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22탄] 추석 선물세트

2009.09.29 09:51:38 호수 0호

‘낱개→세트’ 가격 뻥튀기 심하다!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줄이고, 깎고, 아끼고….’ 명절 때만 다가오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돈 나갈 걱정 탓이다.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얇은 지갑을 더 초라하게 한다. 가장 지출이 많은 부분이 바로 선물이다. 가족·친지를 만난다는 설렘에 앞서 선물 고를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이유다.

‘줄이고, 깎고…’
선물 생각에 한숨만

매년 찾아오는 명절이지만 선물 고민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대상을 부모님으로만 한정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작지만 알차고 정성이 담긴 선물을 고른다고 골라도 부담은 그대로다. 명절 선물의 역사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1940∼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시 됐던 당시엔 쌀, 고추, 계란, 돼지고기, 닭 등을 주고받았다. 물론 손수 수확한 농축산물이었다. 

1960년대 ‘명절 선물’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선물 리스트에 큰 변화가 생긴 시기다. 속속 등장한 백화점에선 추석 선물 카탈로그를 제작하는 등 본격적인 선물 판촉에 나섰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1965년 카탈로그에 실린 추석 선물은 모두 100여 가지에 이른다. 라면, 맥주, 밀가루 등이 주를 이뤘는데, 이때부터 국내 최초의 바겐세일이 실시되기도 했다. ‘삼백산업’의 하나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설탕이 최고급 선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엔 선물세트가 본격적으로 시판됐다. 산업화의 여파로 추석 선물은 공산품이 대부분이었다. 화장품, 학용품 등을 비롯해 타월, 속옷, 스타킹 등 나일론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또 라디오와 흑백TV, 콜라, 과자도 등장했다. 추석 선물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고도 산업 발전기인 1980년대다. 상품 종류도 1970년대 200여 종에서 1000여 가지로 다양해졌다. 명절 선물 대명사인 정육세트가 등장했고 참치, 통조림 등 규격식품도 첫선을 보였다. 


상품권 미리 사두면 
2배 이상 할인 받아

아울러 인삼, 꿀, 영지버섯 등 건강식품과 넥타이, 지갑벨트, 스카프, 와이셔츠 등 잡화용품의 선물이 유행했다. 1990년대 들어선 품목이 고급화됐다. 고가품인 수입양주와 갈비, 굴비 등이 각광받았다. 백화점상품권, 외식상품권, 구두상품권, 주유상품권, 문화상품권 등 각종 상품권이 발행된 것도 이때부터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단순 먹거리’에서 ‘삶의 질’로 변화한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과일류, 수삼, 인삼, 민속주, 양송이, 더덕 등 건강 관련 친환경·유기농 웰빙상품이 늘어났다. 젊은 층 사이에선 MP3, 디지털카메라, PMP, LCD 등 디지털 기기가 대세다. 그렇다면 올 추석 양상은 어떨까. 이번 추석은 연휴가 짧은 탓에 예년에 비해 귀향 행렬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취업포털 커리어는 최근 직장인 108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9.6%가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집에 있을 계획’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신종플루 감염 우려와 유난히 짧은 연휴로 10명 중 4명가량이 귀향을 포기한 셈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보다 15% 증가한 수치다.

대신 지방으로 보내는 선물 배송이 급증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수도권 7개점에 접수된 선물 배송 신청을 집계한 결과 경상·전라·충청 등으로의 원거리 지방 배송이 1만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9.2%나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방 배송이 작년 동기에 비해 86% 늘어났다.

이처럼 배송 수가 늘어난 것은 귀향을 포기하고 선물로 대체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당연히 선물세트 판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매년 명절 선물 선호도를 보면 부모님들이 꼽는 ‘1등 선물’은 돈이다. 뭐니뭐니 해도 ‘현찰’이 최고의 선물이란 얘기다. 그러나 ‘드리는’ 입장은 다르다. 용돈과 선물의 지출 차이가 큰 까닭이다. 최근 한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CJ제일제당이 회원 1만3107명을 상대로 올해 ‘추석선물 준비’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고 싶은 선물은 ‘스팸, 햄, 참치, 식용유 등 식품 선물세트’가 32%로 1위에 올랐고, 이어 ‘홍삼, 오메가3 등 건강기능식품’(23%), ‘과일, 한과, 떡 등 농산물’(16%) 순이었다. 반면 받고 싶은 선물은 ‘상품권’(34%)과 ‘현금’(25%)이 높은 응답을 보였다.

