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속으로> 수백억 자산가 살인청부 전말

2013.06.07 19:49:58 호수 0호

'오너 타깃' 바지사장의 역습

[일요시사=사회팀] 부산 노른자위에 세워진 수백억원대 오피스텔 분양권을 놓고 영화에서나 일어날법한 살인청부가 벌어졌다. 타깃은 오피스텔 시행사 대주주 박모(51)씨였다. 그러나 거듭된 살해시도에도 박씨는 건재했다. 그리고 박씨를 노린 회심의 일격은 끝내 범인들의 발목을 잡았다. 





"확실히 보낼 수 있나?"

한 운전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이는 김모(48)씨. 김씨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수백억원대 오피스텔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1억5000만원 주고…

김씨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달리 김씨 자신에게는 오피스텔 분양권이 없었던 것. 시행사 대표이사를 겸했던 그는 이른바 '바지사장'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실질적인 오너는 바로 대주주 박모(51)씨였다.

시행사의 지분 60%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박씨는 김씨를 파트너가 아닌 '월급사장'으로 여겼다. 지분구조에서 취약했던 김씨는 박씨의 지시를 줄곧 따라왔다.


하지만 부산 해운대 오피스텔 분양권을 놓고 이들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양 방식에서 김씨와 박씨가 의견 차이를 보였던 것. 하지만 박씨는 대주주의 지위를 이용해 김씨를 압박했다.

김씨는 언제라도 해임될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이 갖고 있던 약간의 분양권마저 잃어야했다. 기로에 놓인 김씨는 또 다른 공범 전모(39)씨를 끌어들였다.

전씨는 부산 한 법무사 사무장 출신이며 해운대 오피스텔의 분양대행업자다. 그는 김씨로부터 놀라운 말을 전해 들었다. 오피스텔 분양을 앞두고 회사 대주주인 박씨를 '보내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 평소 박씨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전씨는 김씨의 계획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살인을 실행에 옮기려면 '선수'가 필요했다. 김씨는 주변 지인을 통해 조폭과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조모(28)씨를 수소문했다. 그리고 조씨를 만나 '박씨를 살해해 줄 것'을 부탁했다. 성공보수로는 1억5000만원을 약속했다. 조씨는 김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김씨는 약속한 돈을 조씨에게 송금했다.

김씨로부터 살인 의뢰를 받은 조씨는 살인청부업자들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전직 택시기사, 경비원 등이 조씨의 범행에 가담했다. 조씨는 이들에게 5000만원을 대가로 위장 교통사고를 일으키도록 사주했다.

지난 1월4일 밤 10시께 부산진구 부암동 롯데마트 앞 도로로 중형차가 진입했다. 이곳은 박씨의 자택 근처로 박씨가 귀가를 위해 자주 이용하던 도로였다. 조씨 등은 미리 중형차를 렌트한 뒤 박씨가 운전하는 외제승용차의 운전석을 노렸다.

운전에 능숙한 택시기사 손모(44)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박씨의 외제승용차를 향해 돌진했다. 회색 중형차가 박씨의 외제승용차를 들이받았다. 하지만 박씨는 어떤 외상도 입지 않았다. 차량 문짝만 다소 찌그러지는 정도의 가벼운 접촉 사고였다. 손씨가 겁을 먹고 충돌 순간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덕분에 차량 수리비로만 1100여만원이 청구됐다. 첫 번째 살해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오피스텔 분양권 두고 대주주-대표 갈등
교통사고 위장·방망이 폭행에도 '멀쩡'

조씨는 자신의 교도소 동기 3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같은 수법으로 박씨를 살해하기로 뜻을 모았다. 두 번째 살해시도는 1월28일 벌어졌다.

이날 밤 8시께 해운대구 우동의 한 도로변을 건너던 박씨는 낯선 차량에 몸을 들이받혔다. 오피스텔 앞에서 박씨를 기다리고 있던 조씨 등이 렌트카로 박씨를 살해하려한 것. 박씨는 공중으로 튀어 올라 범행차량 앞 유리에 머리를 부딪치며 의식을 잃었다.


범행을 확신한 조씨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방금 사람을 친 것 같은데 누워있으니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출동한 경찰 등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박씨는 멀쩡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2시간여 만에 병원을 나와 회사 회의를 주재했다. 박씨의 죽음을 보고받았던 김씨는 회의에 참석한 박씨를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박씨는 병원에서 전치 2주의 판정을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씨는 누군가가 자신을 살해하려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교통사고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김씨가 여기서 멈췄으면 박씨는 평생 자신이 살해당할 뻔 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갔을 터였다. 그러나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청부업자 조씨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두 번째 시도로부터 10일이 지난 2월6일. 부산진구 당감동 한 아파트 앞에 조씨 일당이 잠입했다. 이 아파트 안에는 박씨의 자택이 있었다. 이들은 복면을 쓰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박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같은 날 밤 9시께 업무를 마치고 주차장에 나타난 박씨를 괴한 2명이 미행했다. 이들은 박씨가 계단으로 올라가자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뒤쫓았다. 그리고 아파트 현관으로 이어지는 막다른 길에서 박씨를 향해 방망이를 휘두르며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그러나 박씨는 이번에도 목숨을 구했다. 그의 비명소리를 듣고 가족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와 괴한들이 도주한 것.

이후 박씨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CCTV 영상을 확보해 조씨 일당을 붙잡았다. 최초 단순 강도상해를 의심했던 경찰은 현장에서 나온 야구방망이와 오토바이 등록증에 묻어있던 지문을 토대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지난달 23일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오피스텔 분양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주주 박씨의 살인청부를 의뢰한 혐의(살인교사)로 시행사 대표이사 김씨를 구속하고, 공모한 전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또 살인을 청부받은 조씨 외 2명을 구속했고, 손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3번 시도 실패

조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수차례 시도를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아 (박씨가) 마치 터미네이터 같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조씨 등은 "박씨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조씨 등에게 살인을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 역시 "박씨가 몇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도록 청부 폭력을 했을 뿐 살해의 의도는 없었다"며 "살인청부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박씨 몰래 은행대출 8억여원을 받아쓴 점 ▲단순 폭행교사에 1억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약속한 점 ▲김씨와 조씨 간의 통화에서 "확실히 보내야 한다" "진짜 끝낼까요?" 등의 대화가 오고간 점 등을 미뤄 청부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씨는 조씨 등의 세 번째 살해시도로 전치 3주의 비교적 경미한 부상을 입은 뒤 현재는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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