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현정은’ 시나리오<넷>

2009.09.01 09:27:40 호수 0호

‘전전끙끙(?)’ 멀고도 험한 대물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 범현대가의 ‘3세 승계’가 거의 마무리되면서 상대적으로 승계 작업이 더딘 현대그룹 후계구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룹 안팎에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 내부 관계자, 재계 호사가, 언론마다 각기 다른 의견과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4가지 시나리오로 압축된다. 후계작업 과정에서 출현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돌발 변수들을 점쳐봤다.

정의선 부회장 승진 등 범현대가 3세 승계 마무리
상대적으로 후계작업 더딘 현대그룹 움직임 관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고 정몽헌 회장과의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장녀 지이씨, 차녀 영이씨, 외아들 영선씨다. 아직까지 현 회장의 구체적인 후계자 지명이 없었지만 일단 그룹 후계 작업은 이들을 중심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핏줄로 대물림이 이뤄진다는 전제에서다.



<시나리오1> 장녀 수순론

현재로선 장녀 정지이 현대U&I 전무가 자천타천 ‘1순위’다. 올해 32세인 정 전무는 현 회장의 딸이자 ‘경영 파트너’다. 정 전무가 지금까지 걸어온 ‘현정은 밀착 행보’를 보면 재계에서 최초로 ‘모녀 승계’가 이뤄질 가능성을 높인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현 회장도 2003년 8월 졸지에 남편을 잃고 서울 적선동 사옥으로 출근한 이후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정 전무에게 의지해 왔다.

최근엔 현 회장의 성공적인 방북 일정 내내 곁에서 충실하게 그림자 역할을 수행해 유력한 후계자로 각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북사업 외에도 임원회의 등 그룹 대소사에 모두 참석한다. 정 전무가 후계자로서 집중 조명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게 그룹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지만 그는 이미 ‘왕좌’에 바짝 다가서 있다.

정 전무는 2004년 1월 현대상선 평사원으로 입사해 이듬해 과장으로 승진한 뒤 현대U&I 상무로 옮겨 지난 1월 전무로 올라섰다. 불과 5년 만에 이뤄진 초고속 승진이다. 그룹 지배력도 다지고 있다. 정 전무는 현 회장(68.2%)과 현대상선(22.7%)에 이어 현대U&I 3대주주(9.1%)다. 사실상 총수일가의 개인회사인 현대U&I는 ‘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택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형태의 그룹 지배구조에서 ‘컨트롤타워’로 떠오른 현대택배(15.6%)와 총체적 경영·투자전략 자문을 맡고 있는 ‘그룹 브레인’현대투자네트워크(20.0%) 등의 주요주주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이 그룹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는 등 정 전무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를 보면 모녀간 경영승계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며 “정 전무는 혹시 모를 돌발 변수에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나리오2> 장자 부상론

그동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차녀와 외아들이 급부상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올해 25세인 영이씨와 24세인 영선씨가 주인공. 미국 유학 중인 이들 남매는 아직 나이가 어려 경영일선에 나서기엔 시기상조지만 3~5년 후 졸업하는 대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을 것으로 보여 곧 ‘포스트 현정은’ 구도에 가세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일선 BNG스틸 사장 등 경영 전면에 나선 사촌형들과 같은 ‘선(宣)’자 돌림인 영선씨의 차기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행보를 눈여겨볼 만하다. 경영권 로드맵에서 아들을 제외할 수 없는 탓이다. 영선씨는 지난해 8월 현대택배가 보유한 현대투자네트워크 지분(20%)을 전량 매입하면서 승계 분위기를 탔다.
 
현대투자네트워크는 그룹의 숙원사업인 현대건설 인수·합병(M&A)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투자네트워크가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고리로 부상하게 된다. 앞서 영선씨는 2006년 9월 현대상선 지분(0.01%)을 처음 매입해 경영 참여 발판을 마련했다. 항간에선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하다는 영선씨의 ‘지병설’이 나돌고 있지만 지난해 방위산업체에서 대체복무를 마친 점을 들어 터무니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회사 측은 일축했다.

영선씨가 경영일선에 뛰어들면 대내외 입지를 넓히고 있는 누나 정 전무와 함께 ‘남매경영’체제를 형성할 공산이 크다. 삼성의 이재용-이부진, 신세계의 정용진-정유경, CJ의 이재현-이미경, 한진의 조원태-조현아 등이 재계에서 대표적인 남매경영 사례다. 현대그룹은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회사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이 올해 54세로 아직 경영에서 물러날 시점이 안 됐을 뿐더러 두 자녀도 경영에 참여하기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와 후계구도를 논하는 것은 이르다”라고 선을 그었다.

<시나리오3> 복병 출현론


극히 희박하지만 현 회장의 자녀가 아닌 제2, 제3 인물의 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안사람 가운데 ‘흑기사’든 ‘백기사’든 어떤 형태로든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시나리오다. 범현대가에서 현 회장의 편은 없다. 온통 군침을 흘리는 시댁식구들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씨일가의 재탈환 시도 얘기가 흘러나온다.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상선의 경우 현 회장이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지만 과거 적대적 M&A를 시도했던 현대중공업(17.6%), KCC(5.0%) 등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현대상선은 현대택배 최대주주(47.15%)이기도 하다. 적통을 중요시하는 범현대가가 언제든지 다시 ‘작전’을 개시할 위치에 있다는 결론이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놓고 2003년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적대적 M&A를 시도한 ‘숙부의 난’을, 2006년 현대상선을 놓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가 지분을 대량 매집한 ‘시동생의 난’을 겪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회장의 ‘아군’은 어머니 김문희 용문재단 이사장 등 친정일가밖에 없다. 김 이사장은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로,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친누나다. 김 이사장은 현 회장의 사업적 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현 회장이 시댁식구들과 경영권 분쟁을 치를 땐 딸의 경영권 수호에 두 팔을 걷었다. 지금은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19.4%)다. 현 회장 지분은 3.9%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최대주주(19.1%)로 현대중공업 지분보다 많다. 이밖에 현 회장의 언니 일선씨와 여동생 승혜·지선씨 등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0.2~0.3%)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정씨가 아닌 현씨나 김씨 일가에 넘어가는 변수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그룹 관계자는 “김 이사장이 ‘시숙부의 난’ 때 정씨 일가에게 지분을 넘길 것을 약속했다”며 “현 회장도 김 이사장의 상속 문제에 대해 어머니의 지분은 자식들에게 상속하는 것으로 이미 공증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한 바 있다”고 일축했다.

<시나리오4> 외인 등용론

한편으론 딸들의 사위에게 ‘옥새’가 넘어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사위가 그룹 회장직에 오른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 등이 모델이다. 결국 지이-영이씨의 남편들에게 지분과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 회장의 사위가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그만큼 현 회장에겐 두 딸의 결혼이 중요할 수 있다.

또 전문경영인(CEO) 체제 전환도 빼놓을 수 없다. 현 회장은 지난해 ‘직할 체제’를 완성했다. 취임 후 4년 동안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노정익 전 현대상선 사장, 김지완 전 현대증권 사장 등 ‘구 현대계’가신들을 완전히 솎아낸 것. 그룹 내에선 현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현정은 사람’들의 2인자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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