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동영상 출연에 또 한 번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이번엔 ‘선생님 꼬시기’란 제목의 동영상이다. 휴대폰으로 촬영된 이 영상 속에는 남자 고등학생들이 교실 안에서 여선생님에게 치근덕거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성희롱으로 봐도 무방할 만한 내용인 탓에 ‘여교사 성희롱’이란 제목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기도 했다. 결국 해당 학교에 서울시 교육청의 징계권고가 내려져 동영상 속의 남학생은 출석정지 10일이란 징계를 맞으며 일단락됐다. 그러나 교육계 안팎에선 바닥까지 떨어진 교권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문제의 동영상이 찍힌 것은 지난 7월6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안에서였다. ‘선생님 꼬시기’란 제목으로 동영상을 올린 이는 이 학교에 재학 중인 B군으로 촬영 다음 날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영상 속에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이 학교 2학년 학생 A군과 시간제 음악교사로 일하는 C교사가 등장한다. 수업이 끝난 뒤 전단지를 나눠주는 C교사에게 다가간 A군은 선생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누나 사귀자”라고 말한다. 이에 당황한 C교사는 자리를 피했고 주위 학생들은 “한 번 더 한 번 더”라고 연호한다.
“누나 사귀자”
이에 A군은 C교사를 따라가 또다시 어깨에 팔을 둘렀고 화가 난 C교사는 팔을 뿌리치며 제지를 시킨다. 그러나 A군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고 뿌리치는 C 교사의 팔을 다시 한 번 잡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이 동영상으로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C교사는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 학생을 향해 손으로 촬영을 중단하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동영상은 끝이 난다.
교실에서 남고생이 여교사 성희롱하는 동영상 일파만파
어깨 손 올리고 “누나 사귀자”…추락하는 교권 단면 표출
45초 분량의 이 동영상은 결국 B군을 통해 인터넷에 알려지게 됐다. 사건 발생 후 동영상을 삭제하겠다는 약속을 C교사에게 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그 다음 날인 7월7일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미니홈피에 공개된 것.
그리고 이 영상은 점점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선생님 성희롱’이란 제목으로 유튜브 사이트에까지 오르면서 막장 동영상의 실체는 더욱 많은 이들에게 노출됐다.
동영상을 접한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교권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선생님에게 도를 넘은 행위를 한 학생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등의 말로 동영상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영상이 일파만파 퍼지고 영상 속 남학생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서 떠도는 등 문제가 커지자 해당 학교는 “학생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며 “수업 후에 일어난 장난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비난의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이에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9일, 동영상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시 교육청은 담당직원을 해당 학교에 보내 동영상 제작경위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특히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한 진상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이처럼 갈수록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자 해당 학교는 긴급 징계위원회를 열어 여교사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한 A군과 당시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B군에게 출석정지 10일이란 징계를 결정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교사에게 한 행동에 비해 너무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네티즌들과 교원단체 등에서 쏟아지고 있다. 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교권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성희롱을 저지른 대가치고는 가볍다는 이유에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9일 논평을 내고 해당 동영상이 “경쟁과 성적만능이 만들어 낸 한국 교육의 비극적 현실”이라며 “동영상 제목 ‘선생님 꼬시기’와 내용으로 볼 때 이는 명백한 교권침해이자 학생의 교사에 대한 성희롱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락하는 교권
또 ‘수업 후에 일어난 장난에 불과하다’는 학교 측의 입장에 대해 전교조는 “동영상 내용으로 볼 때 분명 학생과 교사의 역할과 관계가 실종된 것”이라며 “고등학생이 여교사보다 힘이 강한 상황에서 학생의 이런 행동은 강압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교조는 또 “교사 입장에서 보면 이는 명백한 성희롱에 해당하며 학생들 앞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상당한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문제의 동영상 사건과 관련, 사건을 교권침해 및 성희롱 행위로 규정하고 교권확립을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한국교총은 지난 9일 “무너지는 학교기강, 추락하는 교권”이란 이름의 성명을 내고 “해당 동영상의 내용을 보면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어렵다”며 영상 속 학생의 행위는 “명백한 교권침해이자 성희롱”이라고 했다. 또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교원 경시 풍조가 어린 학생에게까지 확대된 것”이라 평했다.
실제 교권 침해 사례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해당 사례는 2006년 179건, 2007년 204건, 2008년 249건이 집계됐고 2009년 9월 현재까지 약 200건이 보고됐다.
각종 설문조사로도 교권 추락은 나타난다. 전국 중고생 32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6.4%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과거보다 더 낮아졌다고 답한 반면 더 존경하게 됐다는 응답은 10.5%에 그쳤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라는 것.
이런 현실 속에서 등장한 문제의 동영상은 일반인들에겐 충격을, 현직교사들에겐 허무함을 안겨주고 있다.
중학교에 재직 중인 한 교사는 “교권 추락을 보여주는 사건을 접할 때마다 교사로서의 책무를 다하자는 마음을 다잡곤 했는데 이번 동영상 사건을 본 뒤로는 학생들을 대하기 민망한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