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들. 이들은 최씨 일당에 의해 100만원의 몸값을 받고 팔려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필리핀 여성들에게 주어진 일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남성들을 상대로 술을 따르고 몸을 파는 것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이들을 고용한 유흥업소 업주들은 매출 할당량까지 정해놓고 여성들을 부려먹기도 했다.
업소에서 일한 한 필리핀 여성은 “주인이 한 달에 술 350병 정도를 팔라고 했다. 못 팔면 내보내겠다고 협박을 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매출액을 채우지 못한 여성들은 성매매까지 나서야 했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매일 밤 유흥업소에 줄지어 앉아 남성들을 상대해야 했던 것. 이들 필리핀 여성들로 배를 불린 것은 유흥업소들과 연예기획사. 유흥업소들은 1년간 3억여 원의 돈을 뜯었고 연예기획사도 소개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챙겼다.
이처럼 낯선 나라에 와 뜻하지 않게 성매매까지 해야 했던 여성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필리핀 대사관을 통해 알려졌다. 올해 3월 한국에 와 변을 당했던 필리핀 밴드의 멤버들이 필리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의 사연을 접한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계가 추적 끝에 진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7년 동안 필리핀에서 활동했던 S밴드는 어느 날 솔깃한 제안을 듣게 된다.
한국에서 공연을 하며 돈을 벌라는 제의였다. 필리핀 기획사에서 한국 연예기획사를 연결해 준다는 말을 들은 이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문제는 비자 발급. 그러나 그것도 쉽게 이뤄졌다. 기획사에 수수료 400달러를 건네자 예술흥행비자가 발급된 것.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는 말에 공연모습을 촬영해 한국으로 보내는 절차까지 밟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이들은 한국 연예기획사 관계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따라 울산의 한 클럽에 도착했다. 생각과는 달리 유흥업소에 취업하게 됐지만 음악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은 놓지 않았다.
40만원 벌려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은 곧 산산조각 났다. 업주 한씨는 무대에서 연주를 시키기는커녕 성매매를 강요하기 시작한 것. 공연을 하러 왔다며 거절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협박뿐이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몸을 팔아야 했다. 한 달 월급은 40만원. 이마저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못 받기 일쑤였다. 할 수 없이 멤버 중 여성 4명은 성매매를 했고 부부였던 A씨와 B씨는 밤새 클럽 청소와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이처럼 협박과 성매매가 반복됐던 일상을 견디지 못했던 여성 멤버 3명은 도주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필리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 일당의 행각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의 제2의 인생을 꿈꿨던 이들은 결국 상처만 안은 채 고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편 경찰은 이들 연예기획사가 최소 300여 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을 불법 입국시켰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