10명 중 4명 귀향 포기…선물 지방배송 급증
상품권, 식품세트 인기 여전 ‘바가지 주의보’

이처럼 명절 선물로 변함없는 아이템은 현금을 제외하고 상품권과 식품 선물세트다. 상품권은 현금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졌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식품 선물세트는 잘나가면서도 싸고 알찬, 무엇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색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품 사고 등 소비자 불만 역시 빈번히 발생하는 시기인 만큼 어느 때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선물세트 등에 대해 ‘피해주의보’를 발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품권은 “제값에 구입하면 바보”란 소리를 듣는다. 시기만 잘 맞추면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재래시장 상품권은 각 시도별로 구입 시 적게는 2∼5%, 많게는 10% 이상의 할인 혜택을 받는다. 대형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평소 5∼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지만 대목을 앞두고 3∼4% 할인선에 거래되고 있다.

구두상품권은 30∼40%, 주유권은 1∼2%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권을 구입할 수 있다. 사채시장이나 구두수선점 등을 통해 은밀히 암거래되던 상품권 유통이 1999년 상품권 법 폐지 이후 양성화되면서 상품권 할인판매 전문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상품권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인터넷쇼핑몰도 급속도로 늘어 100여 개가 넘는다. 쇼핑몰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품권 매장보다 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화점 등에서 제값을 주고 상품권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는 기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에 구매자들이 몰리면서 물량부족 현상도 나타난다. 상품권업계 한 관계자는 “상품권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 상품을 골라 살 수 있다는 유용성과 주고받기 쉽다는 편리성이 더해져 명절을 앞두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도 조금씩 더 오른다”며 “최소한 명절 한 달 전에 미리 구매해야 제대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2만3820원짜리 참치캔 4만1800원
2만4780원짜리 참기름 3만7600원
1만2160원짜리 식용유 1만7500원 

문제는 온라인 거래다. 사용할 수 없는 ‘위조 상품권’을 판매하는가 하면 상품권을 싸게 판다고 유인한 뒤 돈만 챙겨 달아나는 ‘유령 쇼핑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추석 전후 보름 동안 발생한 인터넷쇼핑몰 피해만 1100여 건에 이를 정도다. 

공정위는 “피해를 막기 위해선 추후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신용카드로 가급적 결제하고 현금결제 시 구매안전서비스 가입한 사업자와 거래할 필요가 있다”며 “주문번호, 주문내역, 대금지급 내역, 사이트 화면 등을 갖고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상품권과 달리 식품 선물세트는 과대 포장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얼핏 낱개 상품보다 여러 개를 종합한 세트 구입이 싸다고 여겨지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개별 제품에 비해 세트 판매 가격이 더 비싸다. 

실제 <일요시사>가 ‘3대 선물세트’인 참치, 식용유, 참기름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선물세트 가격이 낱개로 따로 구입할 때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업체들이 추석 대목을 노리고 발행한 카탈로그엔 터무니없이 비싸게 명시돼 있다. 동원F&B는 ‘한가위 선물대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중 베스트 상품에 올라있는 동원참치 라이트스탠다드(150g×12캔)로 구성된 선물세트 ‘친호’의 가격은 4만1800원이다. 시중에 라이트스탠다드(150g) 1캔당 가격이 1985원(12캔 2만3820원)인 점을 감안하면 세트가 무려 1만7980원이나 비싸다.

사조해표는 홈페이지에 공개한 카탈로그에서 ‘식용유 1호’(1.8ℓ×2개)의 가격을 1만7500원이라고 공개했다. 하지만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서 낱개로 구입하면 식용유 1개당(1.8ℓ) 가격은 6080원으로 세트가 낱개 구입 가격보다 5340원 비싸다. 오뚜기의 참기름도 마찬가지다. 

뚜기가 추천한 선물세트 중 하나인 ‘참기름5호’(고소한참기름 500㎖ 2캔, 160㎖ 1병)는 카탈로그에 3만7600원으로 찍혀있다. 이들 참기름의 소비자가격은 각각 9900원, 4980원으로 판매되고 있다. 세트가 낱개 구입 가격보다 1만2820원 비싼 것이다. 


이들 선물세트는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서 카탈로그 가격대로 판매되지 않는다. 별도의 할인율을 적용해 20∼50% 싸게 팔고 있다. 결국 식품업체들이 선물세트 카탈로그에 가격을 ‘뻥튀기’한 뒤 ‘대폭 세일’이란 눈속임으로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꼴이다.

‘개별포장, 박스값…’
인건비·포장비 추가

그렇다고 시중에 나온 선물세트도 싼 게 아니다. 보통 선물세트는 수작업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인건비, 포장비 등이 추가로 포함된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카탈로그에 가격을 높게 잡는 것은 ‘싸게 샀다’는 소비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이자 관행”이라며 “포장비, 인건비가 따로 들어 아무리 싸게 소비자가 구입해도 개별 제품으로 구입하는 것에 비하면 비쌀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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