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표정 관리’왜?

2009.08.25 09:09:34 호수 0호

서거정국 시선 분산 ‘득일까, 실일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표정 관리 중이다. ‘방북 보따리’를 다 풀기도 전 몰아친 DJ 서거 정국이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는 탓이다. 현 회장은 한 명의 국민으로서 특히 지금의 대북 사업이 있기까지 DJ의 역할이 컸던 만큼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지만 않다. 과연 그에게 어떤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현 회장의 복잡한 심경을 들여다봤다.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7박8일간 공들여 싼 묵직한 ‘방북 보따리’를 짐작케 했다.



우선 북한에 억류돼 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를 구했다. 지난 10일 북한을 전격 방문한 현 회장은 수차례 방북 기간을 연기하는 등 북측과의 피말리는 협상 끝에 13일 유씨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유씨가 억류된 지 137일 만이다.

뭘 주고 뭘 받았나

특히 이번 방북의 하이라이트였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도 가졌다. 현 회장은 지난 16일 묘향산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 4시간 동안 오찬을 함께했다. 현 회장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면담에서 그동안 얽히고설킨 ‘남북 실타래’를 다시 풀 만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이 합의한 사항은 ▲금강산관광 및 개성관광 재개 ▲백두산관광 개시 ▲개성공단 정상화 ▲이상가족 상봉 ▲남측 인원의 군사분계선 통행자유 등 5개항이다.

현 회장은 “김 위원장 만나 원하는 얘기하라기에 모두 얘기했고 다 받아줬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현 회장이 방북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인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현 회장이 기대 이상의 방북 성과를 안고 돌아온 시기와 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현 회장으로선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현대그룹과 김 전 대통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녹인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첫 추진한 대북사업으로 이어졌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이 있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던 만큼 그 누구보다 깊은 슬픔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걱정도 앞선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까지 서거하면서 그동안 대북 창구 역할을 했던 민간 라인이 사실상 사라진 탓이다.

이들은 정주영-정몽헌 부자의 대북사업 바통을 이어받은 현 회장의 든든한 ‘아군’과 같았다. 앞으로 전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통일부 등 현 MB정부의 꽉 막힌 대북라인과 손발을 맞춰야 하는 현 회장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DJ 서거 정국이 현 회장에게 실보다 득이란 평가도 나온다. 현 회장의 방북을 두고 제기된 여러 의문들이 DJ 서거에 가려 그대로 묻힐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현 회장이 받고 있는 의혹은 ▲이산가족 상봉 등 민감한 사안들을 어떻게 정부 승인 없이 단독으로 합의했냐는 데에서 불거진 ‘사전조율설’ ▲김 위원장이 5개항을 수용하는 대신 대북 지원 등을 별도로 제안하거나 요청하지 않았냐는 ‘이면계약설’ ▲당초 2박3일에서 7박8일로 체류기간을 늘린 ‘5차례 일정 연기 배경’ ▲구체적인 방북 일정을 공개하지 않아 철저히 베일에 싸인 ‘7박8일 행적 미스터리’ 등이다.

입 꾹 다물고 청와대로

현 회장은 지난 17일 귀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현 회장은 사전조율설과 이면계약설에 대해 “정부와 사전조율이 없었고 대북지원 이면합의도 없었다”고 짤막하게 일축했을 뿐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과 방북 행보도 “지금 밝힐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문을 흐렸다. 또 일정 연기에 대해선 “원래 김 위원장의 일정이 쌓여 있어서 주말에 오라고 했는데 좀 일찍 갔다”고만 해명해 주말에 만날 걸 알면서도 왜 서둘러 방북길에 올랐는지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대북 한 전문가는 “대북사업의 진척이 있을 때마다 퍼주기 논란, 대북송금 등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각종 의혹들이 뒤따랐다”며 “이번에도 김 위원장과 빅딜 등이 오갔을 공산이 크지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현 회장의 방북 미스터리에 쏠린 시선이 분산돼 수면 아래로 가라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 회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청와대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이 재벌그룹 총수 중 가장 먼저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도 모자랄 판에 즉각 조문하지 않은 이유다.


현대그룹 측은 “현 회장이 방북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는 업무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문 일정을 잡아 고인의 넋을 기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 회장은 직접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번 방북 결과를 보고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앞서 현 회장은 서울 시내 모처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만나 간략하게 방북 브리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안팎에선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이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현 회장의 진짜 방북 성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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