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성폭행 파문

2013.06.07 19:53:56 호수 0호

대낮 기숙사서…폭탄주 먹여 몹쓸짓

[일요시사=사회팀] 쉬쉬하던 일이 마침내 터졌다. 과거 '하나회'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육군사관학교 내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남자 선배생도가 여자 후배생도를 대낮에 성폭행 한 충격으로 육사 교장은 중도 전역까지 하는 굴욕을 맛봤다. 그러나 한 번 터진 파문은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에서 발생한 교내 성폭행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땅에 떨어진 품위

지난 5월30일 박남수(58·육사35기) 육사 교장(중장)은 육사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역의사를 표명했다.

이날 육군 관계자는 "박 교장이 이번 육사 성관련 법규 위반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에게 전역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앞서 육군은 육사 '생도의 날' 행사 중 남자 상급생도가 여자 하급생도를 성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며 성폭행 의혹을 공식 확인했다.


사건은 이렇다. 지난달 22일 육사에서는 대령급인 학과장을 비롯해 영관급 장교인 교수 10여명이 생도 20여명과 함께 낮술을 마셨다. 이들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이른바 폭탄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술을 마시던 2학년 여자생도 A씨는 폭탄주를 쏟아낸 후 구토를 반복했다. 이때 A씨 옆에 있던 4학년 남자생도 B씨는 "후배를 챙긴다"면서 자신의 방으로 A씨를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A씨는 B씨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이 같은 사실은 행사 중 A씨와 B씨가 사라진 것을 안 동기들이 B씨의 방을 찾아가면서 밝혀졌다. 낯 뜨거운 광경에 육사는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육군은 이번 성폭행 사건을 사건 발생 6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공개함으로써 은폐 의혹을 샀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사건 발생 직후 감찰과 헌병, 인사 등 3부 요원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의혹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분위기다.

현재 육군은 성폭행을 한 B씨를 구속 수사 중이며, 남은 생도들의 과도한 음주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 음주가 지도교수의 사전 승인에 따라 이뤄졌다고 하지만 내부 규율에 위배되지 않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질 수 있음이 분명하다.

원래 육사는 생도들의 음주를 엄격히 규제해왔다. 육사 21기가 입교한 1967년까지 생도들의 음주는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다만 4학년 2학기 때부터 장교의 초대가 있는 경우에 한해 음주할 수 있었다.

이후 30년 가까이 생도들의 음주는 통제됐다. 이 규제가 풀린 건 2002년. 당시 육사는 '3금제도(금주·금연·금혼)'에 관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음주를 양성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0기가 입교한 2003년부터는 2학년 이상 생도에 대한 음주 승인권자가 생도대장 이상에서 훈육관, 지도교수, 학부모로 하향 조정됐다.

술 취한 여생도 끌고가 강제로 성관계
교내서 음주 논란…군 은폐·축소 의혹

그러나 육사 생도로서의 품위를 잃을 정도의 음주는 허용되지 않았다. 또 대부분의 경우 승인권자가 동석해 음주를 통제하는 것이 관례라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상당수 생도가 과도한 음주를 한 것으로 알려져 지도교수 등이 폭탄주를 강권했는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더 큰 문제는 사건 은폐 의혹이다. 육사는 이번 사건에서도 관련 사실을 1주일가량 쉬쉬했다. 한 예비역 장교는 "육사 생도들의 분위기를 봤을 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성추문 사건을 은폐해왔을 수도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육사는 1998년부터 정원의 10%를 여생도로 뽑아 지금은 한 학년에 30명 정도가 남생도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군대 내의 고질적인 남성중심문화가 여군을 잠재적인 성폭행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육사 출신 간부가 그렇듯 성추문을 비교적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지난해 10월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국감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여군을 상대로 한 성 관련 범죄는 모두 48건. 그러나 이중 가해자가 실형을 받는 횟수는 모두 4건에 불과했다. 그리고 전체 성범죄의 80%에 육박하는 35번의 사건 판결에서 가해자들은 기소유예, 선고유예, 공소권 없음 등으로 사실상 면책됐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육사는 이번 사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몇몇 매체가 이번 성폭행 사실을 보도하려하자 육사는 "피해 여생도가 (육사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건을 비공개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등 해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또 박 교장의 이번 전역으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 또한 고개를 들고 있다. 

초유의 스캔들

육사 내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건 '공식적으로'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육군이 이번 성폭행 사건을 B씨 개인의 품성 문제로 종결시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인 A씨의 발언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술김에 그랬다"는 가해자 B씨의 진술만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차후 A씨가 이번 성폭행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을 공개할 경우 사건은 새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