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앞둔 노숙자들의‘하루살이 <엿보기>

2009.09.29 10:26:57 호수 0호

“술 한 잔이면 괜찮아…”

추석이 가까이 오면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유난히 짧은 기간이기에 추석 선물을 사랴, 고향 차표를 끊으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직장인들 중 30% 정도가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통계도 나왔지만 추석을 코앞에 둔 사람들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정처없이 다니다가 누울 곳만 있으면 몸을 의탁하는 노숙자들이 그들이다. 노숙자들에게 명절은 가슴을 짓누르고 마음을 무겁게만 한다.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얼굴에 한쪽 구석에서 남모를 눈물을 보이기 일쑤다. 민족대이동을 앞둔 시점에서 노숙자들의 하루살이는 어떤 모습인지 거리로 나가봤다.

민족대이동 앞두고 오가는 사람들 보며 눈물 ‘쑥’
신세 한탄하며 ‘술판’ 벌이고 찬바닥에 몸만 의탁   

요즘 가을 날씨는 낮에는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싸늘하기만 하다. 새벽녘에는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 지난달 23일 오후 4시 서울역을 찾았다. 노숙자들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광장에는 따뜻한 햇볕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든 노숙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노숙자 한 명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술 냄새를 풍기던 한 노숙자가 비틀거리며 여성 노숙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 것. 추파를 던지는 모양새다. 여성 노숙자는 남자의 말에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하다가 어깨동무하고 역사 한 켠으로 사라진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한 노숙자가 광장을 비틀거리며 걸어다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담배 하나만 주쇼.” 몇 번을 거절당하던 이 노숙자에게 한 행인이 대여섯 개비 남은 담배를 통째로 줬다. 그러나 담배를 받고도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불까지 요구하며 언성을 높인다.

역사 상가 한 관계자는 “노숙자들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만 보면 담배를 얻곤 한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돈을 주면 바로 편의점으로 가 술을 사곤 한다. 하루 종일 술판 벌이는 노숙자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갑자기 광장이 부산해졌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향했다. 반면 노숙자 몇몇은 그대로 웅크리고 누워있다. 그들은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였다.

한 노숙자에게 행선지를 묻자 “저녁 밥 먹을 때가 됐다”면서 “같이 가려면 따라 오라”고 말했다. 그를 따라 간 곳은 서소문 근처의 무료 급식소. 한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이곳에는 벌써 30여 명의 노숙자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랜 노숙생활에 찌든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저녁을 해결한 노숙자들은 다시 하나둘씩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다.

해가 완전히 걷히자 서울역에는 낮시간보다 노숙자의 수가 늘어났다. 광장에만 150여 명 남짓.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은 TV를 보기도 하고,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쪽에선 술판이 벌어진다. 세상을 한탄하고 욕을 퍼붓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마구 욕설을 퍼붓는 노숙자도 있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행인들은 익숙한 모습인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숙자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묻자 “처음에는 쪽방에서 생활하면서 새벽이면 인력시장에도 열심히 나갔지. 그런데 대부분 허탕이었어. 쪽방 얻을 돈도 떨어진 뒤부터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했지. 무료급식소에서 밥 먹고 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 불편함이 없어”라고 말했다. 지하철로 이동하자 한 여자 노숙자가 기자에게 다가와 “1000원만 있으면 달라”고 요구한다.

기자는 1000원을 건네며 추석이 코앞인데 집에 안 가냐”고 묻자 그녀는 “술에 취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숨도 쉬기 힘들다. 1000원씩 얻다보면 하루 4000~5000원 정도 되는데 그 돈으로 거의 술을 사 마신다. 명절 때만 되면 가족들이 생각나 술을 더 마시게 된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 같은 심정일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자정이 다 되어 가자 갑자기 노숙자들이 밖으로 모두 나간다. 물어보니 마지막 열차가 지나가면 밖으로 모두 나갔다가 새벽 3시쯤 첫차 시각에 맞춰 대합실이 열리면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한다고.

“얼어 죽어도 내 팔자지…”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이 가득하다. 대합실에 자리를 못 잡은 노숙자들은 이곳으로 모이기 때문. 보물단지 간수하듯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자는 사람, 다른 사람들과 아무렇게나 엉켜서 자는 사람, 어디서 얻었는지 똑같은 색깔의 담요를 나란히 덥고 자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얼음장 같은 바닥 한기에 몸을 잔뜩 웅크린 모습에 가슴이 시려온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노숙자들이 처음부터 거리로 나오지 않도록 현실성 있는 정부의 빈곤대책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창 일하면서 가정을 돌봐야 하는 30~40대가 거리의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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