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택배 딜레마’사연

2009.07.21 09:57:34 호수 0호

차린 밥상에 손님 없고 젓가락 장단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시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대북사업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목매던 ‘북문’이 닫힌 지 벌써 1년째다. 매출손실만 1500억원. 직원도 절반만 남았다. 현 회장은 “절대 포기는 없다”며 돌파구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미사일 시위’로 현대그룹의 생존 의지마저 꺾고 있다. 이 와중에 현 회장에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내부 장악용’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비장의 카드가 말썽이다.

현대택배 통해 그룹 지배력 강화 밑그림
실적 추락, 인사 파문 등 구설수로 고민

현대택배가 현대그룹 경영구도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떠오른 것. 현대그룹은 현대택배를 중심으로 그룹 전체 지배구도가 새로 짜이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달 계열사 현대유엔아이(U&I)와 현대증권을 통해 정리금융공사의 현대택배 지분 20.59%(251만 주)를 약 185억원에 인수했다.

현대유엔아이와 현대증권은 컨소시엄 형태로 현대택배 지분을 인수했는데, 각각 15.60%, 4.99%를 사들였다. 이로써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소유한 지분 47.15%를 포함해 현대택배 지분 67.74%를 보유하게 됐다.

그룹 컨트롤타워 부상

예금보험공사 산하 정리금융공사는 2000년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현대그룹의 두 계열사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투자증권(현 푸르덴셜증권)이 소유한 현대택배 주식을 145억원에 확보했었다. 현대그룹은 9년 만에 현대택배 지분을 되찾은 셈이다. 업계에선 현대그룹의 현대택배 지분 인수에 따라 현정은 회장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택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형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현대택배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19.84%이며,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지분 19.3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다시 현대증권, 현대아산 등 주요 계열사를 비롯해 현대택배 지분 47.15%를 갖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도 그룹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 회장 개인의 지배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3.92%로, 2006년 3월 KCC의 지분을 사들인 독일회사 쉰들러(25.50%)보다 적다.

다만 현 회장은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등 특수관계인의 우호지분을 40% 이상 확보하고 있다. 현대상선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 회장은 현대상선 지분 1.51%를 보유하고 있지만, 역시 과거 적대적 M&A를 시도했던 현대중공업(17.60%), KCC(5.04%) 등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반면 현 회장은 현대택배 지분 12.61%를 보유 중이다. 특히 그는 이번 현대택배 지분 인수 주축인 현대유앤아이의 최대주주(68.20%)로, 이를 통해 현대택배뿐만 아니라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한층 강화됐다. 현대유엔아이는 현 회장의 장녀 정지이 전무도 지분 9.10%를 보유해 총수일가의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시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이 지주사 역할로 유력하지만, 최근 현대택배 지분 인수와 현대택배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높이고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지분을 늘리는 추세를 보면 현 회장이 현대택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택배가 이렇다 할 성적을 내놓지 못하면서 현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눈치다. 국내 택배업계 판도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택배-대한통운-한진 순으로 ‘빅3’구도였으나 2007년 대한통운이 현대택배를 제친 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도 대한통운이 3655억원의 매출(1억5800만 상자)을 올려 3551억원에 그친 현대택배(1억4200만 상자)를 앞섰다. 현대택배는 롯데홈쇼핑 등 대형 화주들을 대한통운 등 경쟁업체에 뺏기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급기야 신흥 강호로 부상한 CJ택배((1억4000만 상자)와 한진(1억4150만 상자)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현대택배는 2위는커녕 4위로 추락할 위기다. 업계에선 올 상반기 이미 CJ택배가 현대택배를 밀어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 회장으로선 현대택배의 부진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적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지배구조에서 ‘강한 고리’역할을 할 수 있는 탓이다.

현 회장은 지난달 현대택배 창립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현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진행한 것과 대조된다. 현 회장은 당시 현대택배 임직원들에게 노고와 축하의 뜻을 전한 바 있다. 현대택배의 사장 교체를 두고 나오는 ‘뒷말’도 현 회장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다.

지난해 말 현대택배는 2004년 1월 취임한 ‘물류통’김병훈 전 사장 대신 ‘재무통’박재영 사장을 선임했다. 택배사업 특성상 물류전문가가 아닌 재무전문가가 수장 자리에 않았다는 점에서 인사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김 전 사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던져 의문을 더했다. 당시 현 회장은 박 사장에게 대표이사직까지 넘겼다. 박 사장이 현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일각에서 그럴싸하게 나돌고 있는 김 전 사장의 ‘항명설’이 눈길을 끈다.



‘고리’가 약해서야…

현대아산의 양평 콘도사업 지급보증과 관련 김 전 사장이 현 회장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는 내용의 이 항명설은 김 전 사장 사임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대그룹 측은 “김 전 사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고 일축했지만, 그룹 안팎에선 현 회장의 심기를 건드린 김 전 사장이 사퇴 압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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