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발주> 대기업 입찰 담합 전말

2009.07.21 10:07:47 호수 0호

“‘짜고 치는 고스톱’ 재미 좋았는데…”

대한전선과 삼성전자, 가온전선, LS 등 국내 대표 전선제조업체들이 지난 8년간 한국전력공사의 구매 입찰에 입을 맞추다 적발됐다. 이들은 상호 들러리 입찰을 통해 낙찰자와 입찰가격을 사전 합의하는 방법으로 담합행위를 했다. 수주예정자 선정방식까지 바꿔가며 총 900여 억 원에 해당하는 돈 잔치를 벌였던 이 업체들은 지난 2007년 결국 공정위에 꼬리를 밟혔다. 이들은 공정위가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자 슬그머니 자진신고에 나서 과징금 감면을 위한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지난 8년간 ‘짜고 치는 고스톱’의 묘미를 보여 준 그들의 담합행위를 들여다봤다.  

한전 납품 통신선 8년간 입찰 담합 대한전선, 삼성전자, 가온전선, LS
공정위 조사 시작하자 은근슬쩍 자진신고 한전 ‘8년간 몰랐나?’ 의문점

대한전선, 삼성전자 등 주요 전선업체들이 한국전력공사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담합을 일삼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지난 11일 공정위는 한전이 시행하는 ‘피뢰침겸용 통신선’ 구매 입찰에서 담합한 4개 사업자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8년 동안 입맞춤

이들은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총 6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국가기간 산업인 전선 부문에서의 담합이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는 대한전선, 삼성전자, 가온전선, LS 등으로 국내 대표 전선제조업체들이다. 이들 4개 업체는 그동안 한전에서 주문하는 물량 100%를 공급하며 시장을 장악해왔다.

이들이 처음으로 담합을 합의한 것은 지난 1999년 3월이다. 당시 삼성전자, 대한전선, LS 등이 차지하던 한전의 입찰경쟁에 1999년 가온전선이 신규로 진입하자 수익하락을 우려한 이들 업체가 담합이라는 묘수를 짜낸 것이다. 이들은 한전의 입찰 물량을 삼성, LS, 대한전선이 각 26.7%씩, 후발경쟁업체인 가온전선이 나머지 20%를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때부터 1년에 한두 차례씩 한전의 통신선 사업자 입찰 공고가 있을 때마다 입을 맞추며 지난 2006년까지 총 17회에 걸쳐 실제 담합을 실행했다. 

이들은 입찰에 앞서 매번 수주예정자를 선정해 놓고 나머지 업체들은 들러리 역할을 했다. 수주예정자가 먼저 투찰가격을 정하면 다른 사업자들은 수주예정자보다 높은 가격을 적어냈다. 결국 최저가 자율입찰 경쟁 방식에 따라 한전은 더 낮은 투찰가격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수주예정자를 선정하는 방식을 번갈아 시행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지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실시된 10회의 입찰에서는 ‘밸런스 방식’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실시된 7회의 입찰에서는 ‘순번제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밸런스 방식은 입찰 전에 각 회사가 수주한 실적이 물량배정 합의에서 정한 공급비율에 가장 크게 미달한 업체를 수주예정자로 선정하는 것이고 순번제 방식은 순번에 따라 수주예정자를 선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정 패턴의 반복을 피하고 공평한 공급비율을 맞추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실제 수주 물량이 사전에 공모했던 ‘나눠먹기 비율’에 못 미칠 경우 낙찰 받은 회사가 일부 물량을 수주 실적이 낮은 회사에 OEM 형태로 일감을 나눠주기 까지 했다.
이 같은 공평한(?) 방식으로 밥그릇 나눠먹기를 해온 이들 사업자는 입찰에서 예정가격 대비 평균 99.3%라는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았다. 총 17회에 걸친 입찰의 시장규모만도 874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8년간의 이들의 담합행위는 결국 공정위에 의해 꼬리가 밟혔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이들의 담합 혐의를 포착하고 본격적인 사태 파악에 나섰다.

해당 업체들은 공정위의 조사가 시작되자 그제서야 슬그머니 담합을 자진 신고했다. 4곳 업체들은 스스로 담합 사실을 인정하고 관련 증거를 제출하는 등 공정위의 조사에 협조했다. 이왕 들킨 거 더 늦기 전에 자진 신고해 과징금 감면이라도 받자는 속셈인 것이다. 실제 공정위에는 1순위 자진신고자에 대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하고 2순위 자진신고자에 대해선 감면한다는 내용의 관련 규정이 있다.

공정위는 이 규정에 따라 조사 협조 정도와 신고 순위 등을 고려해 차등적으로 감면 혜택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공정위가 밝힌 대한전선 18억원, 삼성전자 17억원, 가온전선 17억원, LS 14억원의 과징금도 이 같은 방침이 부과돼 실제 과징금액수는 훨씬 줄어들 전망이다. 이처럼 특정업체들의 담합이 사실로 드러나자 이제 시선은 수요자인 한전에 쏠리고 있다. 업계는 8년이란 시간 동안 이뤄진 입찰 담합을 한전이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전이 독점수요자인 상황에서 특정업체들이 장기간에 걸쳐 99.3%라는 예정가격에 거의 근접한 가격으로 입찰이 성사된 점을 감안할 때 업체들의 담합사실을 알아채기 쉬웠을 것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한전 정말 몰랐나?

국가기관의 경우 낙찰률이 지나치게 높을 시 공정위에 담합 의심 사실을 통보해주는 것이 관례인데 한전은 통신선 입찰과 관련해 단 한 차례도 공정위에 통보한 사실이 없어 이런 지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결국 일부에선 한전과 4개 업체 간의 검은 돈이 오고 간 게 아니겠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한전 관계자는 일련의 의구심에 대해 “계약의 규칙은 최저가 책정이지만 결국은 시장경쟁 원칙이 작용되는 것”으로 “외부의 담합을 내부에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또한 이번에 적발된 업체에 대한 조치에 대해서는 “공정위를 통해 정식 통보를 받게 되면 자체 법령에 따라 ‘특수계약심의회’를 열어 해당기업에 대해 최대 2년 이내 입찰 참가 제한 등의 처분을 내리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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