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도시풍경 대가' 신정무 화백

2013.06.10 09:36:00 호수 0호

멋스러운 삶, 그리고 멋스러운 그림

[일요시사=사회팀] 부자와 가난한 자, 역동성과 서정성,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의 풍경. 신정무 화백은 이 도시에 매료돼 순간순간을 종이에 담았다. 멋스러웠던 그의 삶처럼 그림도 그의 삶을 닮았다. 



신정무 화백은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 1970년대 동양방송(TBC)에 입사한 신 화백은 <일간스포츠>와 <스포츠서울>을 거쳐 <문화일보>에서 국장을 역임했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소프라노와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던 그는 아내와 결혼에 골인, 슬하의 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성공한 삶

한 평생을 언론사에 종사했지만 그의 전공은 '미술'이다. <문화일보>에서 상무이사로 정년을 마감한 신 화백은 화가로 전직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경기 용인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에는 색색의 화려한 그림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우아한 클래식이 흐르는 그곳. 마주 본 소파에 앉아 한동안 골몰히 생각하던 신 화백은 기자에게 지난 얘기를 풀어냈다.

"2000년에 정년을 마치고 '내 남은 인생은 그림을 그려야 겠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제가 언론사 임원을 하면서 지면에 많은 작가들도 소개해주고 그랬는데 조금은 텃세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곧 미술계에서 몇몇 분들이 먼저 알아주셨고, 수채화협회에서도 활동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한국미술협회에서 수채화분과도 만들게 됐고, 국전 규모 대회의 심사위원장도 하게 됐고. 협회에서 고문이나 자문위원 역할도 하고. 이 정도면 미술계에서도 자리를 잡은 거겠죠?"


신 화백은 개인전만 16차례에 이를 정도로 매년 부지런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의 인정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붓을 놓아본 적이 없다. 회사 업무로 바쁠 때에도 스케치북만은 꼭 곁에 뒀다.

해외로 출장을 가거나 교외로 나갈 때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빠짐없이 그려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스케치노트는 신 화백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시풍경을 많이 그렸어요. 제가 도시를 좋아하거든요. 도시라는 아주 역동적인 구도(Composition). 화판이라는 공간에 도시의 선과 면과 색을 입히는 작업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참 그리고 골프도 좋아해요. PGA 투어도 몇 번 보고 왔는데…. 아마 화단에서 골프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화가는 제가 최초가 아닐까(웃음). 골프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그리기 좋죠."

불혹에 찾은 '화가의 꿈'
도시·골프·종교가 주제
갇혀있지 않은 자유 화법

골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신 화백은 20여년 전 한 골프대회에 참가해 홀인원의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다. 그때 당시 함께 라운딩에 나섰던 정몽준 의원과의 기념사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제 아내는 모태신앙인데 저는 뒤늦게 종교와 인연을 맺었어요. 그때 영세를 줬던 신부와는 동갑이라 마음도 많이 통했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제가 아주 열성적인 신앙인은 아니에요. 다만 성당을 위해 또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 직업이 화가잖아요. 그래서 성화를 좀 그려보면 어떨까 싶어 주위에 카톨릭을 종교로 가진 화가들을 모았죠. 그리고 각자 성서를 모티브로 해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죠. 저는 구약의 아가서를 선택했습니다. 앞서 프랑스의 샤갈도 아가서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데…. 하느님의 사랑이 메인 테마였죠."


무릇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성격이 드러나기 마련. 신 작가의 작품은 활달하면서도 무언가에 갇혀있지 않은 자유로운 느낌을 줬다. 마치 먼 이방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기분. 몇몇 컬렉터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며 신 화백에게 직접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사실 그림 자랑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림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거지. 강요할 수 없거든요. 다만 많은 사람들이 노후를 설계할 때 너무 부정적으로만 너무 획일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정무 같은 사람도 있다. 제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이런 노년을 살 수 있구나. 나이 들어서도 원래 자신이 꿈꿨던 일을 할 수 있구나. 제가 하고 있잖아요."

노년의 행복


인터뷰 말미 신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림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상세히 소개했다. 단순히 명성을 얻고자 미술계에 뛰어든 그런 류의 작가는 아닌 듯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신 화백 자신이 작가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아 더욱 당당하고, 나이를 의식하지 않아 더욱 세련된 그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신정무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채화분과 운영위원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채화분과 심사위원장
▲한국미술협회 고문
▲경기 수채화협회 고문
▲대한민국 수채화작가협회 고문
▲한국수채화협회 자문위원
▲신정무수채화전 외 개인전 16회
▲중앙현대미술대전(시립미술관) 외 단체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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