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불량식품 단속 백태

2013.07.29 13:17:33 호수 0호

흉악범 잡던 형사 문방구서 잠복?

[일요시사=사회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바빠졌다. 최근 발생한 강력사건 때문이 아니다. 불량식품 단속 열풍은 엉뚱하게도 식품 감정 의뢰를 증가시켰고, 국과수 연구원들은 식약처 못지않은 음식 전문가로 변화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주요 공약인 불량식품 단속,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지난 6월, 서울 한 주점에서 만난 일선 경찰관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며 술잔을 비웠다. 못된 흉악범을 잡는 정의로운 형사를 꿈꿨던 그는 거의 매일같이 초등학교 앞에서 잠복 중이다. 명목은 불량식품 단속. 그는 학교 앞 200m 반경의 그린푸드존(어린이식품안전보호구역)을 동료 경찰과 함께 수호(?)하고 있었다.

건수를 올려라

이성한 경찰청장 취임 후 경찰은 이른바 '4대악 근절'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적이 저조한 지휘관에게 (인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청장님의 엄포' 덕분이다.

이에 발맞춰 지난달 30일 안전행정부는 4대악이 포함된 21개 분야 안전관리 대책을 담은 '국민안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띠는 건 '4대악 감축목표 관리제', 일선 지역의 범죄 검거율 등을 계량화하여 수치화한 뒤 이를 6개월마다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한 마디로 경찰 입장에선 "실적을 올리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검거율에만 '올인'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안전도가 관련 평가에서 가장 큰 5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체감안전도는 지역 주민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항목별로 100% 반영되는데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선 또 다시 분기별 실적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이 체감안전도 때문에 순찰을 도는 경찰관이 아파트 앞에서 1시간씩 (경계 근무하듯) 서있으라고 지시가 내려왔던 적이 있었다"며 "경찰이 서있으면 도리어 주민들이 심각한 얼굴로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 곤욕을 치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4대악 근절'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불량식품 단속이란 게 공통된 의견이다. 한 경찰관은 불량식품을 찾기 위해 학교 앞 문방구를 이 잡듯 뒤져야 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이제 막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수사관 A씨는 "앉아있으면 실적이 나오느냐"는 서장의 말에 무거운 발걸음을 경찰서 밖으로 옮겼다. 서장은 늘 다른 지구대와의 '형평성'을 강조했는데 "우리 옆 지역이 저 정도 하면 우리도 이만큼은 해야 한다"는 게 A씨가 말한 서장의 입버릇이었다.

A씨가 향한 곳은 관할 내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 문방구. 그곳에서 A씨는 아이들이 먹는 간식의 유통기한을 일일이 확인하다가 문방구 주인과 사소한 실랑이를 벌였다. "어쩌다 한 번이면 이해하겠는데 이렇게 자주 들락거리면 가게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주인의 하소연이었다.

문방구에서 나와 학교 앞에 똬리를 튼 A씨는 혹시 모를 노점상을 기다리지만 불량식품을 파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학교 앞에선 신호위반에 걸린 초등학교 교사가 A씨를 보며 "또 오셨냐"고 멋쩍은 인사를 건넸다.

4대악 근절한다며 아이들 먹거리 뒤적
문구·분식점 뒤지다 주인과 실랑이도

기자와 만난 A씨는 "(불량식품 단속을 한 이후) 확실히 교통위반 단속은 많이 늘었다"며 "이번 단속의 최대 피해자는 아마 초등학교 선생님일 것"이라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

A씨처럼 불량식품 단속에 반발하는 경찰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업무 평가와 연관돼 있다 보니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서북부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은 "원래 불량식품 단속은 식약처나 관할 자치단체에서 전담해도 충분한데 우리까지 나설 이유가 뭐가 있느냐"며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은 그동안 쌓아온 수사 노하우나 가이드라인이 있어 잘 할 수 있지만 이건(불량식품 단속) 안 해도 될 일을 억지로 떠맡은 것"이라며 불쾌해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최근에는 그나마 자체 TF(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상황이 나아졌지만 초반에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제대로 몰랐다"면서 "윗선들이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해 너무 휘둘린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현재 각 지방경찰청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마다 각 일선 경찰서에서 보고된 단속 실적을 규합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몇몇 경찰서는 아예 '4대악 근절 추진 현황표'를 운영하며 불량식품 단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연스레 경찰서 간 실적 경쟁에도 불이 붙은 상황. 무엇보다 여름을 맞아 단속이 탄력을 받게 되면서 또 다른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어린이 기호식품을 제조·유통해 온 영세업체는 졸지에 '4대악'을 만드는 범죄자 집단이 됐다. 특히 그린푸드존 내의 식품 판매를 규제하는 법안이 지난 6월부터 예고된 상황이라 업체의 근심은 더 크다.

한 관계자는 "일반 마트에서 파는 제품이나 학교 앞에서 파는 제품이나 다를 게 없는데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불량식품으로 인식하면서 영업이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언제는 사업하라고 정부가 직접 허가까지 내줬는데 성실히 세금내며, 일했던 우리 입장에선 좀 억울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현장은 아우성

서울 한 재래시장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B씨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B씨는 "위생 상태가 불결하다는 이유로 경찰과 식약처, 관할 구청 직원들까지 가세해 속을 썩였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여기서 장사해 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우리 같은 영세 상인이 언제 진열 신경 쓰고, 매번 청소하고 그럴 수 있냐"면서 "말로만 재래시장 위한다고 하지 실적 없으면 또 와서 괴롭힐 게 뻔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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