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불출마 선언 속내

2009.09.29 10:07:52 호수 0호



10월 재보선 전략공천 거론되던 수원 장안 불출마
‘다가올 더 큰 전쟁’ 염두…조금 더 멀리 내다보기

꼬박 1년을 칩거했던 손학규 전 대표가 정치 복귀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재보선 출마도, 출판기념회 같은 행사도 아닌 ‘불출마’ 선언이다. 10월 재보선에 대한 열기가 과열되면서 민주당 지도부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손 전 대표를 수원 장안에 출마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그는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재보선 출마를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수원 장안에 나설 민주당 후보의 지원 유세를 시사, 여의도 정치권으로 성큼 다가섰다.



손학규 전 대표의 10월 재보선 불출마 선언에 민주당은 어안이 벙벙한 모양새다. ‘손학규-김근태’라는 빅카드를 손에 쥐고 있던 당 지도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손 전 대표의 측근들도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두세 차례 재보선을 거치고 나면 2012년 4월 총선, 대선으로 이어지는 빠듯한 정치 일정상 손 전 대표의 원내복귀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지도부 측근 뒤통수 ‘퍽’

정치 일정 중 6월 지방선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방선거에서의 활약과 당에 대한 기여도가 당내 대권주자들의 1차 성적표가 된다는 것. 당내 기반을 마련하고 세를 확장하는 것은 물론 전국에서 펼칠 지원유세를 통해 민심과 직접 대면한다는 효과도 가진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선은 2012년에 펼쳐지지만 대선주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여론조사나 세몰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그보다 한두 해 전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번에는 지방선거가 그 시작점”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지방선거 공천이나 선거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원외보다는 원내가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손학규 전 대표나 이재오 전 의원의 측근들이 그들의 원내입성을 서두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치적 계산에도 불구, 손 전 대표는 당 지도부가 나서서 권유했던 재보선 출마에 손을 내저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황하면서도 “손 전 대표도 고민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종로가 자기 선거구 아니냐.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종로구 출신 한나라당 의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종로 선거구를 버리고 수원으로 간다고 하는 것은 조금 마음에 걸렸을 것”이라고 손 전 대표의 속내를 짚었다.

이어 “수원에 있는 현 위원장과의 관계 등으로 볼 때 역시 종로를 지켜서 때를 기다리겠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손 전 대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가 전략공천을 거절하면서 당의 10월 재보선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손 전 대표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지명도와 지지도가 높은 ‘거물’로 당장의 전투를 이기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전쟁을 이기는 길이 아니다. 이번 장안 선거에서 손학규가 이기면 ‘거물’이 당선되는 것이지만, 이찬열이 이기면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이라는 그의 뜻을 십분 이해하기 때문이다.

손 전 대표가 수원 장안 재보선에 나서서 패배하면 지우지 못할 상처를, 승리해도 ‘떼놓은 당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이찬열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지난 총선 때 38.2%의 득표를 보이며 패배를 한 인물로 이번에 공천만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 평이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지금은 전략공천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 당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거물을 원내 입성시키기 위해 전략공천을 남발하면 지역에서 뛰는 이들과 당 사이에 괴리감만 깊어질 것”이라며 “낙하산 내려 보낼 생각 말고 뛰고 있는 선수의 등을 밀어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도 “민주당은 지금 앰플 주사로 잠시 일어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보약으로 당장 기력을 회복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체력단련을 해야 한다. 찬바람을 맞고 험한 길을 헤치며 처절한 각오로 자기단련을 해야 한다. 스타플레이어가 혼자 깃발을 날려서 될 일이 아니다. 가능성 있는 병사를 장수로 만들어, 장수 군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선거를 수수방관하지는 않겠다”면서 “함께 뛰겠다. 내가 나서지 못하는 만큼 그 이상 뛰어 반드시 승리를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손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 불출마를 통해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면서 “‘장수 군단’은 비단 이번 재보선뿐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까지 민주당이 이뤄내야 하는 과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원내입성 기회를 뒤로 하고 나선다는 것은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진정성으로 다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민심 끌어안고 ‘GO’

그는 “천막당사를 세우고 전국 지원유세를 통해 당원들은 물론 민심까지 얻었던 박근혜 전 대표만큼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민주진영 전체의 승리를 위한 도구로서, 거름으로서, 방편으로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면서 ‘무언가’를 일궈낼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것은 기대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손 전 대표가 던진 ‘화두’도 긴 여운을 남긴다. “‘정치가 국민의 희망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숙제”라며 “그동안 민주화 정치세력의 집권기간으로부터 이명박 정부 1년 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보여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좌절에 대한 해법을 가지기 전에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로 허물어졌던 당을 다시 추켜세웠던 손 전 대표가 정체성과 정책 부재, 지지율 정체로 고심하고 있는 민주당에 ‘멀더라도 옳은 길을 가는 지름길’을 제시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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