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7탄] 요지경 ‘대리운전’

2009.06.09 09:16:36 호수 0호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업체 2만여 개, 종사자 10만여 명, 시장 규모 약 3조원….’ 

거대해진 대리운전업계의 현주소다. 대리운전업은 이처럼 대형화·기업화된 지 오래다. 업계를 대변하는 협회·단체 형태의 모임만 전국적으로 10여 개가 넘는다. 이만하면 ‘난립’에 가깝다.

관할에 신고하면
곧바로 영업 가능

국내에 대리운전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경찰이 휴대형 음주측정기를 도입하면서다.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대리운전은 대중화됐다. 때마침 불어 닥친 IMF 경제 한파는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대리운전으로 몰려들었다.

노동부에 따르면 전국 대리운전업체는 2003년 7000여개에서 지난해 1만5000여 개로 늘었다. 종사자 수는 8만여 명에 이르며, 시장 규모가 3조원을 넘나든다. 여기에 미등록 군소업자와 자가용 영업자까지 합할 경우 그 수는 각각 2만개, 10만명에 이른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업체나 대리기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수치 산정이 어려운 것은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누구나 대리운전업이 가능한 ‘자유업’인 탓이다. 아직 관계법령이 제정되지 않은 대리운전업은 정부의 관리나 감독,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관할 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대리운전 업체 90% 이상이 중소업체이며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업 대리운전자’가 대부분”이라며 “그러나 관련법상 대리운전업은 인허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업계는 수년 전부터 대리운전 법제화를 추진해 왔지만, 협회·단체 간 내부 갈등과 정부 부처 간(경찰청-건설교통부) 업무 떠넘기기로 여전히 표류 중이다. 국무조정실도 수차례 대리운전법 제정 의지를 밝혔지만 역시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자동차 대리운전자 관리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으나 흐지부지 폐기된 바 있다.

누구나 사업 가능한 ‘자유업’ … 우후죽순 난립 심각
대리비서 알선·정보비 등 빼면 기사는 ‘맨땅에 헤딩’

업계를 대변해야 할 협회·단체가 존재하지만 중앙회, 지역별 단체, 지방법인, 인터넷 동우회 등으로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한 목소리는커녕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들 단체들이 법제화보다 존립의 근간이 되는 회원 확보에 더 혈안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대리운전 문화가 보편화된 만큼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된다”며 “난립하는 업체를 규제하고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리운전업 법제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촉구했다.

결국 대리운전이 구조적으로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업계에선 ‘전화기와 홍보물만 있으면 대리운전 업체를 당장에라도 개업할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 ‘자고 나면 또 생긴다’는 푸념도 들린다.

대리운전자 취업도 간단하다. 신분증과 2종 보통 운전면허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쯤 되자 포화 상태인 대리운전 업계는 혼란 그 자체다. 업체간 ‘취중 손님’확보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과도한 요금인하 등 ‘제 살 깎기’무차별 출혈경쟁은 기본. 일부 업체들은 식당이나 유흥주점 등 업소에 일정액의 수수료(커미션)까지 건네고 있다. 더욱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나홀로 대리운전’까지 우후죽순 생겨 과당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리기사 박모(35)씨는 “기본 1만원이던 요금이 5000원까지 내려갔다”며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져 문을 열고 닫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소비자 입장에선 들쑥날쑥한 대리운전 비용이 부담스럽다. 전체적으로 과거보다 가격이 많이 내리긴 했지만 업체마다 다르고, 광고와 달리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리운전 업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또 대리운전 가격 산정과 배분 기준이 뭘까.

협·단체 ‘사분오열’
법제화 수년째 제자리

우선 대리운전의 기본 사업구조를 뜯어보면 대개 업체와 시스템회사가 상호 공생하는 ‘중층제’로 운영된다. 그 밑으로 기사들이 딸려있는 모양새다. 업체는 대리기사를 직접 관리·제공한다. 흔히 대리운전을 의뢰하는 고객들이 전화하는 곳으로, 통상 ‘1588-○○○○’등의 번호를 사용한다.

시스템회사는 업체에 들어온 콜 정보를 대리기사의 휴대폰 또는 개인휴대 단말기(PDA)로 전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한 시스템회사가 적게는 수십여 개, 많게는 수백개의 업체와 연결돼 있다.




가령 고객이 ‘1588-○○○○’로 대리운전을 의뢰하면, 이 정보는 업체를 통해 시스템회사로 보내지고, 시스템회사는 웹서버 등의 기능을 이용해 대리기사에게 배분하는 식이다. 고객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리기사는 이를 접수해 역으로 ▲대리운전 접수 정보 ▲성명 ▲거리 및 비용 등 정보를 시스템회사에 전달하고, 이는 다시 대리운전업체에 통보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지불한 대리비용은 분산된다. 업체는 ‘알선수수료’조로 기사로부터 20% 정도의 수수료를 챙긴다. 기사들은 이것이 택시의 사례와 비슷해 ‘사납금’이라 부른다.

시스템회사도 기사로부터 월 1만5000원∼2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명목은 ‘정보이용료’다.

만약 기사가 1만5000원의 대리비를 받았다고 가정하면 업체에 바치는(?) 수수료 3000원을 뺀 나머지 1만2000원이 기사의 수입이다. 여기에 PDA 사용료, 보험료 등을 제외하면 1만원 정도가 남고, 이마저도 대중교통이 끊기거나 유흥가가 아닌 외지로 행선지가 결정되면 택시비로 절반을 날리기 일쑤다.

대리기사 노모(33)는 “콜비, PDA 사용료, 통신요금, 보험비, 택시비 등 콜 1건당 들어가는 비용이 7000∼8000원에 이른다”며 “이렇게 수입의 절반가량을 지출하면 하루에 3∼4건씩 해도 한 달 수입이 100여 만원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대리운전 업체의 난립으로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업체 간 경쟁 심화로 각종 논란과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보험 미가입은 물론 보험에 들었더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차주가 어느 정도의 피해보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대리기사들의 과속이나 신호위반 등도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뜯어가고
저기서 걷어가고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대리운전 관련 피해구제 사례는 2003년 40건에서 2004년 122건, 2005년 124건, 2006년 155건, 2007년 112건으로 매년 1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전국 대리기사 3명 중 2명이 보험에 미가입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심각성을 더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지난 2월 현재 보험에 가입한 대리기사는 6만8000여 명”이라며 “대리기사의 보험가입률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 절반 이상이 무방비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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